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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죽주산성

 

죽주산성은 안성시 죽산면에 있습니다. 현재 죽산은 면 단위의 농촌 마을입니다. 옛날에는 지역의 중심이자 길목이어서, 많은 이들이 지나가던 곳입니다. 그래서 죽산면 곳곳에 문화유적이 많습니다. 죽주산성은 왜 만들었는지, 현재 모습은 어떤지 살펴봅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이동합니다. 죽주산성에 다다라서는 좁은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오르막길 위에 1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나옵니다. 죽주산성 현황도를 보니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죽주산성은 주차비, 입장료 없습니다. 

 

 

 

 

주차하고 오르막길을 오르니 동문이 나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너른 공터가 나옵니다. 좌우로 성벽이 이어집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는 느낌 가는 데로 갑니다. 오른쪽으로 올라갑니다. 오른쪽 왼쪽 어느쪽으로 가도 상관 없습니다. 성 전체적으로 이정표, 안내문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초여름 죽주산성에는 하얀 토끼풀이 많습니다. 토끼풀 꽃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저는 토끼풀을 좋아합니다. 토끼풀은 꽃말도 좋습니다. 희망, 행운이 꽃말입니다. 제 블로그 메인 타이틀에도 토끼풀꽃이 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성곽 느낌이 잘 안 납니다. 평화로운 어느 동산을 오르는 기분입니다.

 

 

 

 

 

 

 

 

포루 

 

 

 

 

동문에서 10분 정도 오르니 포루와 오동나무가 보입니다. 나무가 독특합니다. 한창 잎이 날 계절임에도 잎이 듬성듬성 나 있습니다. 나뭇가지도 사방으로 랜덤하게 뻗어 있고요. 무슨 사연이 있음 직한 나무입니다.

 

사연을 찾아보니 나무가 아프고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포루 주변을 정비하면서 오동나무 주변의 흙을 건드렸는데 그것이 나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무의 독특한 모양이 눈길을 끕니다만 아프지 않고 잎이 무성하게 잘 자라주면 좋겠습니다. 

 

 

 

 

다시 발길을 이어갑니다. 

 

고려시대 죽산은 죽주라 불렀습니다. 동네 이름에 '주(州)'가 들어간 곳은 중요한 도시를 뜻합니다. 죽주는 한반도의 남부지방과 서울(개성)을 연결하는 길목입니다. 길목에 성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요. 많은 사람이 모이기에 안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절, 불상 등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죽산에서 다양한 불교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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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주산성은 단단해 보입니다.  

 

죽주산성을 언제 만들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발굴조사를 했는데 백제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은 내성, 중성, 외성의 삼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중성이었고, 조선시대에 내성과 외성을 쌓았다고도 합니다. 내성에 두 개, 중성에 네 개, 외성에 한 개 총 일곱 개의 문이 있습니다. 세 개의 치성이 있습니다. 성벽의 높이는 2.5m 정도입니다.

 

 

 

 

고려시대에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죽주산성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조도사 전이중이 죽주산성에서 왜병과 대치하였고, 병자호란 때 진을 치기도 했습니다. 

조도사(調度使) : 난리가 났을 때 지방에 파견되어 군량과 물품을 징발하여 수송하는 일을 맡은 관리

 

 

 

 

2001년 발굴조사를 하고 복원을 시작합니다. 성 전체를 다 복원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복원하면서 성의 원형을 훼손하기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시간이 늦어져도 좋으니 원래의 모습으로 단단하게 잘 복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성곽을 따라 걷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죽주산성과 관련지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홀어머니와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누나는 동생과 내기를 합니다. 일주일 동안 누나는 죽산에 산성을 쌓고, 동생은 나막신을 신고 송아지를 끌고 도성(개성)까지 다녀오는 것입니다. 내기를 시작하고 여섯째 되는 날 누나는 성을 거의 다 쌓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편을 듭니다. 팥죽을 쑤어 딸에게 먹이면서 시간을 끕니다. 이때 동생이 돌아옵니다. 누나가 진 것입니다. 누나는 자결했는데, 몸에서 세 마리의 파랑새가 날아올랐습니다. 동생은 훌륭한 장수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오누이 힘내기 설화' 로 불리며 전국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남성권력의 우월성, 남아선호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여러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산세가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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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도성, 읍성, 산성 등으로 구분합니다. 도성은 수도를 지키는 성입니다. 한양도성이 있죠. 읍성은 마을이 있는 성. 해미읍성, 고창읍성 등이 있습니다. 산성은 산에 쌓는 성입니다. 전쟁을 위해 쌓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주산성이 그렇습니다.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쉽게 침입할 수 없게 하려고 산에 있습니다. 지대가 높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면 죽산면 일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남문을 지납니다. 남문 주변을 보면 복원이 성 복원이 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리가 꼼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산성 안에 낙엽송이 많습니다. 

 

 

 

 

성 한 바퀴 돌고 성의 가운데로 왔습니다. 

 

 

 

 

 

 

 

 

성 가운데 송문주 장군의 사당이 있습니다. 1236년 몽골 침입 당시 송문주 장군은 죽주방호별감(죽주지역 군사령관)이었습니다. 몽골군이 산성을 포위하고 맹렬히 공격합니다. 송문주 장군은 몽골군의 공격법을 미리 알고 대비하여 승리로 이끕니다. 장군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백성들은 송문주 장군을 귀신 또는 신명(神明)이라 하였습니다. 

 

송문주 장군의 지략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몽골군은 죽주산성을 포위하여 성안의 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송문주 장군은 죽주산성 안에 있는 연못에서 살아있는 잉어를 잡아 몽골군에게 보냈습니다. 물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돌로 담을 쌓아 놓은 것의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습니다. 송문주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연못을 만든 것 같습니다. 물은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성곽 따라 1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처음 들어왔던 동문으로 나갑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죽주산성입니다. 고려시대 몽골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성 안에 화장실 없습니다. 주차장에 있는 화장실을 미리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죽주산성 보고 죽산면 일대 불교문화를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택식물원, 서일농원, 칠장사 등이 자동차로 20분 정도면 이동 가능하니 함께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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