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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다산초당

 

백련사 동백과 다산 정약용을 만나기 위한 강진여행길입니다 .. 강진버스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시내버스)를 타고 다산초당입구에서 내렸습니다. 다산기념관에 먼저 들러 다산 정약용의 생애를 살펴봤습니다. 다산기념관에서 다산초당까지는 800m 정도 걸어갑니다 ..

 

 

다산기념관에서 출발합니다 .. 농촌마을을 지나갑니다. 가는길에 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었습니다. 이때가 3월 중순 .. 서울은 꽃망울이 터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 그런데 강진에 와서 하얗고 노란 꽃망울을 만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 사이사이 보이는 동백꽃도 예쁘고요 .. 그렇게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릅니다 ..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 작은 찻집도 있고요 ..

 

 

 

 

 

이제부터 다산초당까지는 산길을 올라야합니다 .. 10분 정도 .. 길이 시작하는 때 .. 땅 속에 있어야 할 나무뿌리가 땅 위로 올라와 있습니다 .. 소나무뿌리가 서로 뒤엉켜 세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 사람들이 뿌리를 밟으면, 나무가 아플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더군요 .. 흙을 올려주면 안될까? 라는 생각도 해보고요 ...

 

정호승 시인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 하였습니다 .. 뿌리의 길이 유명해진것은 시인의 시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 시인이 뿌리의 길과 관련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 옮겨봅니다 .. 출처 : 강진일보

 

"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밟힐 때마다 그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겠는가. 그러나 뿌리는 묵묵히 아픔을 견디고 자신을 힘껏 밟고 올라가는 이들의 밑받침이 되어 준다. 이는 다산 선생의 시대적 희생과 상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뿌리마다 다산 선생의 인고의 눈물이 매달려 있다"

 

 

 

 

 

 

뿌리의 길을 지나면 울퉁불퉁 바윗길이 나오기도 합니다 .. 등산화가 필요한 구간입니다 .. 그렇게 길을 오르다보니 나뭇잎 사이로 다산초당이 살며시 보입니다 .. 길 옆에는 대나무 난간이 있습니다 .. 대나무 위에 누군가가 올려둔 동백꽃잎이 있습니다 .. 대나무가 동백꽃을 불꽃처럼 피웠습니다 ..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

 

 

 

 

 

다산초당에는 4개의 건물이 있습니다 .. 다산초당이 가운데 있고요 .. 양 옆으로 서암과 동암이 있습니다 .. 동암옆에 천일각이 있습니다 .. 산길을 오르면 왼편으로 서암이 있습니다 .. 서암의 제자들이 기거하던 곳이었습니다 .. 원래는 초가였습니다 .. 허물어져 흔적만 있던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복원하였습니다 .. 지금은 기와집 .. 차와 벗하여 밤새도록 학문을 탐구한다하여 다성각(茶星閣)이라고도 합니다 ..

 

 

 

 

 

다산초당(茶山草堂)입니다 ..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 할 때 기거하던 곳입니다 .. 다산이 처음부터 이곳에서 지낸것은 아닙니다 .. 사의재, 보은산방, 이학재의 집 등을 거쳐 다산초당에 거처를 마련하게 됩니다 ..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18년중 이곳에서 10년을 보냅니다 .. '초당'이라는 이름처럼 원래는 초가였습니다 .. 복원하면서 기와집이 되었습니다 ..

 

다산초당 앞에 평평한 바위가 있습니다 .. 다조(茶竈)입니다 .. 차 달이는 부뚜막으로 쓰였습니다 .. 다산은 약천에서 물을 떠서, 다조에서 물을 끓이고 차를 마셨습니다 .. 약천은 약수물입니다 .. 다산초당 뒤편에 있습니다 ..

 

 

 

 

 

다산초당은 해남 윤씨와 관련 있습니다 .. 다산의 어미니가 해남윤씨입니다. 이곳은 귤원처사로 불리던 윤단이 후손을 가르치던 서당이었습니다 .. 정원이었다고도 하고요 .. 다산이 이곳에 초대를 받고 올라왔는데, 맘에 들었나봅니다 .. 조용한 산세에서 학문 연구하기에 좋은 환경이기도 했고요 .. 이곳에 기거하고 싶다는 마음을 해남 윤씨측에 전하였고, 해남 윤씨측에서 허락하면서 다산초당이 시작됩니다.

 

 

 

 

 

다산초당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 연못 한가운데는 돌무더기가 있고요 .. 연못은 연지(蓮池)라 불렀습니다. 다산이 머물기전부터 있었습니다. 다산은 연못을 넓히고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석가산(石假山)이라 했습니다. 가짜 산이라는 뜻입니다 .. 연못과 돌무더기를 합쳐 연지석가산이라고 합니다 ... 

 

참고로 다산4경이라 해서 다조, 연지석가산, 정석바위, 약천이 있습니다 ..

 

 

 

 

 

다산초당에서 만나는 다산 정약용

 

다산은 정조가 무척 아끼던 신하였습니다. 다산은 학문적 성과로 정조에게 보답하였습니다. 정조가 죽으면서 노론세력이 힘을 갖게 됩니다 .. 상대적으로 다산은 남인이었고요 .. 정약용이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유배를 보냅니다 .. 정약용 셋째형, 매형은 천주교를 믿었으나, 정약용이 천주교를 믿지는 않았다는군요 ..

 

다산은 다산초당에서 10년을 머물게 됩니다 ..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다산의 대표적인 저술은 다산초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이곳에서 600권 정도 책을 저술했다고 합니다 .. 학문적 노력으로 정약용의 실학사상이 집대성됩니다 .. 다산초당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습니다 .. 산 속의 작은 집이지만 다산이 머물던 당시는 많은 사람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는 큰 집이었을것입니다 ..

 

 

 

 

 

다산초당 뒤편에 떨어진 붉은 동백 ..

 

 

 

 

 

다산초당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 당시 정약용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부터 .. 이렇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것까지 .. 때가 때인지라 관광객들이 많아서 시끌시끌한 것이 깊은 사유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 다산초당 그 하나만으로 아름다운 발걸음이었습니다 ..

 

 

 

 

 

이곳은 동암이고요 .. 동암은 공부하고, 책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천일각입니다 .. 복원한 것입니다 .. 천일각에서 보는 풍경이 좋습니다 ..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와서 머물렀던 다산초당입니다 .. 만덕산 숲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 다산은 다산초당에서 10년을 지냈습니다 .. 초야에서 지낸 긴 세월 .. 힘든점도 많았겠지만 .. 그의 학문적 성취가 깊어졌음은 분명합니다 .. 숲속에 있는 작은 집 한채가 주는 감동이 좋았습니다 .. 이제 산길을 걸어서 백련사로 이동합니다 .

 

다산기념관, 다산초당까지 버스타고 가는것이 궁금하면 .. http://raonyss.tistory.com/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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