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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

우리나라의 경치 좋은 곳에서는 정자, 누각이 있습니다.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 군사적 목적에 의해서 등등 그 목적은 다르지만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예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의 남강에도 멋진 누각이 있습니다. 그 이름하여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힐 만큼 그 멋스러움이 극강에 이르는 촉석루입니다.

촉석루에는 멋스러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주성에서는 왜적과 싸운 백성의 피 흘림이 있었고, 당대의 명기 논개는 적장을 품에 안고 남강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묵묵히 지켜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역사의 현장으로서, 시민의 휴식처로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촉석루로 향합니다.


 


 

진주를 찾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10년 전쯤에 처음 진주를 찾았을 때의 느낌은 '깔끔함'이었습니다. 그때 애인과 애인 친구와 함께 삼천포를 가려고, 진주에 밤기차를 타고 내려왔었거든요. 새벽에 진주역에서 내려서 버스터미널로 가는데 동네가 아주 깨끗했습니다. 서울의 번잡함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어요.

두 번째로 찾은 진주.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저는 촉석루까지 걸어가기로 합니다. 터미널 앞 복잡함을 벗어나자마자 진주 남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봄 햇살을 받은 남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남강 옆 촉석루 앞으로 장어집이 많더군요. 장어 먹고 힘 좀 쓰고 싶은 마음만 담고 촉석루 앞에 당도합니다. 터미널에서 10분 정도 걸린 듯합니다.

2천 원 내고 입장권을 구입하고 들어갑니다.




 



 

촉석루는 진주성 안에 있습니다. 촉석루(矗石樓)에서 '촉석'은 모난 돌이라는 뜻입니다. 촉석루 아래 남강가에 각이 진 돌 들이 많기에 '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진주성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촉석성' 이라 불리었습니다. 촉석루는 촉석성 지금의 진주성의 주장대(메인 지휘소) 역할을 한 것입니다.

촉석루는 1214년(고려 고종 28년)에 처음 만들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가 되었다는군요. 1618년(조선 광해군 10년)에 재건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 없어졌답니다. 이래저래 고난의 촉석루입니다. 이래저래 8번 정도 다시 지어졌다는군요. 지금의 촉석루는 1959년에 새롭게 지어 올린 것입니다. 굴곡의 역사를 담고 있는 촉석루입니다.

 


 

 

보통 문화재라 하면 주변에서 구경만 하게 되어 있으나 촉석루는 올라가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밀양의 영남루도 올라갈 수 있었지요. 촉석루나 영남루나 시민들의 온기를 담아 조상들의 숨결을 함께 하기에 더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촉석루에 올라가서 마구 뛰어다니고 나쁜 짓 하면 안 될 것입니다.가운데 현판은 '영남제일의형승'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의 물길입니다. 지금은 아파트와 높은 건물들에 가려져 있지만,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줍니다. 특히나 봄날이 되어 올라오는 연초록은 봄날의 분위기를 한층 더 예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남(경상도) 지역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말이 결코 과찬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촉석루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여인이 한 명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강물로 투신한 여인 논개. 논개의 그 장소가 바로 촉석루 아래에 의암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논개는 양반가 출신이지만 집안이 몰락하면서 최경회의 후처(첩)가 됩니다. 때는 왜군이 쳐들어오는 시기이고, 진주성도 왜군에게 함락됩니다. 왜군은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촉석루에서 열고, 논개는 기생으로 그 연회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적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함께 투신을 했던 것이지요.

논개는 자결을 결심하고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었다지요. 적장을 껴안았을 때 빠지지 않도록이요. 그만큼 꼼꼼하게 준비를 했을 것이고, 긴장되는 상황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결을 한다는 것은 정말 정말 굳은 의지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19세의 나이에.



 

 

'의기사'라는 사당을 만들어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의암에서 올려다본 촉석루.




 

 

이제 진주성을 거닐어 보고자 합니다.




 

 

진주성하면 떠오르는 또 한 명의 인물 김시민 장군입니다.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일 정도로 큰 전투입니다. 진주는 호남으로 향하는 길목이기에 진주성 전투는 필승의 각오로 임했던 것입니다.

왜군은 진주성을 치기 위해서 3만 명에 가까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쪽은 그것에 1/10 정도 수준의 군사만 있을 뿐. 하지만 김시민 장군을 중심으로 병사와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왜군 3만 중 2만이 죽었다고 하니, 승리의 환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단체로 놀러 오셨군요.




 

 

'영남포정사'입니다. 조선 후기 경상남도 관찰사의 선화당 관문이라 합니다. 선화당은 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는 곳입니다. 영남포정사 앞에는 하마비가 있습니다.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마비는 궁궐, 감영 등의 문 앞에 서 있지요. 하마비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건물이라는 뜻. 아래 포졸은 가짜예요.

조선시대에 진주는 경상좌도의 관찰사가 근무하는 행정중심지였습니다. 이후 1896년(고종 33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진주에 경상남도 도청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도청은 부산으로 갔다 지금은 창원에 있고요. 그러고 보니 진주가 갖고 있는 역사적 배경에 비하여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듯합니다.




 


 

'경절사'입니다. 고려조 충절신인 하공진 장군의 사당입니다. 사실 처음 촉석루로 향할 때에는 촉석루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다른 역사적 배경은 생각하지 못했고요. 진주성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역사적인 문화 유적이 많이 있더군요. 진주성 안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역사적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진주성 비석군.




 

 

이것은 용다리. 드래곤 브릿지.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더군요. 이야기가 궁금하면 아래 클릭 

더보기

 

 

 





 

 

북장대입니다. 성의 병력을 지휘하던 곳입니다.




 


 

진주성 성곽





유유히 흐르는 남강. 그 곁에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진주성이 있습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의 격전지였고, 한 여인의 지고지순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서 촉석루는 윤슬을 바라보며 묵묵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남 제일의 누각이라는 것은 단순히 건물이 아름답기에 붙여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진주, 남강, 그리고 촉석루. 아픔보다는 즐겁고 행복하게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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