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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촉석루

 

임진왜란 3대 대첩이 있습니다. 큰 승리를 거둔 3개의 전투입니다.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그리고 진주대첩입니다. 진주는 경상남도 서쪽에 있습니다. 일본은 진주성 함락하려고 많은 병력을 동원합니다. 진주가 가진 지리적 중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주대첩의 현장 진주성을 찾아갑니다. 진주성의 메인 촉석루도 살펴봅니다. 

 

 

중앙시장에서 육회비빔밥 먹고 진주성으로 이동합니다. 자동차로 5분 정도 걸립니다. 공북문 앞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주차장이 좁습니다. 빈자리가 몇 개 없습니다. 주차 관리하는 분들이 빈자리를 찾아줍니다. 공북(拱北)은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진주성도에 진주성의 정문으로 나와 있습니다. 2002년 복원하였습니다. 

 

 

 

 

 

 

진주성은 오전 5시부터 개방합니다. 밤에도 입장할 수 있습니다. 촉석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고요. 주차 요금은 30분까지 500원이고 시간 경과에 따라 추가 요금이 있습니다. 관람료는 어른 2,000원입니다. 관람료 면제 및 할인 대상이 많습니다. 잘 확인해서 요금 혜택 받아보시고요.

 

 

 

 

 

 

진주성 탐방로 정비 공사 중이라 어수선합니다. 뒤에 김시민 장군 동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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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복주머니가 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습니다. 

 

 

 

 

 

 

김시민 장군 동상

 

진주대첩 대승을 이끈 김시민 장군입니다. 당시 약 3천 명의 병력으로 약 3만 명의 왜군을 대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일본은 진주성을 뚫고 호남의 곡창지대에 들어가 군량미를 얻으려 했습니다. 진주성에 무너지면서 전략이 실패합니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왜군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 초기 계속 패하기만 하는 조선에 진주대첩의 승리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김시민 사후에 이순신과 동일하게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1차 전투에서 대패한 왜군은 다시 진주성으로 쳐들어옵니다. 9만 명 넘은 왜군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2차 진주성 전투에 대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나무도 따뜻하게 옷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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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우물

 

진주성의 옛 모습이나 자료를 보면 지금보다 훨씬 컸습니다. 지금의 진주성은 내성입니다. 원래 외성까지 더하면 지금보다 2~3배는 큰 성입니다. 외성 규모가 4㎞에 달한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성의 규모가 줄어들고 사라진 부분도 많습니다. 진주시에서 성을 복원하고 정비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진주성 옛날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촉석루가 웅장합니다. 

 

 

 

 

 

 

현재 진주성의 핵심 촉석루입니다. 신발 벗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촉석루 안쪽 현판은 남장대입니다. 남쪽에 있는 장대라는 뜻입니다. 장대는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올라가는 높은 곳을 말합니다.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중건과 보수를 거칩니다. 6·25 전쟁 때 화재로 소실됩니다. 1960년에 재건합니다. 

 

촉석(矗石)은 뾰족한 돌, 모난 돌이라는 뜻입니다. 진주성을 촉석성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남강 주변에 각이 진 돌들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촉석루 안에 여러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편액의 작은 글씨의 뜻을 다 알진 못하지만 많은 이들이 남강과 촉석루를 예찬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영남제일형승(嶺南第一形勝) 편액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영남 제일의 지세와 풍경이란 뜻입니다. 촉석루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촉석루에서 남강 바라봅니다. 남강과 함께하는 촉석루가 더욱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가을이면 진주성, 촉석루, 남강은 더욱더 아릅답습니다. 유등축제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꼭 가보고 싶은 남강유등축제입니다. 가운데 파란 것은 진주시 마스코트 하모입니다.  

 

 

 

 

 

 

촉석루에 올라왔습니다. 문화재라고 해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1월이지만 그렇게 바닥이 차갑지는 않습니다. 나무의 따뜻함입니다. 꽤 넓습니다. 면적이 508.6㎡입니다. 평수로 환산하니 153평 정도 나옵니다. 촉석루는 밀양 영남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힙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엽니다. 1차 진주대첩에서 왜군이 패했지만 2차 진주대첩은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논개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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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아래 의암 가는 길을 따라갑니다. 

 

 

 

 

 

 

의암에서 바라본 촉석루

 

 

 

 

 

 

논개가 누군지는 다 아실 것입니다.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인 왜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투신한 논개입니다.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린 바위가 의암입니다. 사진 속 바위입니다. 낭떠러지여서 조심히 내려가야 합니다. 사진으로 보면 의암까지 점프해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기보다 멀리 떨어져 있고 안전 문제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의암 앞에 의암사적비가 있습니다. 

 

 

 

 

 

 

촉석루 옆에 의기사(義妓祠)가 있습니다. 의기사는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논개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허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실존 인물이고 당시 나이가 19~20살 정도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의기사 논개 영정을 봅니다. 지금의 또래와 비교해 보면 영정 속 논개 모습은 성숙하고 엄숙합니다. 열 손가락에 가락지가 껴져 있습니다. 

 

논개는 기생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기생은 천대받았습니다. 비천한 계급(?)의 희생을 우대해 주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논개가 죽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평가합니다.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이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는 이미지가 강해집니다. 일제강점기 문인들이 논개를 이야기합니다. 일제에 대한 저항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역사적 사실도 사실이지만 인간으로서 여인으로서 논개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이리저리 생각해 봤습니다. 

 

 

 

 

 

 

진주성을 살펴보고 국립진주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진주성 안에 박물관이 있습니다. 박물관 가는 길에 천자총통을 만납니다.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화포입니다. 진품인지 복제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박물관에 가면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여러 가지 무기를 볼 수 있습니다. 

 

 

 

 

 

 

 

 

 

진주 여행길에 첫 손에 꼽히는 진주성입니다. 조선시대 치열했던 전투했던 조상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왜군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빠질 때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1차 진주대첩에서 승리했을 때 환호하던 조상님들의 모습도 그려봅니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임진왜란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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