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죽림재
여름 배롱나무꽃을 찾아 떠난 담양 여행길입니다. 이번 여행의 핵심 목표는 명옥헌 원림과 소쇄원을 둘러보는 것입니다. 출발 전 지도를 살펴보니 명옥헌 원림에서 소쇄원으로 가는 길목에 죽림재, 식영정, 한국가사문학관 등이 가깝게 모여 있더군요. 동선상 인근의 여러 명소를 함께 둘러보면 여행길이 더욱 풍성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죽림재를 놓치지 않고 찾아가길 참 잘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좁은 시골길로 안내합니다. 맞게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윽고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도착을 알립니다. '어디가 죽림재지?'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죽림재는 일반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방문객을 위한 별도의 주차장이 없습니다. 저는 죽림재를 지나 한적한 길가에 차를 대었습니다. 주차 후 죽림재 쪽으로 올라가 보니 차 2~3대 정도를 댈 만한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명옥헌 원림에 비하면 이곳은 찾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저를 제외하고 세 명 정도 보였습니다. 입구 쪽에 서 있던 차를 타고 온 분들인 듯합니다. 그분들도 사진 몇 장 찍고는 이내 자리를 떠났습니다. 죽림재는 입구부터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명옥헌 원림보다 개화 상태가 훨씬 좋아서 여행자의 마음을 단번에 들뜨게 했습니다.

죽림재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연못에는 소시지를 떠올리게 하는 부들이 자라고 있고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고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꽃가지 사이로 살며시 드러나는 한옥의 모습. 오랜 세월을 품은 고택이 자연 품 안에 폭 담겨 있습니다.

배롱나무 뒤로 보이는 건물이 죽림재 메인 건물인 죽림서원(취사당)입니다. 죽림재 한 바퀴 돌아본 후에 죽림서원을 오릅니다. 죽림서원은 문이 활짝 열려 있어 누구나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장서각(藏書閣)은 창녕 조씨 문중의 선인들이 남긴 서적과 문적 등 소중한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서고 건물입니다.

비석군

비석군 앞에서 바라본 장서각과 충효정려

충효문을 지나 들어서면 충효정려(충효각)가 있습니다. 충효정려는 조부(曺簿) 선생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부친상을 당했을 때 3년간 시묘살이를 한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정려 내부를 들여다보니 의외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림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후손들이 건물을 중수하고 정려각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내부 비석이 유실되었거나 아예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려(旌閭) : 정표할 정(旌) 마을 려(閭). 충효와 열행을 마을에 드러내어 알린다.
열행(烈行) : 굳센 절개(정절)와 훌륭한 행실.

충효문 쪽에서 바라본 죽림재의 풍경은 포근하면서도 고요함이 가득합니다. 이런 공간이라면 절로 학문에 몰입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물론 진정한 학자는 장소를 가리지 않겠지만요.

죽림서원 오른쪽으로 올라가니 '죽림재(竹林齋)'라고 적힌 현판이 걸린 건물이 나타납니다. 한쪽에 죽림재의 역사가 담긴 안내문이 있어 천천히 읽어봅니다. 죽림재는 원래 창녕 조씨 문중의 인재들이 학문을 닦던 공간입니다. 죽림 조수문(1426∼?) 선생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처음 세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1623년 죽림 선생의 6대손인 삼청당 조부 선생이 다시 지었습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48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죽림재 뒤편의 앙지문(仰止門)을 지나면 사당인 죽림사(竹林祠)가 나옵니다. 보통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라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앙지문은 다행히 열려 있었습니다. 죽림사는 죽림 조수문 선생과 그 후손들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08년(숙종 34)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역시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2000년대 들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앙지문 앞에서 바라본 죽림재

취사당(죽림서원) 옆에 약수가 졸졸졸. 바가지가 있는 것을 보니 마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죽림서원으로 쓰여 있습니다. 취사당으로도 부릅니다.

취사당 뒤 세일재 주변으로도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세일제(歲一齋)는 창녕조 씨 입향조인 조유도의 묘각(제사를 위해 만든 건물)입니다.

취사당 앞에서 바라본 세일재

세일재 앞에서 바라본 취사당

취사당(聚斯堂) 마루에 올라봅니다. 건물 앞면에는 '죽림서원', 뒷면에는 '취사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앞뒤가 바뀐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취사당은 출입을 금지하지 않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취사당의 한자를 풀이하면 모을 취(聚), 이곳 사(斯), 집 당(堂)으로 직역하면 '여기에 모인다'는 뜻입니다. 후손들과 유생들이 이곳에 모여 학문을 닦고 조상을 공경하며 화목을 도모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취사당 마루에 오르니 들어열개문이 위로 올려져 걸쇠에 걸려 있습니다. 겨울에는 문을 닫아 벽으로 쓰고 여름에는 문을 들어 올려 풍경과 바람을 맞아들이는 조상들의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나무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한옥 마루는 강렬한 여름 햇살 아래서도 유독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취사당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마루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취사당 중수기

마루에 앉아 밖을 바라봅니다. 조금 전 죽림재로 들어오며 보았던 배롱나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문틀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 문틀 자체가 자연을 담아내는 프레임이 되어 줍니다. 그 안에 담긴 붉은 배롱나무와 주변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완성합니다.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조화를 이루는 한국 전통 미학, '차경(借景)'의 매력입니다.

다소곳이 앉아 조용히 사색에 잠겨봅니다. 열린 문 사이로 살랑이는 바람이 들어옵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과 바람이 취사당 안으로 들어서며 한결 순해집니다. 복잡했던 생각들을 잠시 접어두고 가만히 '멍때리기'를 해봅니다.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집니다.
죽림재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명소를 찾아낸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뿌듯하고 기쁩니다. 취사당은 글을 읽고 학문을 닦던 공간입니다. 비록 지금 내 손에 책은 들려 있지 않지만 고요한 분위기 속에 머물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책장을 넘겨봅니다.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장소로 발길을 옮깁니다. 죽림재를 나서며 죽림서원(취사당)과 죽림재 전체의 풍경을 다시 한번 눈에 담습니다. 언젠가 꼭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해 봅니다. 그때는 뜨거운 여름이 아닌 선선한 봄이나 가을이어도 좋겠고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설경도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울긋불긋 피어난 배롱나무꽃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며 길을 나섭니다.

길가의 들판에는 벼가 쑥쑥 자라나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벼 이삭이 패어 황금빛으로 물어가고 있겠습니다. 어느덧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록을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정리하며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순리를 느껴봅니다.
유명한 명옥헌 원림이나 소쇄원은 사전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죽림재는 별다른 기대 없이 가볍게 들른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담양의 그 어떤 명소보다 가슴 깊이 남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름난 관광지라기보다는 한 가문의 깊은 역사가 숨 쉬는 유서 깊은 공간입니다. 문을 닫아둘 법도 한데 이렇게 기꺼이 개방하여 여행자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해 주신 문중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 다음 목적지인 식영정과 한국가사문학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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