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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근대역사관

 

영란회집에서 민어를 잘 먹었습니다. 목포에 와서 밥만 먹고 가는 것은 재미없지요. 목포의 역사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영란회집과 멀지 않은 곳에 '목포근대역사관'이 있습니다. 목포는 대한제국을 거치고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더욱 주목받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서남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목포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힘이 작용했지만요.

 

목포의 근현대를 찾아갑니다.   

 

 

 

영란회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 목포근대역사관을 만납니다. 저 뒤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입니다. 그전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국도 1, 2호선 기점 기념비'입니다.

 

국도 1호선은 목포 - 서울 - 신의주 사이 도로입니다. 1번 국도라고 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생각하기 쉬운데 방향이 다릅니다. 1번 국도는 1904년부터 공사가 시작합니다. 일본 주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쌀, 소금 등의 주요 산물을 쪽쪽 뽑아갈 목적이 큽니다. 국도 2호선은 목포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도로입니다. 1번, 2번 국도 모두 도로가 더 연장되면서 지금은 기점이 변경되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갑니다. 목포근대역사관이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건물 벽면에 욱일승천 문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건물이 2곳입니다. 지금 사진으로 보는 건물은 목포근대역사관 본관입니다. 과거 일본영사관입니다. 목포가 개항하고 1900년 12월에 완공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양식이고요. 광복 후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사용하였습니다. 

 

2관은 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이용하던 건물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2관이 본관이었다더군요. 2관 모습은 본 포스팅 아래에서 소개합니다. 관람료가 있습니다. 어른 2천 원. 여기 1관에서 매표하면 2관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목포의 역사를 시대 순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목포(木浦)'라는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나무가 많거나 목화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불렸다는 설만 전해옵니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이자 왜적의 침입을 막는 길목이라는 의미로 목포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목포가 보다 큰 의미로 역사 속에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입니다. 1897년 10월 1일 목포항이 개항합니다. 부산, 원산, 인천 다음으로 개항하였습니다. 고종이 칙령으로 개항한 최초의 항구입니다. 1897년 10월 26일 목포에 영사관이 만들어집니다.

 

 

 

 

 

대한제국은 개항을 통해 관세 수입을 늘리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재정을 확충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목포와 목포 옆 진남포에서 걷어들인 관세수입이 정부 재정의 20%를 차지했다고 하니 상당한 규모입니다. 정부는 목포에 무안관리서와 목포해관을 설치합니다. 무안감리서는 개항장 내에서 외국 영사관과 외교, 통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든 기관입니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생명, 재산 보호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당시 목포는 무안에 속해있기에 무안관리서가 된 것입니다.

 

오른쪽 비석은 '목포각국조계'라고 쓰여있습니다. '조계(租界)는 외국인들이 거주하거나 영업할 수 있도록 토지를 빌려주기도 하고 치외법권을 부여한 지역입니다. 목포에도 조계지가 만들어집니다. 일본인들은 조계지 내에 새롭게 개발된 곳에서 살게 되고요. 한국인들은 조계지 밖으로 내쫓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 내에는 벽난로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구 일본영사관에는 9개의 벽난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8개를 복원했습니다. 

 

 

 

 

 

목포를 기점으로 한 수탈에 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목화를 주목해야 합니다. 목포에는 '삼백(三白)'이 있습니다. 쌀, 소금 그리고 목화. 1906년 한국면화주식회사 목포지점이 만들어고 면화를 심기 시작합니다. 그 면화는 다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왼쪽에 있는 기계는 조면기입니다. 목화의 솜과 씨를 분리하는 기계입니다. 조면 공장에서는 조선사람들이 일합니다. 어린아이들까지.

 

일제는 우리의 산물을 수탈하기 위해 호남선 기찻길을 만듭니다. 호남선은 전라도에서 생산하는 쌀은 군산과 목포로 운반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산과 목포에서 배에 실어서 일본으로.

 

 

 

 

 

 

목포에 외래문화가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근대교육이 시작되고 일본인들을 위한 학교도 만들어집니다. 근대 의료시설과 전신, 우편제도가 목포에 들어오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신식 생활용품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유성기가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음반을 올려놓으면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그 원리가 알듯 말듯합니다. 

 

목포근대역사관에서는 이난영의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로 시작되는 노래. 목포의눈물은 1935년 레코드 회사인 오케이레코드 실시한 전국 6대 도시 향토 찬가 공모에서 1등으로 뽑힌 노래입니다. 당시 19세의 이난영이 불러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사가 바뀌기도 했답니다. 목포의 추억, 목포는 항구다 등의 노래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목포시가지 모형입니다. 일제강점기 목포에 있던 건물 모형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목포 구 청년회관, 구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 강당, 조선은행 목포지점, 호남은행 목포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등이 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사용되고 있고요.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방공호가 있습니다. 방공호는 비행기 폭격에 대비해서 만든 굴입니다. 일제는 방공호 안에 취사시설, 공기정화시설까지 만들었습니다.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여기 유달산 방공호 길이는 85m입니다. 고하도에도 굴이 있습니다. 인간 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굴은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우리 조상들입니다. 갖은 고생으로 만들었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줄여서 동척) 목포지점이 있던 곳입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는 일제가 조선의 경제독점과 토지, 자원의 수탈을 위해 만든 국책회사입니다. 일본인들의 식민지 개척과 활동을 돕기도 하고요. 완전 계획적이고 변칙적으로 우리나라의 재산을 쪽쪽 뽑아가기 위해 만든 회사입니다.

 

당시 '다 가져가라 밥 먹는 숟가락은 이제 필요도 없다'라는 말도 있었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워낙 수탈을 심하게 해 가니까 먹을게 없어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숟가락조차 필요 없다는 것이고요.

 

2관도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본관에서 입장권 구매했으면 여기는 그냥 들어가도 됩니다.

 

 

 

 

 

 

광복 후에는 해군기지 건물로 사용하다가 1989년부터는 빈 건물로 방치되었습니다. 2006년부터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일본이 동척을 통해 악랄한 짓을 하긴 했지만 건물만 보면 의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1920년대 만들어진 건물이 별로 없다네요. 전라남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애들이 지은 건물은 정말 단단합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단단히 지었냐면 얘네들이 우리나라를 평생 지배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관에 비하면 안에 내부는 좀 낡아 보입니다. 사진이 많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용했던 금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조선육지면발상지'라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육지면은 면화의 한 종류입니다. 목포에서 목화가 재배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비석입니다. 

 

 

 

 

 

2층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A4지로 경고문이 쓰여 있습니다. 일제의 만행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기에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의 관람은 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심신이 좀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둘러보았습니다. 이 참을 수 없는 분노. 아베가 지금 하는 짓을 생각하면 더 열받습니다.

 

 

 

 

목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목포근대역사관을 다녀왔습니다. 일제의 수탈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이 사용하던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보존해야 되나, 허물어야 하나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역사의 현장으로 두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고 되풀이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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