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 비행장
일제 강점기 때 제주도는 일본의 전쟁기지화 되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있어서 두 나라를 상대할 수 있었고, 멀리는 태평양전쟁을 향한 발판을 마련하기 좋은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당시 일본이 미국에게 밀리지 않았다면, 제주도에도 핵폭탄이 떨어졌을 거라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일제 강점기때 그들의 야욕이 남아 있는 시설물들이 많다. 오름에는 굴을 파놓고 지하요새를 만들었고, 고지가 좀 높다 싶으면 방공포를 설치해 놓았다. 지금 제주공항도 일본군이 전쟁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러 전쟁시설 중에서 대정읍에는 군사비행장의 흔적과 비행기 격납고가 남아 있다.
알뜨르에서 현재 농사를 짓고 있다. 들판위에 작게 올라와 있는 것들이 보일 것이다.
격납고에 가까이 가봤다. 지금은 농사의 보조시설로 쓰이고 있다...
ⓒ 황정아
가까이 가서 관찰해 볼 수 있다. 격납고 위에 올라갈 수도 있는데 위에서 아무리 쿵쿵 내려밟아도 그 모습이 꿈쩍하지 않는다...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 이 되어야 하는데는 이런 아픈역사의 유물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12월의 어느날 알뜨르의 한쪽에서는 작물이 자라고 있다.
모슬포항에서 남동쪽 송악산의 넓은 평지에 지역주민 5천여 명을 강제동원하여 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했다. 1926년부터 10여년간 건설된 비행장이 완공되자 일본은 중국 본토 폭격에 알뜨르 비행장을 사용했다. 지금도 너비 20m, 높이4m의 비행기 격납고 20여 기와 무기고, 토치카가 일본의 침탈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을 찾기가 좀 힘든점이 있지만 송악산, 산방산, 마라도를 가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지나가는 길에 한번 찾아가 봤으면 한다. 들판사이로 시멘포장으로 2차선 정도의 길이 나있다. 입장료는 없다. 지나가면서 역사의 씁씁함을 느껴봤으면 한다.
ⓒ 황정아
격납고 근처에는 '섯알오름양민학살터'가 있다. 내가 제주도 본토박이가 아닌지라 4.3사건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지만 그래도 그 슬픔에 대해서는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갑자기 끌고가 총질을 해댔다.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어느동네는 제삿날이 모두 한날이란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무 이유없이 명을 달리한 것이다. 때로는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고 사라지기도 하였다. 우리시대의 아픔이다.
제주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을 남긴 것은 4.3사건일 것이다. 이곳 양민학살터 또한 4.3사건과 연루된 곳이다. 1950년 4.3사건이 진정 국면에 들어설 무렵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은 '예비검속(범법 우려가 있는 용의자를 미리 체포하는 제도)'을 통해 무고한 제주도민을 강제 연행한 후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한밤중에 무참히 총살하고 암매장하거나 바다에 수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곳은 당시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는 장소로, 1950년 8월 20일 모슬포경찰서에 예비검속된 375명 중 252명을 총살 후 돌무더기와 함께 암매장하였던 곳이다. 당시 만행은 유족들에 의해 발각되었으나 계엄군경의 무력저지로 시신인도는 커녕 이곳은 7년 동안 출입금지 구역으로 통제되었다.
유가족들의 끈질긴 탄원으로 1956년 당국의 허가를 받아 149위를 수습하여 그중 132위를 상모리에 안장하고 '조상은 132명이나 후손은 하나이다'라는 뜻으로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고 칭하고 있다. 아직도 학살터에는 약40위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도를 보면 비행기 활주로처럼 평평하고 길게 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 서귀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분히 제주를 느낄 수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4) | 2008.12.03 |
---|---|
한석규와 김윤진이 되어보자. 쉬리언덕 (0) | 2008.10.29 |
선녀가 와서 목욕을 했을 것 같은 천제연폭포 (0) | 2008.06.18 |
제주도에서 타이거우즈와 최경주를 만나다. (0) | 2008.05.09 |
관광지 개발로 망가져서 아쉬운... 제주도 섭지코지 (4) | 2008.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