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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강원감영

 

조선시대에 전국을 8개의 도로 나누었습니다. 각 도의 이름은 그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습니다. 강릉과 원주의 앞글자를 따서 강원도가 되었습니다. 원주는 오랫동안 강원감영이 있던 도시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원주가 강원도청 소재지였다는 것입니다. 강원감영의 현재 모습. 원주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원주 강원감영은 원주 시내에 있습니다. 찾아가기 어렵진 않습니다. 문제는 주차. 차를 몰고 강원감영 앞에 왔는데, 주차할 곳이 없습니다. 강원감영을 한 바퀴 돌다 보니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주말이라 주차비를 받지 않더군요. 쌩유

 

원주 강원감영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연중무휴.

 

 

 

 

원주 강원감영 안내도입니다. 안내도 맨 위에 포정루로 들어갑니다. 원주 강원감영은 진입공간, 집무공간, 후원공간 등 3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포정루, 중삼문, 내삼문이 진입공간입니다. 태조 4년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여 강원도라 하였습니다. 원주에 강원감영을 설치하고 관찰사를 파견합니다. 원주는 통일신라시대에 5소경(지금으로 치면 광역시) 중 하나였습니다.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선정비

 

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관리를 기리며 선정비를 세웁니다. 지역마다 선정비가 있습니다. 선정비를 볼 때마다 진짜 선정을 베푼 사람이 있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주민들이 반강제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원주 강원감영에 있는 것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중삼문을 지나 내삼문으로 들어섭니다. 사진 오른쪽에 있는 것이 내삼문입니다. 내삼문을 지나면 관찰사의 집무공간이 나옵니다. 내삼문에는 징청문(澄淸門)이라 쓰여 있습니다. 문을 들어서면서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무공간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宣化堂)입니다. 이날은 무슨 행사가 있어서, 선화당 앞에 무대와 조명이 만들어졌습니다. 선화당은 관찰사의 집무실입니다. 선화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관찰사는 선화당에서 행정, 조세, 민원, 군사훈련, 재판 등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내아입니다. 내아는 관찰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내아 앞에는 곤장 형틀이 있습니다. 형틀 앞에 그림은 볼기를 내놓고 맞는 그림도 있고요. 보기만 해도 아파 보입니다. 어느 외국인이 곤장 형틀 보고 십자가라 했다는 우스갯 소리도 생각납니다. 

 

17세기 초반까지 강원도 관찰사는 원주목에 잠시 머물면서, 1년 임기 동안 강원도 각 지역을 두루 돌아보았습니다. 여름에는 주로 영동지역인 강릉, 삼척에 들렀고, 다른 계절에는 춘천과 원주에 있었습니다. 여름에 피서 간 걸까요? 17세기 중반부터는 관찰사 임기가 2년으로 늘어납니다. 강원감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때 건물도 많이 들어섭니다.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사람이 500명 정도 된답니다. 그중에서 황희, 정철 등이 익숙합니다. 

 

 

 

 

원주 강원감영 사료관에 들어왔습니다. 원주에 감영이 설치된 역사적 배경, 감영에서 일하던 구성원들의 모습, 관찰사의 역할, 일제강점기 사진 자료 및 감영의 옛 모습, 감영터를 발굴하면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상평통보, 비녀, 수저, 신발, 기와, 접시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료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행각이라고도 부릅니다.

 

 

 

 

감영에는 종2품의 관찰사가 내려갑니다. 관찰사는 감사라고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6ㆍ25 전쟁을 겪으면서, 대다수의 감영이 훼손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원주 강원감영도 전쟁으로 소실되었습니다. 1995년 복원계획을 세우고 23년이 지난 2018년에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원주 강원감영 팸플릿에 강원감영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19세기 관동지에 수록한 강원감영도를 바탕으로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강원감영도에는 52동의 건물이 그려져 있는데, 옛날에 감영이 상당한 넓이에 건물도 많습니다. 지금 복원한 감영보다 더 넓었습니다.

 

 

 

 

후원공간으로 들어왔습니다. 후원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합니다. 관찰사가 사색하면서 잠시 쉬기도 하고, 찾아온 손님과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회의도 하고요. 연못 위에 정자와 누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료관 모형을 보면 후원이 그렇게 넓진 않은데 복원한 것을 보면 후원공간이 집무공간보다 더 넓습니다. 공원처럼 꾸미려고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원감영 후원은 일제강점기까지 유지되었습니다. 후원 자리에 원주우체국이 만들어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우체국을 이전하고 복원한 것입니다. 에는 봉래각, 채약오, 조오정, 관풍각 등을 복원하였습니다. 

 

 

 

 

연못에는 전설의 신산인 삼신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전각을 만들고 신선 세계의 이름을 부여합니다. 사진 가운데 있는 누각이 봉래각입니다. 봉래각은 금강산을 생각하며 지은 것입니다. 금강산은 계절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여름 금강산을 봉래산이라 합니다. 

 

지금은 휴전선에 가로막혀 있지만, 금강산은 강원도에 있습니다. 강원도 관찰사는 금강산을 관할했고, 강원감영 후원에 금강산과 어울리는 신선 세계를 만듭니다. 후원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자신을 봉래 주인, 즉 신선 세계의 주인이라 칭했습니다. 봉래각 왼쪽은 채약오, 오른쪽은 조오정입니다. 

 

 

 

 

후원 공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관풍각(觀風閣)입니다. 연못 가운데 있습니다. 양쪽으로 다리를 만들어서 관풍각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관풍각은 풍속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뜻입니다. 관풍각 뒤로는 영주관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영주관은 신선이 산다는 세 개의 산 중 하나인 영주산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신선이 사는 세 개의 산은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 방장산(지리산)입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동상이 하나 있습니다. 원주 출신으로 시인이자 여행가인 김금원입니다. 여자입니다. 14세 때 남장을 하고 금강산으로 향하는 모습입니다. 조선시대에 여자가 여행한다는 것은 금기시되던 때입니다. 남장하고 금강산, 의림지, 관동팔경, 한양까지 여행하고 호동서락기라는 여행기도 썼습니다. 

 

 

 

약 500년 동안 원주에 강원감영이 있었고, 원주는 강원도의 정치 중심지였습니다. 1895년 행정구역을 23부 336군으로 개편합니다. 강원감영을 폐하고 강원도를 춘천부와 강릉부로 나눕니다. 원주는 충주부에 속합니다. 1896년 행정구역이 13도 체제로 개편되면서 강원도가 부활합니다. 춘천에 관찰사가 머물게 되고, 춘천이 강원도청 소재지가 됩니다.

 

춘천에 관찰사가 머물게 된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임오군란 이후 고종은 신변에 불안을 느꼈습니다. 유사시에 대피할 곳을 찾다가 춘천이 나온 것입니다. 춘천유수부 관하에 춘천이궁(春川離宮)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원주보다 춘천이 집중을 받고 하다 보니 강원도청 소재지로 계속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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