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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성관

 

나주를 아십니까? 지금은 전라남도의 작은 소도시이지만, 나주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도시였습니다.. 전라도가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으니까요 ..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서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고, 나주는 융성했습니다... 그 흔적은 나주 곳곳에 남아 있고요 .. 나주로 떠난 당일치기 여행길 .. 맛있는 나주곰탕을 먹고, 나주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나주를 찾은 이유는 나주곰탕을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주에는 곰탕거리가 있을정도로 곰탕이 유명합니다... 곰탕거리는 나주 금성관 앞에 있습니다.. 안 들어가볼 수가 없지요 .. 금성관의 정문인 망화루가 웅장하게 서있습니다... 원래의 모습은 아니고요 .. 복원된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이 이 앞에서 출정식을 가졌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던 곳입니다.. 나주의 역사와 함께 한 곳입니다..

 

 

 

 

 

금성관 안으로 들어와봤습니다.. 금성관은 뭐냐? 객사(客舍)입니다.. 객사는 객관, 관사라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풀어보면 손님을 위한 집입니다.. 외국에서 온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 온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입니다..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돌아볼 때 머무는 숙소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망궐례(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하여 올리는 예)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시말해 사신을 접대하고, 왕정의 위덕을 펴서, 관부의 위엄을 세우는 곳입니다..

 

가운데가 금성관이고 오른쪽은 벽오헌, 왼쪽은 서익헌입니다.. 벽오헌은 관찰사가 나주에 왔을 때 집무를 보던 곳이고, 서익헌은 종3품의 관리(지금으로 치면 국장급)가 이용했다고 합니다..

 

 

 

 

 

객사는 나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국 각지에 있었습니다.. 나주의 객사인 금성관은 특히 더 웅장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객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객사만 덩그러니 있지는 않았겠지요 .. 나주목 관아가 있었을 것이고, 관아의 중심에 객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주객사는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에서 금성관은 조선 성종 6~10년(1475~1479)에 나주목사 이유인이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금성관으로 군청을 옮겼다는군요 .. 조금씩 훼손되기 시작하였고, 근래에 와서 복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봄 햇살을 받아봅니다.. 봄 햇살은 며느리에게 가을 햇살은 딸에게 내보낸다고도 하지요 .. 봄 햇살이 그만큼 더 강렬하다는 뜻일텐데요 .. 하지만 겨우내 눅눅했던 찬 바람을 이겨내고 맡는 봄 햇살은 참 좋습니다.. 마루의 거친듯 하면서도 매끄러운 느낌도 다정스럽게 느껴지고요 .. 여기서 늘어지게 낮잠 한 번 자보고 싶은 유혹을 참아 내느라 혼났습니다... ㅋㅋ

 

 

 

 

 

금성관의 정문인 망화루를 바라봅니다.. 금성관 앞이 아주 넓직합니다... 저 앞에 보이는 2층짜리 건물이 망화루이고요 .. 그 앞에 자그마한 건물 하나가 보입니다.. 중삼문입니다... 중간에 있는 문 .. 중삼문과 금성관 사이에 내삼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정리하면 망화루가 외삼문, 중삼문, 내삼문, 그리고 금성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건물 뒷 편으로 가니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나무의 나이는 무려 650년 .. 금성관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지요 .. 나무가 하도 멋있어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오래된 고목 앞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100년도 겨우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인간이 한 없이 가벼워 보이기도 합니다..

 

 

 

 

 

저쪽에는 여러개의 비석이 줄지어 있습니다... 왼쪽의 비석 무리에서는 '사마교비'를 ... 오른쪽 비석 무리에서는 '금성토평비'를 유의깊게 봐야 합니다.. 두 개의 비석에만 안내판이 있더라구요 .. ㅎㅎ ... 비석의 이름을 딱히 몰라도 .. 나무 그늘 아래 한가지게 있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구요 .. 비석에 가까이 가는데, 참새 여러 마리가 도망가지도 않고 짹짹거리는 것도 귀엽고요 ..

 

사마교비는 조선 시대 때 정지호라는 사람이 사마교라는 다리를 보수한 기록을 남긴 비석입니다..  고려 현종이 거란족의 침입에 피난을 가다가 나주에 머물렀다 합니다.. 이 때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다리를 건넜는데 .. 그 다리를 사마교라 불렀다 합니다.. 금성토평비는 동학운동 때 나주읍성을 지키고 있던 군대가 수성군이 동학군과 싸워 이긴 기록을 담고 잇습니다..

 

 

 

 

 

비석 있는 곳에서 금성관을 다시 바라봅니다.. 이각도에서 보니 더 멋지군요 ..

 

 

 

 

 

금성관 밖으로 나오니 '정수루'라는 누각이 외로이 서 있습니다.. 주차장 바로 옆에 있구만요 .. 2층에는 커다란 북도 있습니다 .. 정수루하니 만수루가 생각나네요 .. ㅋㅋ .. 나주목사의 동헌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관아에 들어가기 전 의관을 고쳐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선조 36(1603) 나주목사 우복용이 지었다고도 하고요 .. 여지도서라는 책에는 역시 나주목사 민백남이 지었다고도 나온답니다.. 하지만 지금의 건축양식을 봤을 때 19세기에 증축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수루 뒤로 가면 '나주목문화관'이 있습니다.. 나주목문화관은 나주의 유구한 역사를 알려주는 곳입니다.. 나주목문화관안에 있는 나주의 모형을 사진으로 담아봤습니다..

 

나주는 천년목사고을이라고도 합니다.. '목'이라는 행정구역이 뽀인트입니다.. 목은 지금으로 치면 도청소재지 정도 되는 지역의 중심도시라는 것입니다.. 982년 나주목이 되었고, 1896년 전라남도청이 광주로 넘어가기 전까지 1천년 동안 남도의 중심지는 나주였습니다... 지금은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가 되었고, 지역의 중심은 광주로 넘어가긴 했지만요 .. 

 

 

 

 

이번에 포스팅하면서 나주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나주가 다시 보이는군요 .. 곰탕과 홍어회만 알고 있었는데, 유구한 역사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ㅎㅎ ..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국립나주박물관도 생겼습니다.. 국립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지역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다시한번 나주의 오랜 역사속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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