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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학관, 향촌문화관

 

저는 대구라는 도시를 좋아합니다. 대구와 인연이 되어 만난 사람은 다 좋았습니다. 회사에서 만난 상사,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 블로그에서 만난 대구분들 모두 좋은 인연입니다. 대구 방문길에 시간 여유가 있어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화관을 방문하였습니다. 대구라는 도시를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대구문학관과 향춘문화관은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습니다. 대구역과 가깝습니다.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화관은 한 건물에 있습니다. 지하 1층은 녹향이라는 음악감상실입니다. 1층과 2층은 향촌문화관, 3층과 4층은 대구문학관입니다. 

 

원래 이곳은 1912년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은 선남상업은행이 있던 곳입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상업은행, 한빛은행, 우리은행 지점으로 영업을 했습니다. 2014년에 전시공간으로 변신하였습니다. 

 

 

 

 

먼저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지하에는 녹향이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 음악감상실입니다. 녹향은 1946년 故 이창수 선생이 만들었습니다. 레코드판 500여 장, 축음기 1대로 시작하셨다는군요. 경영난으로 여러 번 자리를 옮겼다가 2014년부터 지금의 자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창수 선생의 아드님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축음기, 스피커 등 음향 장비를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무대에서는 공연도 하고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 분위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듣기 좋습니다. 

 

 

 

 

향촌동은 지금은 사라진 대구읍성 북쪽 성곽(북성로) 일대를 말합니다. 경상감영과 경북도청이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6ㆍ25 전쟁과 함께 피란 온 문인과 예술인들이 향촌동에 모였습니다. 문화와 낭만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대구 최고의 상업지역이었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향촌동 분위기가 바뀝니다. 젊은이들이 신도심으로 향하고,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향촌동을 찾습니다. 

 

 

 

 

대구의 변화된 모습을 찾아봅니다. 1950년에 2016년 사이 가구수는 11배, 인구는 9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해방 이후보다 현재 대구의 면적은 7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근대 대구 최고의 상업지 중앙로의 모습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앙로에는 은행, 빵집, 여관, 다방, 금은방, 양복점들이 즐비하였습니다. 양복점 안으로 들어가면 의복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북성로 공구골목입니다. 해방 이후 북성로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깡통, 드럼통으로 수도관, 리어카 바퀴 등을 만드는 철물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북성로 공구골목은 대구 제조업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정표와 대구역

 

일제강점기 대구역은 수탈의 거점이었습니다. 6ㆍ25 전쟁 중에는 군인들의 집결지였습니다. 현재 대구를 대표하는 역은 대구역이 아니고 동대구역입니다. 타 지역민들은 헷갈립니다. 고속열차도 대구역이 아닌 동대구역에 정차합니다. 대구역이 좁아서 동대구역을 새롭게 만들어 분산시킨 것입니다. 올해 서대구역이 만들어진다니 대구로 가시는 분은 차편을 잘 알아보셔야겠습니다.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향촌동 문화예술인들의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6ㆍ25 전쟁으로 피란 내려온 문화예술인들이 향촌동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습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활약했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은 낮부터 밤까지 향촌동의 다방, 주점, 음악감상실에 모였습니다. 피란살이의 고단한 마음을 달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방, 대포집 등을 모형으로 만들었는데, 꽤 정교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앉아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모습입니다. 1950년대 말 자유극장 옆에 카스바(kasbar)라는 술집이 있었답니다. 카스바에는 많은 영화인들이 찾았답니다. 

 

 

 

 

 

1950년대 대구는 한국영화 현장의 중심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극영화 제작이 계속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대구에서 10여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중에서 '태양의 거리'라는 작품이 유일하게 필름이 남아 있습니다. 태양의 거리 작품을 상영하기에 잠시 감상해보았습니다. 국민학교 선생님인 주인공인 불량아들을 선도한다는 내용입니다. 

 

 

 

 

1950년대 한국 가요의 맥을 이은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를 소개합니다. 6ㆍ25 전쟁으로 피난 온 음악인들이 주옥같은 명곡을 대구에서 만들었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럭키 서울 등 들으면 익숙한 노래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익숙하면 나이 때가 좀 있으시겠죠? 오리엔트레코드사는 1947년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 있으면서, 90매 정도의 레코드 음반을 취입했다 합니다. 1950년대 대중가요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3층과 4층은 대구문학관입니다. 대구지역의 문호들과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대구 문학을 빛낸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근대문학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문학의 발자취를 조명할 수 있습니다. 

 

 

 

 

명작 갤러리에서는 대구 문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만의 명작 만들기를 할 수 있습니다. 명작 만들기 한 것은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김성도 선생이 작사 작곡한 어린 음악대 노래는 다 아실 것입니다. 따따따 따따따 주먹 손으로~

 

 

 

 

대구가 한국 근대문학의 태동을 가져온 명작의 고향임을 죽순으로 상징하였습니다. 죽순은 해방 이후 대구에서 발행한 동인지 이름이기도 합니다. 죽순이 대지를 뚫고 위로 솟아오르는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늘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4층에는 기획전시실, 세미나실, 문학서 재가 있습니다. 문학 서재에서 책 읽을 수 있습니다. 대출은 할 수 없습니다. 즐거운 문학 공방에서는 나만의 엽서를 만들어 우편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대구 향촌문화관과 대구문학관은 일제강점기와 6ㆍ25 전쟁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대구에 사는 것도 아니고, 대구가 고향도 아닙니다. 대구를 많이 가본 것도 아니고요. 대구라는 도시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보면서 대구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포스팅으로 정리하면서는 다시 공부하면서 찾은 내용을 옮겨보았습니다. 대구에 한발 더 다가간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대구를 더 알려면 아직 멀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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