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김만덕기념관
제주도는 척박한 땅이고 살기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기근과 전염병으로 제주도민이 살기 어려울 때 김만덕이 나타났습니다. 김만덕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김만덕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김만덕은 어떤 삶을 산 분인지 살펴봅니다.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점심 먹고 김만덕기념관으로 향합니다. 동문시장에서 산지천을 따라 바다 쪽으로 걸어갑니다.
산지천을 따라 걷습니다. 산지천 물은 제주시민의 생활용수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 복개 공사를 합니다. 하천을 덮고 그 위로 건축구조물을 올립니다. 복개 초기에는 좋아 보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오염이 심해집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복개를 거둬내고 자연 하천으로 되돌립니다. 하천은 햇볕을 받고 자연스럽게 흘러야 합니다.
그렇게 산지천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김만덕기념관입니다. 기념관 가는 길은 제주올레길 18코스에 속합니다. 관람료는 무료. 관람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기념관은 3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층이 상설전시관입니다. 3층부터 보고 2층, 1층으로 내려옵니다.
김만덕은 의인(義人)으로 칭송받습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엄격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기생,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방 제주도. 이 모든 한계를 이겨내고 성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CEO 김만덕입니다. 극심한 흉년에 전 재산을 내놓아 백성들을 구한 자선사업가입니다. 김만덕의 도전정신과 나눔의 삶을 알리기 위해 기념관을 만들었습니다.
3층 상설전시관에서 김만덕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김만덕(1739~1812)은 실존 인물입니다. 12살 때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납니다. 은퇴한 기생에게 수양딸로 들어가 제주 관가의 기생이 됩니다. 기생을 오래 하진 않았습니다. 양인 신분으로 돌아와 객주를 시작하면서 대부호가 됩니다.
객주는 지금으로 치면 중간상인입니다. 다른 상인의 물건을 위탁받아 판매합니다. 상인과 상인 사이에서 간접매매를 합니다. 김만덕은 제주도와 육지 사이 물자 유통에 수완을 발휘합니다.
김만덕이 살았을 때 왕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사회경제 개혁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김만덕의 삶을 널리 알려 자신의 개혁 의지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신하들에게 김만덕 전기를 집필하라 명령합니다. '만덕전'을 지어 올립니다. 당시 지식인, 정치인들이 김만덕에 관한 여러 글을 씁니다. 기념관에는 채제공, 정약용, 박제가 등이 쓴 기록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지어진 김만덕의 여러 기록
지금도 여성이 사업하고 장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200여 년 전 조선 사회는 더더욱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농공상이라 해서 장사하는 것을 낮게 보던 사회적 분위기도 있습니다. 조선 후기 변화가 찾아옵니다. 대동법 시행 이후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합니다. 신흥 부자들이 나타납니다.
상업이 발달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김만덕은 숙박, 금융, 도매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합니다. 제주도 최고의 부자가 됩니다. 산지천 하구가 건입포구입니다. 김만덕기념관 근처입니다.
김만덕의 장사 철학입니다. 싸게 그러나 많이 판다. 알맞은 가격으로 사고판다. 정직한 믿음을 판다. 지금도 분명히 통하는 부분입니다. 진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최근 뉴스에 바가지요금에 관련 기사가 많습니다. 그렇게 거짓된 가격으로 장사하면 금방 돈은 벌어도 결국 망합니다.
김만덕은 제주에서 생산되는 해산물과 특산물을 육지에 판매합니다. 전복, 오징어, 진주, 미역 등의 해산물이 육지로 넘어갑니다. 미역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미역이 남해 일부, 제주도에서만 채취가 가능했답니다. 당연히 양식은 안 되고요. 굉장히 귀했던 것이죠. 제주 사람에게는 화폐 역할을 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주도를 삼다도라 합니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것이죠. 여자가 많다는 것은 관광지 제주도를 부각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실제로 삼다도에서 가뭄이 들어가야 한다고도 합니다. 돌 많고 땅이 척박하고 가뭄까지 많으니 살기가 더 어렵습니다.
