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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하멜전시관

 

 

 

15세기 유럽은 대항해시대에 접어듭니다. 대항해시대라는 표현이 유럽 중심적이긴 하지만 유럽 각국은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시작합니다.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조선에 들어옵니다. 하멜 일행은 여수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여수에서는 하멜전시관을 만들어 그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여수에 도착합니다. 고소동 천사벽화마을 종포 쪽으로 나와 하멜전시관으로 향합니다.  종포에서 전시관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립니다. 전시관까지 가는 길에 이순신대교 위로 지나가는 케이블카가 보입니다.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케이블카입니다. 바다 위를 지나갑니다. 

 

 

 

 

 

 

 

 

 

 

 

 

하멜등대와 케이블카

 

 

 

전시관 앞에 하멜등대가 있습니다. 여수구항 해양공원 방파제 끝에 있습니다. 여수항, 광양항으로 향하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하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등대를 만들었습니다. 2005년부터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멜등대에서 하멜전시관 일대는 밤이 되면 여수낭만포차거리가 됩니다.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오동도와 돌산도를 잇는 케이블카입니다. 바다가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 15개, 일반캐빈 30대 등 총 50대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왕복 기준으로 크리스털 캐빈은 22,000원, 일반캐빈은 15,000원입니다. 패키지 상품도 있고 여수시민 할인도 있습니다. 저는 크리스털 캐빈을 탔습니다. 바다 위를 지나는데 바닥이 투명하니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하멜전시관은 2012년부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습니다. 관람료는 없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전시관은 2층입니다. 1층은 하멜이 표류하던 시기의 조선과 네덜란드의 주요 역사적인 사건을 전시합니다. 2층은 하멜 일행이 조선에 들어와서 나가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전시관 입구에 하멜 동상이 있습니다. 동상의 높이는 1.2m입니다.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에 세워진 하멜 동상과 크기가 같습니다. 호르큼시에서 직접 제작하여 기증했습니다. 제주도 안덕면 산방산 아래 하멜 일행이 타고 왔던 배를 재현하여 전시관을 만들었습니다. 용머리해안 위로 올라가면 하멜표류기념비도 있습니다. 하멜 일행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곳이 제주도입니다. 하멜이 여수에서는 어떤 행적을 벌였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조선과 네덜란드 그리고 하멜의 일대기를 비교합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네덜란드에서 출발합니다.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도중에 강한 폭풍우를 만나면서 배는 부서집니다. 힘겹게 배에서 탈출한 36명이 육지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제주도입니다. 1653년 8월 16일입니다. 그 뒤로 하멜은 조선에서 13년을 지냅니다. 

 

 

 

 

 

 

 

 

 

 

 

 

거북선관 스페르베르호를 비교 전시하고 있습니다.

 

 

 

낯선 이방인이 조선 땅에 들어왔으니 조정에서 난리가 납니다. 제주목사는 파란 눈에 노랑머리의 사람이 왔다고 조정에 장계를 보냅니다. 조정에서는 통역 겸 조사원으로 박연을 내려보냅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박연이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박연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조선에 눌러앉아서 살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이름은 얀 얀스 벨테브레(Jan Jansz Weltevree). 박연은 병자호란에도 참전하였습니다. 문제는 박연이 조선에서 26년을 살면서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를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주목사가 대접을 잘해주었나 봅니다. 제주목사가 바뀌면서 대접이 달라졌답니다. 밥을 굶은 일도 많았고요. 결국 이들은 탈출을 감행합니다. 배를 훔치려 했는데 잘 안 되었습니다. 상상도 못 한 외국에 와서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멜 일행은 서울로 압송됩니다. 왕(효종)의 호위부대로 선발되어 훈련도감에서 병영 생활을 합니다. 하멜 일행은 청나라로 가는 사신 행렬에 뛰어들어 청나라로 같이 가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옥살이도 합니다.

 

 

 

 

 

 

 

 

 

 

 

 

하멜일행은 전라도 강진 전라병영성으로 유배를 갑니다. 유배생활 하면서 주민, 군사들과 잘 지내기도 했지만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는 소빙기로서 추운 시기였습니다. 농사도 잘 안되고 기근이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하멜 일행도 지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라병영성에서는 하멜 일행을 모두 데리고 있기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서 전라도 곳곳으로 분산 배치합니다.

 

 

 

 

 

 

 

 

 

 

 

 

12명이 여수에 왔습니다. 1663년부터 3년 동안 하멜 일행은 여수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여수 전라좌수영(현재 진남관)에서 생활합니다. 수사에 따라서 생활이 달라지긴 했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멜 일행은 어렵게 배를 구합니다. 1666년 9월 4일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꾸며 필요한 물품을 배에 옮겨 싣습니다. 그리고 여수를 떠납니다. 하멜등대 있는 곳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여수를 떠나고 10일 후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합니다. 1968년 본국으로 돌아가고 조선에 남아있던 선원은 동인도회사가 일본 정부를 통해 송환을 요구해서 1669년에 고국 땅을 밟게 됩니다. 조선에 도착한 36명 중 15명만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멜 일행이 여수에서 탈출할 때 통구민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통구민배는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우리나라 전통 배입니다. 당시 배 크기의 70% 축소한 모형입니다. 

 

 

 

 

 

 

 

 

 

 

 

 

하멜은 동인도회사에 임금 지급을 요청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게 됩니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쓴 책이기에 잘못된 정보, 오류, 과장된 표현 등도 있습니다. 하멜 표류기는 큰 반향을 일으키고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 출간하게 됩니다. 유럽에 코레아를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최남선, 이병도 등이 하멜표류기를 번역하여 소개하였습니다.

 

 

 

 

 

 

 

 

 

 

 

 

하멜보고서

 

 

 

스페르베르호에서 하멜은 서기였습니다. 나가사키에 도착해서부터 조선에 관한 생활을 정리하고 조선의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하멜보고서는 나가사키에서 대부분 집필하였습니다. 임금을 받기 위해서 쓴 것이기에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조선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최초의 책입니다. 조선의 전반적인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풍차

 

 

 

네덜란드와 우리나라는 알게 모르게 인연이 많습니다. 표류해서 온 것이지만 박연, 하멜 등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살았습니다. 고종이 을사늑약과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했습니다. 2002 월드컵의 히딩크 감독은 다 아실 것이고요.

 

  

 

 

 

 

 

 

 

 

하멜전시관은 여러 삽화, 동영상 등으로 하멜이 조선에서 생활한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외국인의 눈에 비추어진 조선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낸 곳이 여수이기에 하멜에게는 여수가 어떻게든지 기억에 남았을 것입니다. 

 

13년 동안 하멜 일행을 기다린 네덜란드의 가족들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죽었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었겠죠? 살아 돌아왔으니 무척이나 반가웠을 것입니다. 아닐까요? 상상은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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