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제주도 추사관

 

추사 김정희가 어떤 일을 했는지 몰라도 이름은 낯익을 것입니다. 추사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도 있고 세한도는 교과서에도 나옵니다. 추사는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왔습니다. 김정희가 머물렀던 유배지에 추사관이 있습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대정읍 안성리 거쳐 추사관까지 버스 타고 왔습니다. 버스정류장 뒤로 대정읍성이 보입니다. 추사관 가기 전에 대정읍성을 살펴봅니다. 

 

 

 

 

 

검은색 현무암으로 단단하게 성을 쌓았습니다. 조선시대 제주도는 3곳으로 나누어 통치했습니다. 한라산 북쪽은 제주목, 한라산 남동쪽은 정의현, 남서쪽은 대정현입니다. 이곳은 대정현 대정읍성입니다. 1416년(태종 16년)에 대정현을 설치하고 2년 후에 읍성을 축조합니다. 성벽 둘레는 1,614m, 높이 약 5.1m입니다. 대정읍성은 동문, 서문, 남문이 있습니다. 

 

 

 

 

 

대정읍성에 돌하르방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있던 진짜 돌하르방입니다. 돌하르방은 성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성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했습니다. 대정읍성 동문터, 서문터, 남문터에 각각 4기씩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보입니다. 추사관이라 쓰여 있습니다. 추사관이라는 글씨만 없으면 창고로 보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크고 화려한 건물 많은 제주도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추사관이 인상적입니다. 추사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오후 7시까지 관람 시간을 연장합니다.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없습니다.  

 

 

 

 

 

추사관은 지하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계단 안에 사선으로 좁은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지금이야 비행기 타면 쉽게 제주도를 갈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까지 엄청나게 멀고 먼 고통의 여정입니다. 

 

 

 

 

 

춘축(春祝), 희우(喜雨) 영조의 글씨입니다. 춘축은 봄을 축하한다는 뜻입니다. 희우는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 것을 기뻐하며 쓴 글입니다. 가뭄이 계속 이어지기에 희우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반응형

 

 

 

 

 

무량수각(无量壽閣).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 할 때인 1846년(61세)에 충청남도 예산군 화암사에 예서체로 써서 보낸 현판입니다. 획이 가늘면서 힘과 멋이 함께 들어 있어 추사체의 변천 과정을 연구하는데 기준작이 됩니다. 해남 대둔사의 무량수각 현판과 비교해서 보면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대둔사 글씨는 더보기에

 

 

 

 

 

 

 

추사관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생활을 하며 남긴 흔적을 모은 것입니다. 추사관 안에는 김정희가 쓴 글씨, 아내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그림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추사관 뒤로 김정희가 살았던 집을 복원하였습니다. 

 

 

 

 

 

 

 

 

 

 

추사 김정희 진영

 

추사 김정희는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실학자, 고증학자, 역사학자, 금석학자, 서예가 등 여러 방면에서 업적을 남겼습니다. 자는 원춘입니다. 아호가 가장 많은 분이기도 합니다. 그림마다 다른 아호를 썼기 때문입니다. 완당, 추사, 예당, 시암, 과파, 노과, 농장인, 보담재, 담연재, 천축고선생

 

 

 

 

 

김정희 흉상을 보면 고난받는 시대 지성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뒷배경 그림은 유명한 세한도입니다. 세한도에 있는 건물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추사관은 세한도를 보고 지은 것입니다. 추사관 이전에 유물전시관이 있었습니다. 김정희 유배지가 사적으로 승격합니다. 유물전시관을 철거하고 추사관을 짓습니다. 추사관은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승효상이 설계하였습니다. 

 

 

 

 

 

추사관은 층고가 높고 자연채광이 들어오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내부는 노출 콘크리트로 하였고요. 전시실이 지하에 있지만 답답하지 않습니다. 엄숙하면서도 편안합니다. 조선 후기 위대한 학자로 불리는 추사이기에 전시실을 크게 화려하게 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추사관은 단순하고 절제미 있게 지었습니다. 추사에 대한 외경심이 담겨 있습니다.

 

 

 

 

 

 

 

 

 

 

판전(板殿)은 봉은사 판전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입니다. 김정희가 타계하기 전 3일 전에 쓴 것이라 합니다. 판전 아래 벽면에서는 알쓸신잡2 방송에서 추사관 설명 부분을 보여줍니다.

 

추사 하면 세한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한도는 1844년에 제자인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입니다. 이상적은 유배 중인 스승에게 책을 보내줍니다. 추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세한도를 그려 선물합니다. 세한도는 이언적의 품에서 떠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칩니다. 개인(손창근)이 보관하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습니다. 

