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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의병·지평리전투 기념관
 
홍천 가는 길입니다. 내비게이션은 양평 거쳐 가는 길을 안내합니다. 양평 구둔역을 방문합니다. 구둔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입니다. 기차역은 남아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습니다. 구둔역에서 나오는데 구둔면 지평리를 지납니다. 지평 의병·지평리전투 기념관을 만납니다. 기념관 구경하면서 지평의병과 지평리전투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그리고 막걸리는 보너스.
 

기념관 앞 전차에 눈길이 갑니다. 한국 최초 조립 전차 M48A3K입니다. 미국에서 가솔린 엔진의 전차를 도입해서 디젤 엔진으로 교체한 모델입니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381대를 개량했습니다. 국산 전차가 보급되면서 전방에서 하나둘 밀리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퇴역하였습니다. 서울 북쪽으로 올라가면 군부대도 많이 보이고 한반도가 휴전 중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기념관이 닫혔습니다. 이날이 월요일. 월요일은 정기휴관입니다. 기념관 외부만 살펴봅니다. 기념관은 2016년 2월 16일 정식 개관했습니다. 2월 16일은 지평리전투가 끝난 날입니다. 2018년 9월 리뉴얼 후 재개관했습니다. 관람료 무료.
 
 
 
 
 

기념관 옆에 잔디밭이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유엔군으로 참여한 프랑스군, 미군의 전승충혼비입니다. 미군과 프랑스군은 유엔군 일원으로서 지평리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충혼비 주변으로 6·25 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여한 국가의 국기가 펄럭입니다. 
 
 
 
 
 

 
 
 
 
 

기념관 외벽에 지평리전투와 지평의병에 관해서 적혀 있습니다. 지평리전투는 1951년 2월 프랑스군과 미군이 지평리 일대에서 중국군 집중 공격을 막아낸 전투입니다. 중국군이 참전한 이후 유엔군이 중국군과 싸워 얻은 최초의 승리입니다. 지평리 전투 이후 유엔군은 과감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1951년 2월 지평리 모습. 1951년 2월 전투 당시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전투하는 군인들이 고생 많이 했겠습니다. 쉽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념관 밖에서만 바라보고 전차 배경으로 사진 찍고 출발합니다. 
 
 
 
 
 

다음날 돌아오는 길 양평양떼목장에 갑니다. 양떼목장이 정기휴일입니다. 지평리전투 기념관이 떠올라 다시 방문합니다. 이번에는 문이 열렸습니다. 지평리전투와 지평의병에 관해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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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유엔군은 북쪽으로 진격합니다. 1950년 10월 중국은 6·25 전쟁에 개입합니다. 공산국가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중 연합군 대 유엔군의  전쟁으로 판이 커집니다. 1951년 1월 한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내어주고 서울 남쪽으로 후퇴합니다. 중국이 참전하지 않았으면 한반도 그대로 하나의 나라가 되었겠죠? 
 
 
 
 
 

지평리전투는 유엔군 5,600여 명 대 중국군 50,000여 명의 전투입니다. 참전한 군인의 숫자 차이가 큽니다.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유엔군은 52명이 사망했고 중국군은 4,949명이 사망합니다. 중국군 피해가 상당합니다. 그만큼 유엔군의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유엔군은 지평리전투에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38도 선을 회복하는 반격할 힘을 갖게 됩니다
 
 
 
 
 

위 사진 지도에서 파란색 부분은 중국군에게 밀려 후퇴했던 지점입니다. 지금의 서울이 북한 땅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아찔합니다. 지평리전투 승리 이후 북쪽으로 전선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지루하고 불필요한 전투가 계속 이어집니다. 
 
 
 
 
 

 
 
 
 
 

프랑스 대대는 미 육군 23연대에 배속되어 지평리전투에 참여합니다. 프랑스 대대를 이끈 몽클라르 중령은 수동식 사이렌으로 굉음을 냅니다. 중국군이 일으키는 소음을 차단하면서 중국군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중국군을 향해 돌격하여 승리를 이끌어 냅니다. 몽클라르 중령 이분이 대단한 군인이더군요. 몽클라르 중령은 중장으로 예편하였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니 중장에서 중령으로 계급을 낮춰 현역으로 복귀했습니다. 
 
 
 
 
 

지평리의 함성
 
 
 
 
 

사진을 통해 당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6·25 전쟁에 사용하였던 군인들 장비도 함께 전시합니다. 군복 입어보는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도 적습니다. 6·25 전쟁은 진짜 비극입니다. 38도 선에서 휴전선으로 이름만 바뀐 체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수많은 희생만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고통은 계속 이어집니다. 
 
 
 
 
 

 
 
 
 
 

3층 전망대에 오릅니다. 전망대에 오르면 지평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금은 집과 들판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1950년 2월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평의병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95년에 을미사변이라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있었습니다. 단발령을 시작하였고요. 이춘영은 김백선이 이끄는 포수 400여 명을 모아 전국 최초로 의병을 창의 하였습니다. 지평의병은 최초의 을미의병입니다. 인근 강원도 충청북도 의병 봉기의 도화선이 됩니다. 
 
이춘영, 김백선 두 인물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포스팅하면서 조사를 해봤습니다. 이춘영은 지역의 명문가 출신입니다. 김백선과 함께 의병을 창의 하였고요. 김백선은 평민 출신입니다. 동학농민운동 때 양반 편에 서서 농민군 진압합니다. 의병 운동 중에는 양반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죄목으로 처형됩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의향(義鄕)으로서의 양평을 소개합니다. 이항로의 위정척사운동, 일제의 침략과 저항의 역사부터 양평에서 의병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봅니다. 1907년에는 5천여 명에 달하는 의병부대가 만들어지고 서울진공작전을 목표로 삼산리에 모입니다. 일본군이 공격하면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의병 지원했다는 이유로 양평지역의 고찰이 불태워집니다. 
 
 
 
 
 

 
 
 
 
 

기념관에서 나와 마트를 가야 했습니다. 지도 검색을 하니 자동차로 1분만 가면 지평면 시내가 나옵니다.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물건 사고 나오는데 지평막걸리 가게가  보입니다. 마트에서 파는 그 지평막걸리인가? 잠깐. 여기가 지평이잖아?
 
그렇습니다. 지평막걸리는 양평군 지평면에서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게 사장님 말씀이 지금은 춘천에 공장을 크게 짓고 막걸리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지평면에 있는 지평막걸리 양조장은 건물만 남아 있습니다. 지평막걸리 3병 사 왔습니다. 본토에서 사 온 것이라 그런지 막걸리가 더 맛나네요. 
 
 
 
 
 

 

 
지평의병·지평리전투 기념관에서 구한말부터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한반도를 그려봅니다. 외세의 침입, 같은 동족끼리의 전투까지 역사의 아픈 부분을 보고 느낍니다. 많은 사람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지금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봅니다. 양평 부근을 지난다면 기념관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기념관에서 한반도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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