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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로왕릉

 

우리나라 성씨 본관 순위에서 1위는 김해김씨입니다. 약 4백만 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김해김씨의 시조는 금관가야(가락국) 수로왕입니다. 수로왕이 잠들어 있는 곳이 김해입니다. 김해건설공고에서 매화 구경 후 수로왕을 만나러 갑니다.  

 

수로왕릉 앞 광장 옆으로 주차합니다. 관람 끝내고 나가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다가옵니다. 주차비 1천 원을 내라는군요. 그때서야 입구에 유료주차장이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수로왕릉에는 무료 주차장이 없고 김해민속박물관에 무료 주차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 걸립니다. 수로왕릉 입구 광장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광장을 거닐면서 즐기고 있습니다.  

 

 

 

 

 

숭화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섭니다. 수로왕릉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입장 시간은 시기별로 다릅니다. 동절기는 9시부터 18시까지입니다. 하절기는 8시부터 입장할 수 있습니다. 3월과 10월은 18시까지. 나머지 하절기는 20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홍살문을 지나 가락루로 들어가면 수로왕을 가깝게 볼 수 있습니다. 수로왕릉은 1963년에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공식 명칭은 '김해 수로왕릉'입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기에 관리를 잘하였습니다. 나무도 많고 전체적으로 평지여서 산책하기 좋습니다. 

 

 

 

 

 

 

 

 

 

 

수로왕릉 앞 숭정각에는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영정이 있습니다.

 

 

 

 

 

납릉정문 앞에서 수로왕릉을 바라봅니다.

 

사진 오른쪽 네모반듯한 것은 성생대(省牲臺)입니다. 수로왕에게 제를 올릴 때 제물로 사용하는 돼지를 확인하는 것을 성생례라고 합니다. 성성례 장소가 성생대입니다. 돼지는 재물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고 인간과 하늘을 연결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요즘 고사 지낼 때 돼지머리 올리는 것도 성생례 풍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수로왕릉은 납릉이라 하고 수로왕릉 앞에 있는 문을 납릉정문이라 부릅니다. 납릉(納陵)에서 납(納)은 魶(도룡뇽 납)의 의미입니다. 납은 자라처럼 생겼지만 등딱지가 없는 물고기입니다. 납릉정문 현판 옆에는 탑과 물고기 그림이 있습니다. 탑은 수로왕비 허황옥이 안전한 항해를 위해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입니다. 물고기는 수로왕비 허황옥이 살던 아유타국에서 신성으로 상징하는 신어상(神魚象)입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 구지가입니다. 가야의 부족장이 하늘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하늘에서 6개의 알이 내려왔고, 가장 먼저 태어난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수로왕입니다. 진짜 알에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왕을 신성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수로왕릉은 원형봉토분으로 봉분의 높이는 약 5m입니다. 역사적 기록을 찾아보니 고려시대까지는 수로왕릉인지는 알고 있지만 능을 정비하진 않았나 봅니다. 조선시대 세종 때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사방 100보까지 보호구역으로 설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580년(선조 13) 경상도 관찰사가 정비하고 이후로도 꾸준하게 관리가 이루어졌습니다.

 

 

 

 

 

릉 주변을 산책합니다. 숭신각(崇神閣)을 만납니다. 신도비를 모신 신도비각입니다. 신도비는 왕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했던 일들을 기록하여 무덤 앞에 세운 비입니다. 수로왕릉 신도비에는 가락사(駕洛史)와 숭선전사(崇善殿史)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각은 1885년(고종 22)에 처음 만들었고 이후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왼쪽에는 3기의 비가 있습니다. 수로왕릉을 중수한 기록을 전하고 있습니다. 

 

 

 

 

 

숭선전(왼쪽)과 안향각이 있습니다. 숭선전에서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숭선전은 199년(가락국 2대 도왕 원년)에 만들었습니다. 숭선전에서는 봄과 가을에 제례행사가 있습니다. 숭선전 제례행사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입니다. 안향각은 제례가 있을 때 예조에서 보내온 향과 초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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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는 10명의 왕이 있었다고 전해옵니다. 숭안전에는 가야 2대 도왕부터 9대 숙왕까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으로 치면 종묘입니다. 2대부터 9대 왕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답니다. 1대 수로왕릉과 10대 구형왕의 능만 남아 있습니다. 구형왕과 관련해서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형왕 때 금관가야가 신라로 넘어갑니다. 구형왕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니 돌로 내 가슴을 눌러라는 유연을 남겼습니다. 경상남도 산청군에 구형왕의 무덤이 있습니다. 사진을 찾아보니 실제로 돌로 쌓여 있습니다.   

 

 

 

 

 

수로왕릉 뒤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말을 맞이하여 산책로 따라 데이트하는 커플이 많습니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 즐기기 좋을 때입니다. 그렇다고요.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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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여러 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연맹 국가입니다. 가야의 역사는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한 것은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입니다. 금관가야는 철이 풍부하고 해상교통이 편리했습니다.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이 발달하면서 가야 연맹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깁니다. 

 

신라 내물마립간 때 왜가 신라를 침략합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고구려 군대는 신라로 내려와 왜를 격퇴합니다. 왜가 김해로 도망 갔고, 고구려군은 왜를 쫓아 김해로 옵니다. 이러면서 김해 금관가야는 큰 타격을 입습니다. 후기 가야는 대가야(고령)로 중심을 옮겨갑니다. 

 

 

 

 

 

2월이지만 연지 분수에서는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얼어 있던 대지가 녹고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로왕릉 한 바퀴 돌고 나와 주변을 살펴봅니다. 

 

수로왕비릉은 수로왕릉에서 약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수로왕비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입니다. 허황옥 부모 꿈에 옥황상제가 나와 가락국의 왕에게 시집가라고 했답니다. 허황옥은 파사석탑을 싣고 가락국으로 왔습니다. 가락국에 도착한 허황옥은 수로왕과 결혼하고 왕비가 됩니다. 수로왕에게는 9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중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성인 허 씨 성을 따르게 했습니다. 김 씨와 허 씨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락국 가야와 김해 김씨의 시조 수로왕이 잠들어 있는 김해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에 비해 가야는 덜 알려졌습니다. 500년 넘게 이어온 나라인데 모르는게 많습니다. 그만큼 가야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신비합니다. 호기심을 더 자극합니다. 수로왕릉을 중심으로 한 김해는 역사 도시로서 가치가 무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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