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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남한산성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가 내린 후 .. 옷깃을 더욱 여미게 되는 가을이 옵니다.. 가을은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전국에 걷기 좋은 길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성곽트레킹 어떠신지요?

우리나라 곳곳에 성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두 곳을 찾아가보려 합니다. 트레킹 코스로도 좋은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입니다. 


*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성입니다. 정조의 깊은 효심과 함께 그의 야망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화성'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지은 것입니다. 화성 신도시(지금의 수원)를 건설하면서 서울에서 시흥, 안양을 거치는 시흥대로(현재의 1번 국도)를 만들게 됩니다. 이를 통해 삼남지방과의 연계를 도모하여 화성을 상업도시로 등장시키게 됩니다. 화성에는 저수지, 시범농장을 만들고, 최신의 수리, 영농기술을 적용하여 농업개혁을 선도하는 도시로 만들게 됩니다. 
 
정조는 화성을 통해서 왕권을 구축하려 했습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왕권이 약했을 때입니다. 이때 주도권을 잡고 있는 세력이 '서인'인데, 이들의 지지기반이 서울이었습니다. 이들 세력에 대항하고자 새로운 세력의 거점을 생각하게 되었고. 교통의 요지인 화성을 선택하게 됩니다.





화성을 걷기 위한 주요 출입로는 연무대, 팔달문, 화성행궁 등입니다. 저는 화성행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행궁은 왕이 서울의 궁에서 벗어나 지방으로 갈 때 머물던 임시거처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주로 이용을 하여 더욱 특별한 곳입니다.

성곽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화성은 각이 져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서 사각지대를 없애서 적의 침입을 더욱 잘 바라볼 수 있지요. 화성은 높이가 낮은 편인데, 이것은 적의 대포 공격으로부터 성곽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화성 곳곳에는 세심하고 꼼꼼함이 보입니다. 





화성 건설 과정에서 정약용의 거중기와 같은 당시의 최신 기술이 실용화되고, 수차(水車)와 같은 외래의 기계와 수리기술이 시험 되는 등 과학기술의 집합체였습니다. 화성이 건설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화성성역의궤'라는 이름으로 10권 9책으로 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화성의 건물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성성역의궤를 통해 화성은 언제라도 복원할 수 있고, 현재도 그것에 따라서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화성행궁에서 출발하여 화서문 장안문을 거쳐 연무대를 지나갑니다. 연무대의 원래 이름은 동장대입니다. 연무대에서는 정조의 호위무사인 장용영 군사들이 훈련했던 곳입니다. 연무대에서는 활쏘기(국궁)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체험은 10발에 2천 원입니다.



팔달문 부근에서는 성곽에서 내려와 수원 시내를 걸어가야 합니다. 중간에 지동시장을 거쳐 갑니다.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될 만큼 역사와 재미를 동시에 가진 곳입니다. 시장을 거닐면서 맛있는 먹거리 체험도 함께하면 더욱 풍성한 성곽 나들이가 될 것입니다.





*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습니다.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남한산성은 더욱 주목받게 되었고, 호란을 거치면서 우리 역사에 더욱 뚜렷한 흔적을 남긴 성입니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에는 백제 온조왕 13년에 산성을 쌓고 남한산성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남한산성 얘기를 하면서 병자호란을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청나라 군사들이 서울에 가까워지면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갑니다. 남한산성 안에 비축한 양식이 부족하고, 추위가 찾아오면서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까지 내려가 항복을 하게 됩니다. 청 태종은 청과의 화해를 반대했던 삼학사와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볼모로 잡아가게 됩니다.

남한산성 주변으로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습니다. 숲길을 걷는 기분이 듭니다. 남한산성 성곽의 둘레는 7,545m이고, 높이는 낮은 곳이 3m 정도, 높은 곳은 7m 내외입니다. 사적 제57호입니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 이렇게 해서 4개의 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남문에 해당하는 지화문이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입니다. 정조 3년(1779)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화문이라 하였습니다.

남한산성은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잠정목록에 올라있습니다. 2014년에 등재가 될 수도 있다는군요. 그렇다면 남한산성의 어떤 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터에 쌓아올린 성입니다. 군사시설과 더불어 1천여 호의 주민이 함께 생활 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산악 군사 행정도시입니다. 경복궁을 제외하고 종묘와 사직이 있는 행궁이 있고요. 시기별로 성곽 쌓는 방법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남한산성이 축조되고 처음으로 시행(인조 17년, 1639)된 기동훈련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1만 2700명이라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의 중요성과 성 안의 유치 가능인구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 산성마을은 1626년부터 1917년까지 300년 가까이 광주의 행정중심지였습니다. 즉 도시가 형성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전쟁이 났을 때 장기전을 대비할 목적으로 관아와 마을이 함께 조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도성과 읍성이 중첩된 형태이지요. 도성은 왕이 있는 곳에 지은 성이고, 읍성은 일반 백성이 사는 성이고요.




남한산성에도 행궁이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종묘와 사직을 대신하는 좌전과 우실을 갖추고 있다는 것부터가 다른 행궁과 다릅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특별하다는 것이지요. 남한산성의 행궁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습니다. 파괴된 행궁을 100년 만인 2012년 5월 복원하여 공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은 성곽 건축을 뛰어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역사유적입니다. 성곽을 거닐어 보면 그 아름다움에 점점 빠져듭니다.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에서 뜻깊은 시간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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