 

 

 

 

 

추사가 세한도 그렸을 때는 가로 69.2㎝, 세로 23㎝로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현재 세한도를 펼치면 길이가 14.7m가 됩니다. 이상적이 청나라로 그림을 가지고 가서 여러 사람에게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그림과 사연에 감동하여 댓글을 달면서 길어졌습니다. 댓글에 대댓글이 계속 달린 것이죠. 

 

 

 

 

 

 

 

 

 

 

 

 

 

 

 

 

 

 

 

 

추사 김정희는 글씨에 뛰어났습니다. 조선시대 명필 중의 명필로 꼽힙니다. 서예가로서도 명성이 높습니다. 제주도 유배를 기점으로 추사의 글씨체가 변합니다. 유배 전에는 당당하고 윤택하던 글씨체였습니다. 유배를 거치면서 군더더기와 기름기가 사라진 원초적인 모습으로 변하였습니다. 추사는 유배생활 하면서 추사체를 완성합니다. 

 

 

 

 

 

 

 

 

 

 

의문당. 김정희가 대정향교에 써 준 현판 

 

 

 

 

 

은광연세. 김만덕의 선행을 기려 가문의 3대손인 김종주에게 써 준 글씨입니다. 김만덕은 제주도가 대기근일 때 전 재산을 내놓아 제주도민을 구한 제주여성입니다. 

 

 

 

 

 

소치 허련의 묵국과 묵란. 소치는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추사의 제자입니다. 유배지를 3번 방문했습니다. 스승을 모시기 위해 그림을 많이 그려 팔았습니다. 그래서 소치 그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세한도 그려진 기념품

 

 

 

 

 

지금 제주도는 최고의 여행지지만 과거에는 최악의 유배지였습니다. 서울에서 가는 길이 멀고 힘듭니다. 제주도 가서도 먹을 것도 마땅치 않고요. 추사는 54세 때 제주도로 내려와 9년 가까이 지냈습니다.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 간 것은 윤상도 상소에 연루되었기 때문입니다. 윤상도는 3명의 고위 관료가 부패하다고 상소를 올립니다. 윤상도는 죽임을 당합니다. 상소의 배후에 김정희 아버지가 거론되었고, 김정희 상소문의 초안을 작성했다는 거짓 진술이 나옵니다. 사형당할 위기까지 갑니다. 다행히도(?) 제주도로 유배를 내려옵니다. 

 

 

 

 

 

김정희가 머물던 집을 복원했습니다. 안거리, 밖거리, 모거리, 통시 등 제주도 전통 가옥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습니다. 유배도 종류가 있는데 김정희는 위리안치입니다. 위리안치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령의 배려로 주변을 다녔다고 합니다. 9년 가까이 갇혀 있으면서 몸과 마음이 무척 힘들었겠습니다. 

 

 

 

 

 

 

 

 

 

 

김정희를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추사와 초의선사의 우정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추사는 차를 좋아했습니다. 차를 계기로 동년배의 초의선사와 절친이 되었습니다. 제주도 내려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러 초의와 하룻밤을 함께합니다. 초의도 제주도로 내려와 추사와 반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왼쪽은 소치가 그린 '완당선생해천일립상'입니다. 낯선 섬에서 생활하는 스승 김정희를 소동파의 삶에 투영시킨 작품입니다. 오른쪽은 김정희가 그린 '수선화부'입니다. 김정희는 젊은 시절 우연히 본 수선화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수선화가 제주도에 오니 지천에 깔렸던 것입니다. 수선화를 무척이나 아끼며 수선화를 주제로 여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제주도에서 조선 후기 최고의 예술가이자 뛰어난 학자 추사 김정희를 만났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분입니다. 추사관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물렀습니다. 김정희라는 위인의 역사적 기록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한편으로 잘 나가는 중년의 남성이 죽다 살아나서 낯선 곳에서 머무는 그 마음은 어떨지도 헤아려 봤습니다. 김정희 삶에서 9년의 세월은 어떠했을까요? 당시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 접속 후 ch+를 선택하면 라오니스 여행기를 카톡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300x250
반응형
그리드형
,
250x250
BLOG main image
랄랄라 라오니스
명랑순진한 라오니스의 대한민국 방랑기
by 라오니스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108)
이야기꽃 (100)
서울특별시 (67)
인천광역시 (68)
경기도 (162)
강원도 (184)
경상북도 (175)
대구광역시 (28)
경상남도 (141)
부산광역시 (53)
울산광역시 (9)
전라북도 (93)
전라남도 (187)
광주광역시 (15)
충청북도 (100)
충청남도 (184)
대전광역시 (24)
제주특별자치도 (376)
평택,안성 (14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04-19 08:05
세로형
반응형
라오니스'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