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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로왕릉

 

경상남도 김해에 있는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에서 매화를 보고 왔습니다. 이어서 국립김해박물관, 수로왕비릉 등을 보고 수로왕릉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김해 김 씨의 시조인 수로왕입니다. 그 당시 왕들이 대부분 그렇듯, 수로왕도 신비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수로왕과 가야 그리고 김해의 역사에 대해서 다가갑니다. 

 

 

수로왕비릉에서 수로왕릉까지 거리가 꽤 됩니다. 30분 정도 걸었습니다. 조선의 왕릉을 보면 왕과 왕비가 가깝게 있던데 수로왕릉 수로왕비릉은 떨어져 있습니다. 수로왕릉에 다가가니 북적북적한 시장이 있더군요.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보입니다. 김해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공장이 많다고 합니다. 수로왕릉 앞에는 광장이 있습니다.

 

 

 

 

 

 

고대 왕들은 평범하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수로왕도 그렇고요.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탄강(誕降)했다고 전해집니다. 탄강한 장소는 국립김해박물관 뒤편에 있는 구지봉.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수로왕의 탄강설화가 전해집니다. 서기 42년에는 국가로서 틀이 잡히지는 않을 때입니다. 구간(九干, 가야국 초기의 9명의 추장)들이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구간과 백성들이 구지봉으로 모입니다.

 

그때 하늘에서 '너희는 이 봉우리의 흙을 파면서 노래하고 춤추어라'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구지가를 부릅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라.”

 

 

 

 

 

가락루(駕洛樓)를 통해 수로왕릉으로 갑니다.

 

백성들은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춥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보라색 줄에 매달린 황금상자가 내려옵니다. 상자에는 6개의 황금알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6개의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절을 하고 예를 갖춥니다. 알에서 깨어난 이들은 10여 일 만에 장성합니다. 

 

이 중에서 첫 번째로 태어난 이가 수로왕입니다. 수로(首露)는 가장 먼저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수로왕이 김해를 중심으로 가야를 세웁니다. 다른 5명도 각각 가야를 세우고 왕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와 알에서 태어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설화를 통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가야가 연합국가 체제를 이루고 있었고 그중에서 김수로왕의 금관가야의 세력이 가장 컸다고 보는 것입니다.

 

 

 

 

 

수로왕과 수로왕비를 향해 봄, 가을로 제를 올립니다. 음력 3월 15일과 음력 9월 15일에 거행됩니다. 이때 돼지를 제물로 올리게 됩니다. 제를 올리기 전날 돼지에 문제가 없는지 검사합니다. 이것을 성생례라고 합니다. 성생례가 이루어지는 곳이 성생대입니다. 

 

 

 

 

 

 

납릉정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납릉은 수로왕릉의 다른 이름입니다. 보시다시피 들어가서 볼 수는 없습니다. 담 너머로 릉을 봐야 합니다. 사진 속에 보면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있습니다.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무슨 문양으로 보이시는지요? 물고기로 보이시는지요?

 

이것은 인도 아유타국의 용왕을 상징하는 신어(神魚)입니다. 이것은 수로왕비(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수로왕비 이야기는 별도로 포스팅했습니다. 

http://raonyss.tistory.com/1496

 

 

 

 

 

 

수로왕릉

 

아주 오래전에는 릉만 있었답니다. 여기가 수로왕릉이라는 표시는 있었고요. 고려 문종 때 부분적으로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조선 세종 때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때 사방 100보까지로 해서 보호구역을 설정했다고 전해집니다. 릉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선조 때입니다. 김허수라는 사람이 영남관찰사로 오게 됩니다. 김허수는 수로왕의 후손입니다. 당연히 자기 조상에게 관심이 있었겠지요.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을 대대적으로 개축합니다.

 

 

 

 

 

숭신각입니다.

 

 

 

 

 

앞쪽에 숭인문이 있고, 뒤에 숭선전(왼쪽)과 안향각이 있습니다. 숭선전은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입니다. 가락국 2대 도왕 원년(서기 199년)에 만들었습니다. 그때 그 건물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요. 1889년 고종 때 김해부사 허전이 고종에게 진언을 올립니다. '수로왕과 수로왕비(허황후)의 신위를 모시는 재실당호를 숭선전으로 정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숭선전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숭선전의 벽면에는 수로왕비가 배를 타고 가락국으로 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답니다. 안향각은 춘추대제 때 예조에서 보내온 향과 초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보시다시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건물에 가깝게 다가가지는 못했습니다. 춘추대제 때만 개방합니다.

 

 

 

 

 

 

 

숭선전 옆에 숭안전입니다. 1990년에 만든 건물입니다.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에는 총 10분의 왕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왕인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무덤과 10대 구형왕의 릉만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왕의 무덤은 알 수가 없다는군요. 그래서 2대 도왕부터 9대 숙왕까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고 그 건물이 숭안전입니다. 

 

그러면 10대 왕은 어디에? 10대 구형왕의 릉은 경남 산청에 있습니다. 신라에 투항한 구형왕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니 돌로 내 가슴을 눌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형왕의 무덤은 돌무덤입니다.

 

 

 

 

 

 

돌아나가면서 수로왕릉을 다시 살펴봅니다. 수로왕릉은 임진왜란 때 도굴되었다고 합니다.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나와 있습니다. 시신 옆에 20대로 보이는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순장 풍습이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화살표로 표시한 건물은 숭정각입니다.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영정이 있습니다.

 

 

 

 

 

가락국 중엽에 조각된 연꽃문양의 연화대석

 

 

 

 

 

 

유물전시관은 허름합니다. 진품은 아니고요.

 

 

 

 

 

연지.

 

 

 

 

가야의 시작인 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수로왕릉을 찾았습니다. 2천 년 전의 역사를 찾아갑니다. 가야의 역사는 알듯 모를 듯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에 가려져 덜 주목받지만 결코 가볍게 볼 나라는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신비스러운 나라입니다. 가야의 찬란한 문화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가야의 출발인 수로왕을 만난 것은 특별했습니다.

 

입장료 없습니다. 11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가능합니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8시에 오픈합니다. 3월과 10월은 저녁 7시까지. 4월부터 9월까지는 8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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