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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행궁(行宮)은 왕이 본궁 밖으로 나갔을 때 머무는 궁궐입니다. 이궁(離宮), 행재소(行在所), 행궐(行闕)이라고도 부릅니다. 전국에 여러 행궁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수원 화성행궁입니다.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의 남다른 뜻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화성행궁을 보고, 뒤로 수원화성까지 올라가봅니다.

 

 

수원 팔달문(남문) 부근에 화성행궁이 있습니다. 이쪽이 수원 구도심이기에 근방을 다니는 버스가 많습니다. 저는 수원역에서 내려서 버스 타고 이동했습니다. 행궁으로 들어서기 전 홍살문과 하마비(下馬碑)가 보입니다. 홍살문은 능(陵), 원(園), 묘(廟), 궁(宮) 앞에 붉은 물감을 칠한 문입니다. 하마비는 종묘, 궁 앞에 있습니다.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이 앞에서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 앞에서 예의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가 보입니다. 처음 이름은 진남루(鎭南樓)였습니다.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新豊樓)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정조가 화성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날이 따뜻해지는 봄이 오면 주말에 신풍루 앞에서 공연이 펼쳐집니다. 장용영 수위의식, 무예24기, 각종 문화공연이 가을까지 이어집니다. 공연 볼만합니다. 화성행궁 관람료 있습니다. 어른 1,500원입니다. 화성행궁, 수원화성,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관람권을 합쳐서 통합권을 구매하면 3,500원입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무휴 



 

 

 

화성행궁을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느트나무 나이가 600년이 넘었다는군요. 중간에 화재를 입어 상처가 났지만, 계속해서 살아있습니다. 나무 아래를 보면 하얀 종이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소원을 적은 종이입니다. 관람객이 소원을 적고 나무에 매단 것입니다. 


 

 

 

 

화성행궁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봉수당이 보입니다. 봉수당은 임금이 화성행궁에 왔을 때 정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입니다. 정조는 자신의 어머니인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인 진찬례를 봉수당에어 했습니다. 봉수당은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비는 정조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파괴된 것을 1997년에 복원했습니다. 

 

봉수당은 평상시에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로도 사용했습니다.



 

 

 

당시 진찬례는 조선 최대의 궁중행사였습니다. 한양에서 수많은 신하, 종친이 화성행궁까지 내려왔습니다. 을묘년에 있었다해서 을묘원행이라고도 부릅니다. 정조는 을묘원행을 행복한 행차라 하며, 백성들이 함께 즐기도록 하였습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당시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의궤 도서 삽화 지휘를 맡은 사람이 김홍도입니다. 의궤에 기록된 것을 보면, 6천 명의 사람, 1천 4백필의 말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규모입니다.

 

단순히 어머니 생신을 위해서 대규모 행차를 한 것은 아닙니다. 숨은 뜻이 있습니다. 정조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고, 정조를 정치적으로 위협하는 세력들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백성의 소리도 가까이서 들으려 했고요





 

 





 

화성행궁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화령전이 있습니다. 순조가 만들었습니다. 화성행궁과는 별도의 공간입니다. 화령전은 영전(影殿)입니다. 선왕의 영전을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추모하는 공간입니다. 사진 속 건물은 화령전의 메인인 운한각입니다. 나무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물입니다. 센 기운이 느껴집니다.   




 

 

정조 초상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화성행궁 건물 대부분을 파괴했습니다. 낙남헌만은 남아있습니다. 낙남헌이라는 이름은 중국 후한시대 도읍인 낙양성의 남궁(南宮)에서 갖고 온 것입니다. 노후에 화성으로 내려와 생활하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이 담긴 건물입니다.

 

정조는 세자가 15세가 되고,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칠순이 되는 해인 1804년에 화성으로 내려와 살겠다고 신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고, 아버지 곁을 지키고자 하는 효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건설한 신도시인 수원에서 살고자 했습니다.

 

 

 

 

 

화성행궁 안에 여러 건물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일제가 문화말살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1996년부터 복원공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화령전 앞에는 신풍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신풍초등학교가 이전했습니다. 지금은 본격적인 공사 전이어서 허허벌판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시 봉수당쪽으로 와서 화성행궁 안의 다른 전각들 구경을 하였습니다.

 

 

 

 

 

화성행궁 뒤로 화성이 이어집니다. 오르막길을 10여 분 올라가면 화성장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장수가 장대에 올라 군사들을 지휘합니다. 정조가 화성장대에 올라 직접 군사훈련을 참관했다고도 합니다. 화성장대 현판은 정조가 직접 쓴 것입니다. 화성에는 장대가 2곳 있습니다. 이곳은 서쪽에 있다해서 서장대라고도 불립니다.

 

 

 

 

 

수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화성행궁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화성장대에서 100m 정도 가면 효원의종이 있습니다. 1천 원을 내면 종을 세 번 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소원을 생각하면서 종을 쳐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저도 종쳤어요

 

 

 

정조는 다른 왕들에 비해 지방 행차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원에 내려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버지 묘를 참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치적으로 당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노론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수원을 만들고 관심 갖습니다. 화성행궁은 정조의 큰 뜻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성행궁 옆으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있습니다. 수원화성박물관도 길건너면 바로 앞에 있습니다. 팔달문 쪽으로 가면 수원통닭거리도 있고, 팔달문 주변에 있는 시장에 맛있는 먹거리도 많습니다. 화성장대에 오른 뒤 화성 성곽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봄이 되면 꽃도 피고 해서 걷기 좋습니다. 행궁열차를 타고 창룡문까지 가는 것도 재밌고요. 화성행궁 안에 담긴 뜻과 의미, 여행지로서 매력적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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