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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옥녀봉

 

강경은 화려한 여행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놓칠 수 없는 여행지임에는 분명합니다. 강경이 지금은 작은 소읍이지만, 옛날에는 손꼽히는 대도시였습니다. 강경 여행의 마지막으로 옥녀봉을 오릅니다. 옥녀봉에 오르면 강경 일대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렇다고 등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옥녀봉 입구에 강경갑문이 있습니다. 동해는 원산, 서해는 강경이라 해서 강경은 전국 2대 포구 중 하나였습니다.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 중 하나로도 불렸습니다. 서해와 금강을 통해 배가 올라오고, 육지의 산물이 강경으로 모입니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강경에는 큰 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서해는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습니다. 조석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갑문을 만들었습니다. 밀물 때 도크에 물이 차오르면 배가 들어오고, 이때 물과 배를 함께 가두어 수위를 유지하는 장치입니다. 강물의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홍수 피해도 줄일 수 있습니다. 군산항이 생기면서 강경으로 들어오는 배가 줄어듭니다. 여기에 금강하굿둑이 만들어지면서, 강경포구로 배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강경은 쇠퇴합니다. 

 

 

 

 

강경은 판소리 중고제 발상지입니다. 중고제는 충청도에 발달했습니다. 충청도만의 호흡, 말투,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강경 명창 김성옥은 중고제를 판소리 하나의 유파로 정립하였습니다. 옥녀봉 오르는 길에 김성옥의 생가가 있습니다. 

 

 

 

 

옥녀봉에 오르면서 강경 일대를 살펴봅니다. 이날은 비가 와서 날씨가 흐립니다. 마을 사이사이에 젓갈 가게가 많이 보입니다. 강경은 우리나라 젓갈 거래가 가장 활발한 지역입니다. 우리나라 새우젓의 70%가 강경을 거쳐 간다고 합니다. 




 

 

강경 항일만세운동 기념비입니다. 1919년 3월 10일은 강경읍 장날이었습니다. 500여 명의 군중이 옥녀봉에 모여 독립 만세를 불렀습니다. 일본인이 거주하는 본정통을 경유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3월 20일에 2차 만세운동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1천여 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이 초가집은 기독교 한국침례교에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입니다. 'ㄱ'자형 교회라고도 불립니다. 처음부터 교회는 아니었고, 포목 장사를 하던 지병석의 집입니다. 지병석은 미국에서 온 선교사에게 침례(세례)를 받습니다. 1896년 선교사와 지병석 집사 등 5명이 첫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예배기가 된 것입니다. 1900년대 초에는 이곳에서 선교사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옥녀봉에 올랐습니다. 강경산으로도 불립니다. 달 밝은 보름날에 하늘나라 선녀들이 옥녀봉에 내려와,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하며 놀고 올라갔단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옥녀봉은 높이가 43m입니다. 낮은 언덕입니다. 하지만 옥녀봉에서 내려보는 금강 물줄기는 아주 시원스럽고 멋있습니다.   

 

 

 

 

금강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전깃줄, 도로 없이 강물만 보면 더 예쁘겠죠?

 

 

 

 

옥녀봉에는 봉수대가 있습니다. 옥녀봉 옆으로는 250년 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봉수대 뒤로도 유유히 금강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날 날씨가 흐려서, 물줄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강경 여행은 날씨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몇 년 후 어느 화창한 날 다시 방문하기로 다짐합니다. 

 

 

 

 

옥녀봉 근처에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에 나오는 소금집을 재현하였습니다. 소설 소금은 강경과 탑정호 일대를 배경으로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그려낸 장편소설입니다. 

 

박범신 작가가 태어난 곳은 논산시 연무읍입니다. 강경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강경에서 교편을 잡다가 등단하였습니다. 박범신 작가는 소금 이외에도 많은 작품에서 강경과 옥녀봉 일대를 주요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일찍이 "강경은 나의 문학적 자궁이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강경 여행의 마지막으로 옥녀봉을 간 것은 일몰을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루의 마무리로 일몰을 보면 여행의 정리가 딱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흐린 날씨여서 일몰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노을빛 물드는 옥녀봉 마을을 만나고 싶습니다.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입니다. 한옥으로 만들어진 교회입니다.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건축양식입니다. 지금의 교회와 비교하여 한옥 교회라는 것이 특별해 보입니다. 강경은 일찍이 항구가 발달하다 보니, 서양문물도 쉽게 유입되었는가 봅니다. 기독교 유적이 많습니다. 

 

 

 

 

옥녀봉에서 강경 시내로 내려와 강경상업고등학교로 왔습니다. 강경상고는 개교 100주년이 넘는 역사 깊은 학교입니다. 강경상고 안에는 1931년에 지어진 관사가 남아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일본 목조 형식에 한국의 전통적 멋을 더한 집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지붕이 우리나라 전통가옥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집 곳곳에서 일본 스타일이 은연중 보입니다. 붉은 벽돌도 인상적이고요. 집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부가 미로식으로 되어 있다는데, 굉장히 궁금합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경상고 옆에 있는 강경고등학교를 찾았습니다. 강경고등학교에는 스승의 날 기념탑이 있습니다. 이 포스팅 발행하는 날짜가 5월 15일입니다. 스승의 날이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로 시작하는 스승의 은혜 노래가 귓가에 맴돕니다. 스승의날이 강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스승의 날은 1958년 강경여자중고등학교(현재 강경고등학교)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환 중에 계신 선생님, 퇴직한 선생님을 위문하기 위해 찾아가기 시작한 것에 유래합니다. 1963년 제12차 청소년적십자사 중앙학생협의회에서 5월 24일을 은사의 날로 정했습니다. 이후 굴곡이 있다가 1965년 세종대왕 탄생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습니다. 잠시 폐지되기도 했다가 1982년부터 스승의 날이 쭉 이어오고 있습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을 지키는 옥녀봉을 올랐습니다. 옥녀봉은 낮은 봉우리이지만 그 안에는 강경이 많은 사람,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강경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과거에는 대도시로 많은 사람의 동경이 되는 도시였습니다.  강경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푸른잎이 나기전이었고, 날씨도 흐려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어느 햇살 좋은날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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