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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

 

구한말 강화도는 격전지였습니다.. 서구 열강은 계속해서 쳐들어옵니다.. 서울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인 강화도는 맨몸으로 그들 앞에 서있었습니다.. 서양의 신무기로 물밀듯이 들어오는 서구 열강을 막아내기는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수 많은 격전지 중 한곳인 광성보를 찾아가봤습니다.. 100년 전 치열했던 싸움터는 지금 고요한 겨울바람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강화도를 둘러싸고 12개의 진과 보가 있었습니다.. 12개의 큰 군부대가 주둔했다고 할 수 있지요 .. 광성보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조선 효종 9년(1658)에 설치되었습니다.. 영조 21년(1745)에는 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按海樓)라 하였습니다.. 바로 위에 보시는 성문이 안해루입니다.. 안해루를 직역하면 바다를 누른다는 것입니다.. 바다를 편안하게 만들겠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종 3년(1866) 프랑스 극동함대와의 공방전 .. 즉 병인양요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871년에는 미국과의 신미양요가 벌어졌고요 ..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더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습니다..

 

1871년 4월 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며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로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상륙부대는 초지진, 덕진진 등을 차례로 점령하고 광성보까지 온 것입니다.. 미군은 광성보를 향해 포탄을 날리고, 직접 성으로 들어오는 백병전을 펼치게 됩니다.. 우리 군대가 아무리 잘 싸운다 하더라도 .. 인적으로나 무기로보다 밀릴 수 밖에 없는 일 .. 결국 어재연 장군 이하 수 많은 이들은 장렬하게 전사하게 됩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광성돈대가 있습니다..

 

 

 

 

 

광성돈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숙종 5년(1679)에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했습니다.. 돈대는 진(鎭), 보(堡)에 속해 있습니다.. 강화도에는 12개의 진, 보가 있고요 .. 54개의 돈대가 있습니다.. 광성보에는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광성돈대 등 3개의 돈대가 있습니다..

 

이 당시 대포가 있긴 했으나, 서양에 비하면 그렇게 힘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사정거리도 짧고 조준도 잘 안되었다지요 .. 거기다가 화약이 들어가 터진다기 보다는 쇳덩이가 날아가는 수준인지라 .. 위력적이지 못했다는군요 ..

 

 

 

 

 

진(鎭)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한 요새입니다.. 보(堡)는 해안선을 지키는 요새로서 해안선을 따라 지은 석성을 말합니다.. 돈대는 총구를 만들고 봉수시설을 갖춘 시설을 말합니다.. 규모로 보면 보가 제일 큽니다.. 진은 별로도 만들어진 요새입니다.. 강화도에는 5개의 보, 7개의 진, 53개의 돈대가 있습니다.. 강화도를 둘러싸고 방어기지가 갖춰져 있습니다..

 

강화도는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입니다.. 요즘이야 도로와 철도로 물자를 수송하지만, 이때는 물길을 이용하였습니다.. 강화도는 서해바다에서 한강을 통해 서울로 향하는 길목입니다.. 강화도를 점령하면 서울로 향하는 물자공급이 어렵겠지요 .. 그리고 강화도는 중국과 통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

 

 

 

 

 

바닷물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광성보는 조용했습니다... 어느 조용한 뒷동산을 오르는 기분이랄까요? ..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광성보는 1970년대 들어오면서 정비가 되기 시작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방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1977년에 복원하고,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1871년에 광성보에서 있었던 신미양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어재연 장군입니다.. 미군이 초지진과 덕진진을 함락하고 광성보에 도착했을 때 .. 광성보에는 어재연 장군 이하 600여병의 병사가 있었습니다.. 어재연 장군은 그의 아우인 어재순과 수백명의 병사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장군 이하 병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 쌍충비(雙忠碑)입니다..

 

쌍충비는 신미양요 때 장렬히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59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비석입니다.. 2개의 비석이 있고. 1873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고종 때부터 제사를 지내고 있고, 1970년부터는 어재연 장군의 후손들이 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신미순의총'이라는 이름의 무덤도 있습니다.. 쌍충비각 아래쪽에 있는 무덤입니다.. 신미양요 때 죽은 무명용사들의 무덤입니다.. 어재연 장군과 그의 동생은 충청북도 음성에 묘가 있습니다.. 그외 신원을 알 수 없는 용사들은 7기의 분묘에 나눠서 합장하였습니다..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입니다.. 영화속에서나 전쟁을 보았지요 .. 그래서 전쟁의 참혹함을 잘 모릅니다.. 당시 서구열강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최신의 무기로 덤벼들 때 .. 우리 무명용사들은 맨몸으로 그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치열한 백병전의 흔적은 지금도 광성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광성보 입장료는 1,100원입니다.. 패키지 입장권을 구매하면 저렴합니다.. 갑곶돈대, 고려궁지,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 5곳의 입장료를 '5개소 일괄 입장권'으로 구입하면 2,700원입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격전지였던 강화도 광성보를 다녀왔습니다.. 오늘날 광성보는 조용합니다.. 치열한 전쟁의 모습보다는 조용한 공원의 모습입니다... 서구열강이 물밀듯이 들이 닥칩니다.. 최신의 무기를 들고 진격해옵니다.. 우리는 맨몸으로 그들과 맞서 싸웠구요 .. 이길 수 없는 전투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정신은 쉽게 꺽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화도는 우리의 역사에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화도여행 가볼만한곳 광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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