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성산 종달 하도
오랜만에 제주도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녀온 지는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제주에서의 즐거웠던 기억만큼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숙소는 성산에 잡았습니다. 성산에서 제주국제공항으로 이동하는 길, 특별히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느끼며 천천히 나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숙소에서 나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기념품 가게입니다. 함께 오지 못한 손주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성산 일대의 큰 선물가게를 찾았습니다. 겉표지에 제주 지명과 예쁜 풍경 사진이 선명하게 박힌 과자 몇 가지를 골라 담습니다. 제조원을 보니 제주도가 아닌 다른 지역입니다.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제주에 다녀왔음을 추억하고 나누기에는 충분히 기분 좋은 선물입니다.

제주도 일주도로인 1132번 도로는 4차선으로 시원하게 뻗어 있지만 이번에는 일주도로 대신 해안과 마을의 작은 골목길을 따라 달려봅니다.
가다 보니 어느 건물 앞에 차들도 많고 사람들도 북적북적합니다. 알고 보니 고성오일장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고성오일장은 끝자리가 4와 9인 날에 열리는데 이날이 장날이었던 것이죠. 아직 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이라 제주만의 아주 특별한 구경거리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예고 없이 시골 장터의 활기를 느껴보는 것도 충분히 재밌습니다.

20~30분쯤 드라이브를 하다가 잠시 쉬어갑니다. 마침 화장실도 들를 겸 종달리에 있는 우도 도항선 대합실에 차를 세웠습니다. 보통 우도로 들어가는 배편은 성산항에서 많이 이용하지만, 이곳 종달리 종달항(두문포항)을 기점으로 운항하는 도항선도 있습니다. 종달리 도항선이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 없이 조용했습니다. 지금도 배가 다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안내문과 요금표, 우도 소개 책자 등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을 보니 운항하긴 하는 모양입니다. 포스팅하며 알아보니 지금도 정상 운항을 하고 있네요. 겨울에는 하루 4번, 여름에는 하루 6번 운항한다고 합니다. 성산항에 비하면 횟수는 적지만 호젓하게 이용하기 좋아 보입니다.

운항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날씨 문제로 휴항한 것인지 배는 볼 수 없었지만 종달항의 존재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반갑습니다. 정적만이 흐르는 잔잔한 항구의 풍경을 바라보며 배가 떠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종달'이라는 지명은 어감이 참 통통 튀고 좋습니다. 종달리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해지는데 종달항 앞에 있는 지미봉이 종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아니면 제주목의 동쪽 끝 마을이라 해서 종달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종달항을 두문포항이라고도 부릅니다. 문이 두 개이거나 입구가 멀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도 도항선 대합실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해변이 펼쳐져 있습니다. 지도상으로도 별도의 이름이 없는 소소한 해변입니다. 제주 바다를 다채롭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이름 없는 해변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심이 얕아 바닷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입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주 상쾌합니다.

종달항 바로 앞에는 우뚝 서 있는 지미봉이 보입니다. 지미는 땅의 끝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비고가 제법 높고 급경사라 오르기 쉽지 않은 오름입니다. 어떻게 잘 아냐고요? 바로 전날 지미봉에 올랐다가 너무 힘들어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거든요. 예전에 제주올레길을 걸으며 올랐을 때보다 이번이 훨씬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만큼은 올라오며 흘린 땀방울을 한 번에 잊게 할 정도로 예술입니다.

드라이브는 계속 이어집니다. 조수석에 앉으신 어머니도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휴대전화로 연신 풍경을 담으셨습니다. 아직 더위가 살짝 남아 있는 초가을이라, 에어컨을 끄고 차창을 내려 제주의 시원한 바람을 차 안 가득 담아봅니다.

구좌읍 하도리로 올라오니 바다 멀리 토끼섬이 눈에 들어옵니다. 간조(썰물) 때에는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지나갈 때는 만조라 섬이 제법 멀어 보였습니다. 왜 '토끼섬'이라 부를까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하도리 마을 주민 한 분이 섬에 토끼를 방사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여름철 섬 전체에 하얗게 피어나는 문주란꽃 무리가 마치 토끼들이 모여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입니다.

토끼섬이 보이는 하도 어딘가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파란색과 오렌지색이 함께 묶여있는 올레길 리본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리본이 90도로 꺾일 정도로 바람이 제법 강합니다. 근 10년 전에 올레길 완주하고 다시 시작해야지 했는데 아직 출발도 못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도전해야지!

드디어 구좌읍 하도 포구에 도착했습니다. 알록달록 무지개색 방호석과 귀여운 Hado 글자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조용하고 호젓한 바닷가에 예쁜 색감이 더해지니 한층 화사하고 활기찬 기운이 돕니다. 하도포구 바로 앞에는 조선시대에 쌓아 올린 성곽인 별방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주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역사적인 성곽, 별방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제주도는 꼭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거나 바쁘게 움직여야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차를 타고 유유자적 해안도로를 달리며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부모님께서 오래 걷기 힘들어하셔서 많은 곳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며 중간중간 쉬어가는 이 소소한 코스도 즐거워해 주시니 참 다행이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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