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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문화골목 두 번째

대구광역시 중구청에서는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도보여행길을 만들었습니다. 5개의 코스가 있는데, 그중에서 두 번째 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이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근대문화골목 포스팅을 세 번에 나눠서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포스팅입니다. '계산 주교좌 대성당'에서부터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까지입니다. 올해 1월에 다녀왔습니다.

근대문화골목 첫 번째 포스팅이 궁금하시면 https://raonyss.tistory.com/2143 클릭!!

 

3.1운동길과 선교사들 주택, 대구제일교회를 지나면 계산 주교좌 대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성당이라 하지 않고 '주교좌 대성당'입니다. 교구장 주교가 상주하는 교구의 중심이 되는 성당을 주교좌 성당이라고 합니다. 계산 주교좌 대성당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중심 성당입니다.   

성당은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입니다. 프랑스인 신부가 설계하고, 명동성당 건설에 참여했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했습니다. 1902년에 완공했습니다. 1918년 증축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입니다. 건축양식이나 천주교에 대해서 깊은 지식은 없지만, 성당 자체가 주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당을 지나 이상화 시인을 만나러 갑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이상화'를 아느냐 물으면,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 선수를 떠올릴 것입니다. 오늘 만나는 이상화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이면서, 항일문학가입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라는 시는 학교 다닐 때 국어, 문학 시간에 한 번 이상은 보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시인은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구 근대골목투어에서는 이상화 시인이 1939년부터 작고하신 1943년까지 거주하였던 집을 볼 수 있습니다. 이상화 고택은 지역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대구 지역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이 상화고택보존운동을 전개하면서 그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과 예술혼을 오랫동안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별도의 관람료는 없습니다.  

 

 

이상화 고택 앞에는 '계산예가'가 있습니다. 근대문화체험관입니다. 계산동 주변에 남아있는 근대 문화의 흔적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입니다. 각종 영상, 사진 등을 통해 대구의 역사, 문화, 사람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상화 고택 옆으로 서상돈 고택이 있습니다. 서상돈(1851~1913)은 조선 말기 기업인이자 민족 독립운동가입니다. 서상돈이 살던 집을 복원한 것입니다. 서상돈은 김광제와 함께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은 대한제국에 막대한 차관 도입을 강요하였고, 대한제국은 차관을 갚지 못해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때 일본에 빚을 갚고 경제적 자립을 하자는 것이 국채보상운동입니다. 대구에서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일본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국채보상운동을 탄압합니다. 국채보상운동이 완전한 성공은 못 했습니다. 애국심, 항일정신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해 봉하막걸리를 먹을 수 있다는 바보주막이 보였습니다. 대구점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다른 지역에도 매장이 있는가 봅니다. 막걸리로 목을 좀 축여볼까 했는데, 오후 5시부터 영업한다더군요. 아쉽지만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두사충과 뽕나무골목'이라 적고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사충은 중국 사람입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조선으로 원군 왔다가 조선에 귀화했습니다. 두사충은 길쌈, 실을 뽑기 위해 누에를 길렀고, 누에의 먹이인 뽕나무를 많이 심었답니다. 이곳을 계산동 일대를 뽕나무골목이라 불렀답니다.

두사충이 뽕잎을 따다가 이웃집 아낙네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상사병을 앓던 두사충. 두사충의 아들이 아낙네를 찾아갑니다. 과부였던 아낙네는 두사충을 흠모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둘이 결혼해서 잘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두사충은 이순신 장군과도 친분이 있었답니다. 이순신은 두사충에게 '봉정두복야'라는 시를 지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답니다.

두사충은 풍수지리에도 밝았답니다. 두사충이 대구에서 처음 자리 잡은 곳이 현재 경상감영공원 자리입니다. 두사충은 아들에게 '이 터는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자리'라 하였답니다. 경상감영이 안동에서 대구로 올 때, 두사충이 살던 곳에 감영을 지으면서, 계산동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경상감영 주변은 대구의 중심 상권이 되면서, 하루에 천 냥을 버는 명당이 되었습니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으로 향합니다. '마당 깊은 집'은 김원일 소설가의 작품입니다. 1988년 발표하였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부터 1년 동안 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 마당 깊은 집은 소설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가 아닙니다. 마당 깊은 집이라는 소설에 맞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13살 길남이입니다. 길남이네 가족은 세입자입니다. 주인집과 세입자 합쳐 6가구가 마당을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50년대 당시 생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요 내용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1990년에 MBC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습니다. 드라마의 주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니까 어려서 본 기억도 있습니다. 고두심, 김수미 등이 출연했습니다. 2002년에는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많은 사람에게 추천 도서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김원일 작가는 1942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당시의 기억을 소설에 담아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당 깊은 집은 소설가 김원일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기도 합니다. 김원일 작가는 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분단문학의 거장이라고도 불립니다. 마당 깊은 집에서 전쟁 후 힘들었던 우리나라와 대구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떠난 근대로의 여행, 대구광역시 중구 골목투어 2코스 근대문화골목 포스팅입니다. 근대문화골목 3번의 포스팅 중 두 번째였습니다. 제가 임의로 3부분으로 나눈 것입니다. 이번 두 번째 포스팅에서는 계산 주교좌 대성당에서 마당 깊은 집까지입니다. 인물을 통해서 대구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약전골목에서 마지막 화교학교까지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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