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 물고기 카페
대한민국 영화가 세계 곳곳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다져진 내공이 빛을 발하는 것이라 봅니다. 이렇게 깊은 내공을 다지기까지 많은 분들의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 장선우 감독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단박에 아는 분들도 있으실 거고요. 반면에 어? 누구지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가 만든 작품을 보면 아하! 하실 거예요. 그를 만나러 제주도로 갑니다. 충무로가 아니고 왠 제주도?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확히는 8코스를 걷고 있었지요. 8코스는 제주도 남쪽 중문일대를 돌고 안덕면 대평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8코스의 종착지 부근 대평포구에 장선우 감독이 운영하는 카페 '물고기'가 있습니다. 카페 이름이 재밌습니다. 노란 유채꽃밭 사이로 들어가 봅니다.
카페라고는 하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카페건물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하고 두리번 거리면서 가고 있는데 카페 주차장이 보입니다. 주차장도 단순하면서 정감있어보입니다. 뒤에 보이는 절벽은 박수기정입니다. 주차장 옆으로 카페가 있습니다. 속으로 박수를 쳐봅니다. 짝짝짝
주차장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물고기 그림이 보입니다. 이게 카페인가? 하고 살며시 들어가 봅니다.
카페는 기존의 집을 개조해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지붕은 옛집 그대로인 듯하고 크기는 아담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집은 1969년도에 만든 집이고 장선우 감독이 6개월 동안 리모델링을 했다고 합니다.
한낮인지라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주방과 계산대가 있고 그 앞에 테이블이 있습니다. 양쪽으로 방이 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습니다. 테이블에 앉으니 여기도 물고기 그림이 있군요. 이 물고기 그림은 변시지 화백이 그린 것이라 합니다. 카페 이름이 물고기 인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인터뷰 내용을 찾아봤습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횟집을 하고 싶어 했고 다이빙도 좋아하고 물고기도 좋아해서 물고기라 지었다고 합니다.
저는 밥 먹고 왔기에 가볍게 차 한 잔 해보려 합니다.
어느 남자 종업원이 나무로 되어 있는 메뉴판을 가져옵니다. 차 종류가 많군요. 술도 있고요. 저는 평소 제가 잘 마시는 핫초코를 주문합니다. 카페인에 민감한지라 커피는 잘 안 마셔요. 그런데 어디 가서 제가 핫초코 시키면 웃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아저씨와 핫초코가 잘 안 어울리나 봅니다. 내가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데.
핫초코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에 카페를 둘러봅니다. 카페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여자분에게 사진을 좀 찍어도 되냐 물으니 흔쾌히 허락합니다. 옛 모습이 느껴집니다. 카페를 장선우 감독 부부가 운영을 한다고 하던데 제가 본 그분이 장선우 감독의 부인?
등 매달아 놓은 모습이 귀엽습니다.
책도 있고요.
느낌 좋은 사진도 있습니다. 제가 느낀 카페의 분위기는 단정하면서도 세련됨이 있습니다. 막 화려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단순함 속에 포인트가 숨겨져 있다고나 할까요? 참 말이 어렵네요. 한마디로 이뻐요.
카페 구경하고 있는 사이에 핫초코가 나옵니다. 다른 분들 후기를 보니 장선우 감독이 직접 서빙을 하기도 한다던데 저는 좀 전의 그 남자 종업원이 들고 오네요. 속으로 장선우 감독이 서빙 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사인해 달랄까? 사진이라도? 별 생각을 다 했는데 상상만으로 끝나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상상이 끝나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앉은자리 옆에 보니 영화 잡지가 여러 권 쌓여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카페 갔을 때에 발행된 영화잡지에 장선우 감독과 관련 기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핫초코 마시면서 잡지를 뒤적여 봅니다.
장선우는 누구인가? 누굴까요?
1988년 영화 '성공시대'로 데뷔합니다. 안성기가 주연으로 나왔었죠. 안성기가 초고속 승진을 하다가 나중에는 한방에 주저앉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영화, 거짓말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을 보면 아하! 하실 거예요. 작품들이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제2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감독상(1990),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제15회 청룡영화상 감독상(1994), '화엄경'으로 제32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1994), '꽃잎'으로 제41회·제42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최우수작품상(1996·1997) 등을 수상했습니다.
카페 내에서는 장선우 감독과 관련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잡지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많고 많은 곳 중에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감독이 인터뷰 한 내용을 보니 귀양살이 왔다는 표현을 했더군요. 원래 서귀포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답니다. 그러던 중 영화 제작이 차질이 생기고 여차 하여 지금의 대평마을에 자리를 잡은 게 2005년. 잠깐 머무르려 했다지만 지금 6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 자리 한쪽에 있는 이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귤 같지는 않고요. 아시는 분 풋쳐 핸즈업.
아주머니 두 분이 쉼 없이 이야기 나누시네요. 조용히 있다 가려했는데.
고요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 밖을 바라봅니다. 저 멀리로는 바다가 보이고 돌담 너머로는 마늘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앞마당도 단아하면서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것이 참 좋습니다. 망중한을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더군요. 하지만 저도 앞으로의 여정이 있는지라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픈은 12시, 마감은 저녁 9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월요일은 쉬고요.
또 다시 길을 걷기 위해 나섭니다. 카페가 마을과 잘 어울리는 것이 정감있고 좋습니다. 올레길 8코스, 9코스를 걸으신다면 물고기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대평포구 주변에 커피집들이 몇 곳 더 있습니다.
물고기카페는 올레길 8코스의 종착점이자 9코스의 시작점인 대평포구 주변에 있습니다. 대평포구에서 8코스 쪽으로 5분 정도 들어가야 있습니다. 자가용은 대평포구로 가면 될 것이구요. 버스로 간다면 중문까지 와서 중문우체국 앞에서 대평까지 가는 버스(20~30분 간격)를 타고 종점인 대평마을까지 와서 마을 안쪽으로 10여분 걸어 들어가면 됩니다.
저는 훗날 제주도에서 이런 자그마한 찻집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 소망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 그런지 장선우 감독의 물고기카페가 주는 느낌이 더욱 남다릅니다. 비록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어도 소중한 느낌은 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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