정조 18년 1794년 갑인년은 참혹한 흉년입니다. 1794년 한 해의 일만 아닙니다. 1790년부터 1796년까지 흉년이 계속 이어집니다.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당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굶어 죽은 시신이 더미로 쌓입니다. 중앙 정부에서 제주도로 곡식을 보냅니다. 배가 난파되어 곡식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합니다. 제주도 인구 3분의 1이 굶어 죽습니다.
'갭인년 숭년에두 먹다 남은 게 물이여(갑인년 흉년 때도 물은 마실 수 있었다)'는 속담이 지금까지도 전해옵니다. 물 한 모금 얻어먹기 어려운 경우. 엎친 데 덮친 격을 뜻합니다. 얼마나 살기 어려웠으면 속담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 김만덕이 등판합니다. 김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아 쌀을 구매합니다. 제주도민에게 무료로 나눠줍니다. 제주도민 전체를 열흘 동안 연명시키고 수천 명의 백성을 살려내었습니다. 바닥에서부터 고생고생 헤서 번 돈입니다. 대가 없이 다 풀어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김만덕의 선행이 조정에 알려집니다. 정조는 김만덕에게 상을 주려 했지만 사양합니다. 그렇다면 소원을 말해보라 합니다. 서울로 가서 왕궁을 보는 것과 금강산 유람하는 것이라 답합니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그냥 가면 되는 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시 제주도는 출륙금지령이 내려져 있습니다. 제주도민이 제주도 떠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제주도에서 나오는 특산물도 필요하고 제주도 지켜내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출륙은 더 엄했습니다. 제주도 여성은 육지 사람과 결혼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서울 가겠다는 김만덕의 행동은 파격적이고 혁신적입니다.
지도는 김만덕이 서울로 올라간 경로입니다.
김만덕은 정조 임금의 배려 속에서 서울까지 이동합니다. 정조는 김만덕에게 내의녀 반수 벼슬을 내립니다. 평민이 제주도를 떠나기 힘드니 명예직 관직을 내린 것입니다. 김만덕은 서울에 올라와 정조 임금과 왕비를 만납니다. 금강산으로 향합니다. 당시 금강산 유람은 사대부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제주도 출신 여자가 금강산에 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제주도 여인들의 원망과 포부를 대변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김만덕은 금강산 유람 후 제주도로 돌아옵니다. 장사를 계속합니다. 검소한 생활을 이어갑니다.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돕는 자선활동을 이어갑니다. 제주도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만덕할망으로 불립니다.
김만덕은 1812년 명을 달리합니다. 향년 73세. 성안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화북에서 제주성으로 가는 길목인 고으니모르 부근(현 국립제주박물관 근처)에 묻힙니다. 묘비에는 이름과 직함이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당시 여성의 묘비는 아무개의 딸, 처, 며느리로 표현합니다. 남성 뒤에 숨겨진 것입니다. 김만덕은 당당히 자기 이름의 묘비가 있습니다.
묘비에 김만덕의 행적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만덕 묘 근처가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제주시 사라봉에 모충사라는 사당을 건립하고 김만덕 묘를 옮깁니다. 김만덕 기념탑, 만덕관을 짓습니다. 현재 만덕관은 폐쇄하였고 유물은 김만덕 기념관으로 옮겼습니다. 김만덕의 자주, 근면, 박애 정신을 추모하고 계승하고자 김만덕상을 제정했습니다. 만덕제라는 이름으로 제례를 올립니다.
창밖으로 건입동 일대를 바라봅니다. 건입동은 예로부터 제주의 관문입니다. 만덕할망이 바닷가 근처를 바쁘게 움직이던 모습을 상상합니다.
만덕 객주터, 산지천의 옛 모습은 사진으로 만납니다.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로운 빛이 온 세상에 뻗어나간다는 뜻입니다. 김만덕이 죽고 30년 후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를 옵니다. 30년이 지났지만 김만덕의 덕행에 관한 이야기는 제주도에 계속 전해오고 있습니다. 김정희는 이를 듣고 김만덕 후손에게 은광연세를 써줍니다.
김만덕기념관을 다녀오면서 김만덕을 더욱더 존경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CEO라고도 하고 의인이라고도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도 합니다. 김만덕은 제주도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찬 매력도 느꼈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김만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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