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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초지진

오랜만에 강화도 포스팅을 이어가려합니다.. 강화도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이것이 강화도를 가봐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단순히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강화도는 서울과 가까운 섬입니다.. 지방에서 수 많은 문물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서해안으로 올라와 강화도를 거쳐야 합니다... 근대화시기 외국세력도 이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을 확보하고자, 강화도에 대한 침공은 이어졌습니다..

우리 정부도 강화도 해안에 수 많은 군사 진지를 구축하고, 외국세력을 막아내고자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 그 시대는 쇄국정책이 강렬했던 시기였으니까요 .. 강화도 해안에 있는 수 많은 진지 중에서 .. 오늘은 초지진을 가보려 합니다.. 국사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초지진입니다.. 구한말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초지진은 어떠했을지 상상해 봅니다..



마니산 등산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초지진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강화도 해안 주변으로는 돈대, 진, 보 등이 이어져 있습니다.. 특히 염하라고 불리는 곳 .. 강화도의 동쪽해안을 따라서는 외성을 쌓고 돈대, 진, 보를 만들었습니다..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을 따라서 둘러보게 됩니다.

초지진은 입장료가 있습니다... 700원 .. 갑곶돈대, 고려궁지,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을 합쳐서 통합입장권을 구입하면 보다 저렴하게 둘러 볼 수 있습니다.. 통합입장권 가격은 2,700원 .. 그런데 간혹 유적지 입장료가 비싸다고 뭐라뭐라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 700원 해봤자 .. 음료수 하나 가격뿐이 안됩니다.. 우리 이런 돈은 아끼지 맙시다.. ^^





한쪽에는 커다란 노송이 서 있습니다.. 그 뒤로 성벽이 있고요 .. 노송과 성벽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때에 날아온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00여년 지났지만, 역사의 흔적은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치열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합니다.. 시간은 흘러도 흔적은 지울 수 없습니다. 노송은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초지진에 도착하니 때마침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단체 관광객들을 와서 설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뒤에 살짝 끼어서 ..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강화도는 곳곳에 역사유적이 많은 곳입니다.. 가는 곳마다 문화유산해설사가 있어서 ..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초지진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656년(효종 7년)입니다.. 이후 수 많은 전투 .. 특히 구한말 외세의 침입으로 인해서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197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전적지 복원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때 복원 된 것입니다.. 초지진뿐만이 아니라 .. 강화도 동해안 일대의 진, 보 등이 대부분 이 때 복원이 되었더군요 ..





초지진은 자그마했습니다.. 성곽의 둘레가 500m정도 됩니다... 비록 성곽의 둘레가 작다 하더라도 .. 초지진이 담고 있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1866년(고종 3년) 10월 .. 프랑스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공격을 해옵니다.. 이것이 병인양요입니다.. 1871년(고종 8년) 미국은 통상을 요구하며 공격을 해오지요 .. 이것이 신미양요.. 1875년(고종 12년) 일본이 무력으로 조선의 문호개방을 요구하면서 발생한 운요호 사건에 이르기까지 ..

이 자그마한 진지는 열강들의 침입을 온 몸으로 막아 내었습니다.. 프랑스, 미국에 이어 일본의 침입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운요호 사건은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화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낳게 됩니다.. 강화도 조약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상실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구요 ..





초지진의 성곽은 현대에 와서 복원 했다 하지만, 초지진에 있는 대포는 구한말 우리군이 사용했던 진품입니다.. 서구 열강의 대포는 강력한 힘으로 초지진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들이 포를 쏴서 진지에 떨이지면 팡팡 터지니, 우리군은 이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우리도 포를 쏩니다.. 그런데 사거리도 짧고, 성능도 떨어졌습니다.. 포탄이 날아가긴 하는데, 폭약이 터지는 것이 아니고, 배를 부수기 위한 목적이지요 .. 쇠구슬 생각하면 쉬울 듯 합니다.. 그런데 .. 서구의 배는 철갑선입니다.. 쇠구슬로 부술 수 있는 목선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

초지진에 있는 포는 홍이포(紅夷砲)라고 불립니다.. 네덜란드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온 포입니다.. '홍이'라는 것은 네덜란드를 뜻하는 말입니다.. 강화도 곳곳에 홍이포가 많은데 .. 이중에서 초지진에 있는 것은 진품이라는 군요 .. 100년이 넘는 세월을 묵묵히 지켜오고 있습니다.

초지진의 홍이포는 일본의 높은 양반이 가져다가 별장 기둥 받침으로 사용했었다네요 .. 그것을 갖고와서 전시하고 있다 합니다.. 아무튼 일본 애들은 .. 
 





성곽을 따라서 걸어 볼 수 있습니다.. 서구 열강들과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입니다.. 저 바다에서 이 곳을 향해 포를 날렸을 것입니다..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해병대원들이 초지진에 상륙해서 초토화 시켰다지요 .. 이 자리에서 수 많은 우리 군인들이 쓰러져 갔을 것입니다.. 우리의 슬픈 역사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

 




초지진 앞으로는 초지대교가 있습니다.. 강화대교와 함께 ..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초지진을 이야기 할 때 신미양요를 빼 놓을 수 없지요 .. 병인양요 때는 초지진 말고 다른 곳으로 들어왔다는 말도 있더구만요 .. 신미양요는 미국이 우리와 통상을 요구하며,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일으키고, 결국 초지진으로 쳐들어 온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하게 됩니다..

그런데 .. 이 때 흥선대원군이 쇄국을 하지 않고, 개방정책을 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런 상상 .. 국사시간에 누구나 한 번씩은 해봤을 것 같은데요 ..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우리나라가 더 발전했을까요? 아니면 서구의 식민지로서 더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까요? 역사에 '만약에' 라는 것은 없지만 ...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초지진, 갯벌, 초지대교 ..





 Y군이 당시 상황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군요 ..






오늘은 강화도에 있는 초지진을 다녀왔습니다... 초지진에 대해서 잘 모르신다 하더라도, 초지진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으실 듯 합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에 이어 강화도조약까지를 연결하는 공간이 초지진이기 때문이지요 .. 국사책에도 자주 나오고요 ..

강화도로 떠나는 역사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는 초지진이었습니다.. 비록 그 크기는 작을지라도 .. 그 속에 담고 있는 역사적 이야기는 크기만 한 ... 우리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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