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영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제가 기념관, 박물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일단 멈췄습니다. 장사상륙작전에 대해서 잘 몰랐기에 궁금했습니다. 포항으로 향하던 길을 멈추고 기념관으로 향합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6ㆍ25 전쟁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은 영덕 남쪽 장사해수욕장 옆에 만들어졌습니다. 영덕과 포항 경계 부근입니다. 2020년 6월에 개관했습니다.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르는 분이 더 많을 듯합니다. 장사상륙작전이라는 것도 모르실 것이고요.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거쳐 기념관으로 들어섭니다. 위 사진은 '장사상륙작전 전몰 용사 위령탑'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교란작전을 펼쳤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장사상륙작전입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작전입니다. 많은 희생이 있는 작전이었습니다.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한 학도병들의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학도병.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한 것입니다. 뒤에 보이는 배는 문산호입니다. 장사상륙작전에 이용한 배입니다. 진짜 배는 아니고, 기념관을 배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은 영덕군에서 관리합니다. 관람료는 어른 3천 원. 오전 9시에 오픈합니다. 3월부터 10월까지 하절기는 오후 6시까지, 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5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층과 2층은 실내 전시관입니다. 3층부터는 갑판 상부로 실외공간입니다.
북한군은 물밀듯이 남하하였고, 낙동강까지 내려왔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북한군에게 넘어갈 뻔한 상황이 온 것입니다. 전쟁의 판세를 뒤엎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합니다. 그 성공에는 우리라 몰랐던 희생과 아픔이 있던 것이었습니다.
1950년 8월 대구에서는 대대적인 유격대 모병 활동이 시작됩니다. 대구에서 200여 명, 밀양에서 560명 등 총 772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육본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로 편성되었습니다.
육본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는 명부대라고도 불렸습니다. 유격대대의 목표는 문산호를 타고 동해안 장사 해안에 상륙하는 것입니다.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북한군을 영덕으로 유인하여 후방을 교란하여 적을 퇴치하는 것입니다.
학도 의용군의 증언을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한 분은 교복을 입고 가는데, 군인이 트럭에 태워 이동했다 합니다. 부산으로 가서 군복을 입고 훈련을 시작했다 합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자원입대를 했는데, 나이가 어려서 입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 추천서를 갖고 왔고, 친구들과 동반 입대했다고 합니다. 두 분의 나이가 17살. 고1입니다. 어린 나이입니다. 이 밖에도 당시 부대원이었던 어르신들의 증언을 동영상과 글로서 만날 수 있습니다.
독립 제1유격대대의 복장과 장비. 북한군 옷도 보입니다. 부대원들은 북한군으로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북한군의 복장을 착용하고, 북한군 장비로 무장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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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사전에 교란작전이 있었습니다. 9월 14일~15일 삼척 일대를 집중적으로 포격하여, 북한군의 시선을 동해안으로 돌렸습니다. 9월 12일에는 미군과 영국군이 군산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9월 13일부터 6일 동안은 장사상륙작전을 펼칩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원산상륙작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원산상륙작전 전개 후에 원산 평양 축을 따라 서쪽으로 진격하여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작전에 참여하기로 한 미 10군단이 늦게 상륙하면서 실패한 작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1950년 9월 13일 독립 제1유격대대의 출정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승선 과정에서 미군과 유격대대 대원들이 LST 문산호에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였습니다. 9월 15일에 있을 인천상륙작전을 위장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북한군을 교란하고, 북한군 병력을 동해안으로 집결시키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9월 14일 문산호는 부산항에서 출발합니다. 유격대원 772명, 지원요원 56명이 탑승했습니다. 작전에 참여한 대부분의 대원은 2주간의 짧은 훈련을 거친 학도병입니다. 14~17세의 어린 나이입니다. 문산호는 태풍으로 인하여 상륙지점에 도착하기 전에 좌초됩니다. 시작부터 꼬입니다.
9월 14일 장사 해안에 유격대대가 도착합니다. 주둔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200 고지를 사수하는 데 성공하며,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합니다. 퇴각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고립상태에 계속 교전을 합니다. 처음 작전 계획은 3일 안에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계속 미루어지고 문산호 대원들은 6일 동안 식량 보급 없이 전투를 치러야 했습니다.
9월 18일 철수 명령이 하달됩니다. 유격대대는 철수를 위해 장사 해변으로 집결합니다. 9월 19일 조치원호가 장사 해안에 도착합니다. 조치원호가 해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밧줄을 이용하여 유격대원들을 승선시켰습니다. 적들이 유격대의 철수를 눈치채고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계획보다 승선 시간이 길어집니다. 승선을 중단하고 출항합니다. 39명의 대원이 남았고, 이들은 북한군의 포로가 됩니다.
장사상륙작전은 종료합니다.
장사상륙작전에서 129명이 전사하고, 1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북한군 270명을 사살하고, 애국청년 10여 명을 구출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장사상륙작전이 있었기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작전이 성공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희생이 뒤따른다면,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기도 합니다.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한 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두었습니다.
군사적으로 보면 장사상륙작전은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작전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작전에 참여한 유격대대는 실제로 전투를 해본 경험이 없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린 학도 의용군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이 맡기에는 위험하고 힘든 작전이었습니다. 철저한 계획 없이 수행된 작전이기에 많은 학도병의 희생을 낳았습니다.
장사상륙작전은 전력과 장비가 열세인 상태에서 이루어졌기에 작전 성공 가능성이 작았습니다. 상륙작전이라는 것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장사상륙작전은 기갑, 공군, 해상 지원도 별로 없었습니다. 상륙 지역의 지형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문산호가 좌초된 것도 문제였습니다.
3층 갑판 위로 올랐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고요하기만 한 장사 해변입니다.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상쾌한 바닷바람을 만나기 위해 지금도 해변에는 많은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이곳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리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희생을 치렀어야 했는지, 총탄이 날아가고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 어린 학도병들의 불안한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장사상륙작전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2019년 9월에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상영하였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이용당하고 희생을 강요당한 것은 아닐는지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였다고는 하지만, 뒤에서 보이지 않는 어린 학생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권력자의 전쟁 승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 많습니다. 전쟁 불사를 외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국민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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