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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 묘

요즘 텔레비전 사극에서 고려 시대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고려말 격동의 시대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고려가 저물어 가던 시대에 꼭 등장하는 꼭 등장해야만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정몽주. 조선 시대에서는 충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포은 정몽주입니다. 그의 묘가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에 있습니다. 촉촉한 봄비가 내리던 날 정몽주 묘를 찾아보았습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로 가는 길.

정몽주 선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정도전과의 대립, 선죽교에서의 죽음, 고려의 충신 등등 학창 시절 국사 수업시간에도 꼭 등장하고, 많은 숨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분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인물의 묘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어찌 된 사연으로 용인 땅에 잠들고 계신지 선생의 묘를 둘러보겠습니다.  




 

정몽주 영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포은 선생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높은 벼슬에 올라 있던 사람이 죽고 난 후, 무덤 앞이나 근처 길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정몽주 선생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습니다. 경기도 기념물 제1호입니다. 1호라는 것에 눈길이 갑니다. 1337년에 태어나셔서 1392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고향은 경북 영천입니다. 원래는 경북 영일현 출신인데 정몽주 아버지가 영천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고향이 영천으로 되었습니다. 




 

 

정몽주 선생 묘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연안이 씨 비각공원이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문강공 저헌 이석형 선생이 중심입니다. 연안이씨는 광산 김 씨와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꼽힙니다. 문과급제 250명, 정승 8명, 대제학 8명, 청백리 7명을 배출했습니다. 그 출발이 저헌 이석형 선생입니다. 연안은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을 말합니다.




 

 

묘소로 들어가 봅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홍살문을 지나 묘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왼편으로 기와집 몇 채가 있습니다. 경모사, 모현당, 영모재 등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건물 입구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들 건물은 묘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어진 것들입니다. 어느 건물에는 안내소가 있었습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안내소 운영시간(10시~16시)에는 무료로 안내가 가능합니다. 저도 해설사 선생님과 가볍게 몇 마디 나누고 묘로 올라갑니다.




 

 

정몽주 선생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조인 백로가 입니다. 선생의 어머니가 지은 시입니다. 선생이 어렸을 때 위대한 인물이 되라는 의미에서 지었다고도 하고요. 이방원이 잔치를 베풀어 정몽주를 초대할 때 지어주었다고도 전해집니다. 

백로가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시 단심가입니다.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변 형식의 시입니다. 하여가는 조선왕조를 열고자 하면서 정몽주를 떠보기 위해 읊은 시입니다.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합니다. 이방원은 단심가를 듣고 정몽주가 자신의 편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선죽교에서 피를 부르게 됩니다.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 년까지 누리리다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비석을 지나서 묘를 향해 올라가게 됩니다. 묘가 세 군데에 있는데요. 가운데 있는 묘가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입니다. 묘가 아주 융성합니다. 왕의 무덤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 하나. 개성 선죽교에서 죽었고 고향은 경북 영천인데 왜? 생뚱맞게 용인에 그의 무덤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 있는 것일까요?




 

 

정몽주 선생 묘 앞에서 바라본 경관.

정몽주가 죽고 나서 우현보라는 사람이 풍덕군(개성)에 안장했습니다. 이후 태종은 후손의 요청을 받아들여 영천으로 이장하라고 했습니다. 이장하는 도중에 명정(죽은 사람의 관직과 이름을 적은 깃발)이 지금 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지관에게 물어보니 천하의 명당이라 하였고 용인 땅에 묻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연안이 씨 문중 땅입니다. 위에 연안이씨 비각 공원 보셨을 것입니다. 정몽주라는 거대 정치인에게 문중의 명당을 뺏길 처지에 놓였습니다. 문중에서는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명정이 떨어진 자리에 밤새 물을 부은 것입니다. 당연히 물이 있는 곳에 묘를 쓸 수는 없기에 자리를 옮겨서 묘를 쓰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위치의 정몽주 묘입니다.

처음 명정이 떨어진 곳이 바로 현재 이석형의 묘가 있는 자리입니다. 묘 자리 덕분일까요? 이후 이석형의 후손들은 쭉쭉 잘 나가게 됩니다. 연안이 씨 가문도 잘 나가고요. 그래서 위에서 보신 사진처럼 비각 공원 세울 정도가 되었고요. 위에 있는 사진의 묏자리가 이석형의 묘입니다. 천하의 명당에서 좋은 기운을 얻고 와서 그런지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 봄날이었습니다. 겨우내 얼어 있던 대지에 생명이 돋기 시작합니다. 촉촉한 봄비가 내리면서 생명을 품은 흙 향기가 코 끝을 스칩니다. 꽃망울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이 잔뜩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제 햇볕만 조금 더 짠하게 비추어주면, 온 세상은 봄꽃으로 물들 것입니다. 알록달록 초록의 향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고려의 충신이자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를 다녀왔습니다. 용인시에서는 매년 5월이 되면 포은문화제를 개최합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축제를 여는 것입니다. 올해는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안 나온 듯합니다. 

역사 속 인물을 만나러 가는 길은 재밌습니다. 이번 정몽주 선생 묘를 둘러본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꽃이 피고 잔디에 푸른 물이 오르면 더욱 보기 좋은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날 따뜻해지면 정몽주를 만나러 가보심은 어떨까 합니다. 주변에 호박등불 마을에서는 각종 체험학습도 가능합니다. 정몽주 묘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는 등잔박물관도 있습니다. 마가미술관도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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