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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11월의 어느 날 강릉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약속 시간까지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습니다. 약속장소와 가까운 곳에 '오죽헌' 이 보입니다. 그러고보니 강릉은 많이 갔다왔는데, 오죽헌을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늦가을의 청명한 날씨속에 오죽헌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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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오죽헌' 입니다. 헌죽오 아니구요. 갑자기 우스개 농담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전에 시골에 있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남대문을 보더니, '남대문 글씨가 아주 좋구만' 그랬다는군요. 이게 뭐가 웃기냐구요? 남대문의 본 명칭은 '숭례문' 이죠. 현판에도 숭례문이라고 되있구요. 무식을 제대로 알린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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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은 검은색의 대나무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일반적인 대나무는 녹색이지요.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 가 태어난 유서깊은 곳입니다. 완전 어렸을 때 위인전 이름에 '이이' 라고만 되있어서 이게 뭐야 하고 웃었던 기억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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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역사, 도덕, 윤리, 철학 등등 율곡 이이가 빠지는 곳이 없죠. 각종 시험에서 무수히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큰 학자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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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 신사임당입니다. 우리나라 현금 최고액 5만원짜리의 모델이기도 하시지요.  다음 백과사전에는 '조선 중기의 예술가' 라고 나오는군요. 신사임당은 시, 서, 화 모두 뛰어 났다고 합니다. 신사임당 동상 아래에는 직접 그린 그림들이 담겨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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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늦가을의 붉은 단풍이 살짝 살짝. 여인들 볼터치 하듯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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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동상의 모습과 영정의 모습이 조금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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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안으로 들어옵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문성사' 입니다. 율곡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입니다. 문성(文成)은 1624년 인조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로 "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큰 소나무는 '율곡송' 이라는 별칭이 있는 소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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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이 진짜 오죽헌입니다.  오죽헌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입니다. 율곡 이이가 태어나던 날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었다 하여 '몽룡실' 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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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된 '율곡매' 입니다. 수령은 약 600년 정도 되었습니다. 1400년 경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훈이라는 분이 오죽헌을 지으면서 나무도 같이 심은것입니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었다고 합니다. 신사임당이 매화를 잘 그렸다고 하는데, 이 나무가 그 영향을 준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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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이 청명합니다. 가을이 짧은게 아쉽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더위가 수그러 들면서 '어! 가을이 왔네?' 라고 느끼면, 어느새 낙엽이 떨어지고, 가을을 즐기려고 하면 겨울입니다. 특히나 올해 가을은 특히나 다사다난 했던지라, 더욱 기억에 남고, 고마움도 큰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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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옆으로 난 문을 너머 바깥채로 가봅니다.  오죽헌은 조선초기에 지어졌고, 1505년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에 의해 전승되어 왔습니다. 이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오죽헌(별당)과 바깥채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바깥채의 툇마루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겨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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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각입니다. 울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 과 어린시절 사용하였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 것입니다. 정조가 율곡이 쓰던 벼루와 친필로 쓴 '격몽요결'이 오죽헌에 있다는 것을 알고 궁궐로 가지고 오게 합니다. 그리고 벼루 뒤에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글을 새겨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 보냈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잘 보관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 '어제각' 입니다.

 




'벼루' 입니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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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민속관' 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과거 결혼식에서 입었던 옷들이 있군요. 왼쪽은 '원삼' 이라하고 오른쪽은 '단령' 이라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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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민속관 한쪽에서 기념품을 판매합니다. 신사임당의 5만 원, 율곡이이의 5천 원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금이 가장 많은 곳이 오죽헌 일듯 합니다. 돈으로 열쇠고리, 핸드폰고리 등을 만들었는데 썩 이뻐 보이지는 않네요. 저는 신사임당의 그림이 들어간 책갈피를 샀습니다. 물건을 사면서 5천원을 냈는데 느낌이 새롭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쁘고 비싼 모자(母子)지간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5만원, 5천원 을 들고 보고 다니겠군요. 그러고 보니 저는 5만원권 본 적이 별로 없네요.

요즘 보면 자식이 성장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느끼게 됩니다. 현대 우리나라 부모들 학교 성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고, 아이가 성장하고 커가는 과정 속에서 지나친 간섭과 통제를 거듭하지요. 뭐 안 그런 분들도 많지만. 요근래 이런 경우를 좀 많이 봅니다. 자식이 잘 크기 위해 부모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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