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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일기념관


일본은 과거 우리나라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과 논리에 맞지 않게 우리나라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의 태도에 화가 많이 납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조상의 항일 정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일제의 침탈이 심했던 제주도에서 항일 정신을 일깨워봅니다. 



제주항일기념관은 제주시 조천읍에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에서 관리합니다. 예전에는 관람료로 500원 받았는데, 지금은 무료관람입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1월 1일, 설날 연휴, 추석 연휴에는 휴관. 


전시관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애국선열 추모탑을 찾습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추모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애국선열의 구국운동을 부조로 표현하였고, 애국선열을 추모하는 글이 담겨 있습니다. 






창열사(彰烈祠)입니다. 제주출신으로 항일운동으로 정부의 훈포장을 수상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창열은 위엄을 밝힌다는 뜻입니다. 






독립유공자비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하시다가 순국하신 분들을 기리며, 함께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만든 비석입니다. 주재소에 유치되거나 묻혔던 것을 찾아, 제주항일기념관에 모셨습니다.  






제주항일기념관으로 들어갑니다. 






'5인의 군상 상징 조형물'이 있습니다. 아래 팔각형 기단은 제주도, 암석은 제주도의 척박한 환경, 파도는 일제의 침략을 표현했습니다. 그 위에 제주인의 항일정신을 5인 군상으로 상징화하였습니다. 왼편 뒤쪽으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습니다. 후손에게 자주독립 정신을 계승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제주 항일기념관은 제1전시실, 제2전시실로 나뉘어 있습니다. 먼저 제1전시실에 들어왔습니다. 일제침탈의 전반적인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도는 심한 수탈과 민족차별적 탄압을 받습니다. 모든 관공서에 일본인이 배치되고, 학교 교사도 일본인으로 충원되었습니다. 






1913년부터 토지조사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제주도는 국유지, 공유지가 많았습니다. 토지조사사업은 제주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농부와 화전민은 경작지를 잃어버리면서, 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제주도민은 점점 굶주리게 됩니다. 1920년에는 콜레라로 4천 명 넘는 제주도민이 목숨을 앗아가게 됩니다. 






19세기 말 최익현이 제주도로 유배를 옵니다. 최익현은 제주 유림의 정신적 지주가 됩니다. 최익현의 영향을 받은 제주 유림은 의병운동을 계획합니다. 1909년 2월 25일 의병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합니다. 1909년 3월 3일 관덕정에서 거사를 일으키려 했는데, 일제에 발각되어 실패합니다. 주동자는 총살되었습니다. 의병운동 이후 제주도에서 항일운동은 더욱 거세게 일어납니다. 






1918년 10월. 서귀포시에 있는 법정사에서 대규모 항일독립운동이 일어납니다. '법정사 항일운동'이라 불립니다. 일본제국의 통치에 반대하여, 법정사 승려, 신도 400여 명이 조직적으로 일제에 항거합니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종교를 뛰어넘어 제주도민의 항일투쟁정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법정사 항일운동과 함께 제주도의 3대 항일운동이 있습니다.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입니다. 조천만세운동과 해녀항일운동은 제2전시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일본군 물품






제2전시실로 왔습니다. 2전시실에는 제주도 3·1운동과 3·1운동 이후 제주도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의 3·1운동 조천에서 시작합니다. 조천은 육지로 나가는 뱃길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제주도의 관문이었습니다.  


1919년 3월 16일 서울 휘문고보 학생이었던 김장환이 독립선언서를 갖고 제주도로 귀향하면서, 제주도에서의 3·1운동이 시작됩니다. 3월 21일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만세 시위행진을 하였고, 3월 24일까지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시위 주역들이 체포되면서 종료됩니다. 조천만세운동은 이후 제주도 민족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조천만세운동 당시 참여했던 독립투사들의 판결문, 수형기록표. 






일제에 끌려가는 모습






제주도 해녀들도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들어 해녀들의 수탈과 노동력 착취가 심해졌습니다. 해녀들이 잡아온 해산물을 일본인 상인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매입하였습니다. 이에 해녀들이 1932년 세화리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제주도사(도지사)와 해녀대표가 담판을 지어, 해녀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해녀들의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일제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연인원 17,130명이 참여하고, 238회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는 국내 최대의 여성주도 항일투쟁이면서 어민봉기였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의거 당시 투척했던 폭탄 모형, 독립군이 사용했던 총과 나팔






일제는 제주도 곳곳을 군사기지화하였습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제주도에는 약 75,000명에 이르는 일본군이 주둔하였습니다. 일제는 제주도 전역을 군사기지화하였습니다. 해안가, 오름 가릴 것 없이 진지를 구축하면서, 제주도를 파괴하였습니다. 군사기지 만드는데 제주도민의 강제동원되었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제주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일본 항복문서 조인식 모형 






조천 3·1운동 기념탑





제주항일기념관은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립니다. 공항에서 함덕, 김녕, 월정리 등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으시다면, 오가는 길에 찾아보심은 어떠실까 합니다. 제주항일기념관이 있는 조천만세동산은 제주올레길 18코스 종착지이자 19코스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관람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항일독립의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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