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능포항
어느덧 날씨는 가을입니다. 지난 여름휴가 이야기를 다시 해보려 합니다.
저는 거제도와 통영 일대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한 달 전부터 기대와 설렘에 부풀었습니다. 직장 동료 오이사(예명)와 함께 거제도 외도를 목적지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때마침 올라와주었고 우리는 갈 곳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갑니다. 어디로? 거제도로.
태풍이 오건 말건 장승포행 버스에 오릅니다. 이미 외도로 가는 유람선 예약은 날씨 때문에 뜨지 못한다는 연락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장승포로 가는 심야버스가 있습니다. 버스에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 버스가 사천, 통영을 거쳐서 장승포까지 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내렸고 장승포에서 내리는 사람은 몇 명 없습니다. 외도 들어가는 유람선은 장승포 말고도 여러 곳이 있습니다. 일정상 심야버스를 타고 가면 시간 절약이 될 것 같아서 장승포까지 간 것입니다.
장승포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 가로등 불빛만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일단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갑니다. 맥주 2캔과 과자를 삽니다. 점원에게 바닷가로 가는 길을 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를 향해 걷습니다.
그 바다가 어디인지? 얼마나 걸리는지? 모릅니다. 무작정 걷습니다. 아침에 신문 배달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신문보급소만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을 뿐.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걸은지 20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어디선가 살며시 들려오는 파도소리. 바람 따라 코 끝을 스치는 짠 내음. 그래 여기가 바다구나. 반갑다.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아니?
그래도 하늘은 우리를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태풍이 온다는데 비가 안 옵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요. 늦여름이지만 선선한 가을 느낌이 드는 새벽이었습니다. 바닷가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도 있군요. 마치 짜고 치는 것처럼 딱딱 갖춰져 있습니다.
우리들은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찐한 인생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 바다와 하늘이 정말 예뻤기에. 태양이 떠오르면서 만들어 준 놀라운 광경에 점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태풍 올라온다고 방송에서는 계속 난리였지만 태풍이 올라오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남해안 한가운데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도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외도를 못 간 것도 아쉽지 않았습니다. 외도야 나중에 갈 수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니까요.
잡설은 여기까지 풀고 도대체 어떤 하늘이기에 이 놈이 잡설이 이리 길었는지. 직접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밑으로는 사진만 쭈욱 펼쳐집니다.
칡흙같이 어둡 던 하늘은 점점 붉은색으로 타오릅니다. 그 붉은색은 점점 더 퍼져 바다까지 뒤덮습니다. 한 낮 독야청청 푸른색을 자랑하는 하늘과 바다는 붉은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바닷가의 한 마리 새는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 불사조가 됩니다. 이 모습을 카메라가 아닌 내 두 눈에 담아서 저장해 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타오름은 더 넓고 깊게 퍼져나가도 좋습니다.
저기 이름모를 산 뒤로 햇님이 떠올랐습니다. 햇님이 부끄러운가 봅니다. 동그랗게 짠하고 떠오르지 않고 산 뒤로 구름 사이로 숨어 있습니다. 구름들은 그런 햇님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습니다. 찬란한 여명은 감춰진다고 해서 볼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안겨 준 거제도의 햇님이 고맙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하늘과 바다를 바라 보았습니다. 날이 밝았으니 포구 주변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태풍이 올라오기에 조업을 나가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한두 명의 아저씨들이 낚시를 합니다. 동네 주민들이 강아지 데리고 나와 포구를 거닙니다.
새벽의 포구는 조용합니다. 평소 같으면 시끄런 알람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이미 저는 자연의 소리를 따라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여유, 쉼, 힐링 이딴 단어들이 마구 생각나는 그래서 행복한 시간입니다.
밤 바다를 비추는 하얀 등대 빨간 등대는 든든히 서 있습니다. 별일 없었다는 듯이 말이죠. 태풍이 오긴 오나 봅니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의 힘이 제법 매섭습니다. 간혹 힘찬 파도는 방파제를 넘으려고도 합니다. 그 와중에도 비둘기들은 떨어진 새우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구석구석 날아다닙니다.
방파제에서 나와서 다시 장승포터미널쪽으로 가려는데 '양지암 가는 길'이라는 표석이 보입니다. 양지암은 뭐지?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오이사를 꼬셔서 가봅니다. 딱 봐서 오이사는 가기 싫은 눈치지만 모른 척하고 끌고 갑니다. 그런데 중간에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었다기 보다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헤맸습니다. 중간에 군부대가 있는 것이 큰 함정이었습니다. 저 혼자라면 길을 찾으려 했겠지만 힘들어하는 오이사를 계속 볼 수는 없어서 후퇴합니다.
다시 장승포터미널 방향으로 걷는대 시내버스 정류장이 보입니다. 구조라해수욕장 가는 것과 거제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구조라해수욕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해수욕장까지 가서 다시 버스로 어떻게 이동해야 되는지 막막합니다. 거제시내로 이동합니다. 바다는 볼 만큼 봤다는 공감도 있었고요.
그래서 10번 버스를 타고 거제시내 고현터미널까지 갑니다. 장승포 시내를 돌아다닌데 똑같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조선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가방 하나씩 들고 가는 그들의 모습. 서울 도심의 출근 모습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그래서 유심히 바라봅니다.
버스 안에는 출근하는 사람, 학교 가는 학생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놀러 왔다는 거. 은근 통쾌합니다. 하지만 심야버스로 피곤한 우리들은 어느덧 꿈나라로 갑니다. 태풍이 반갑지는 않지만 거제 능포항의 새벽 풍경은 평생 잊히지 않을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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