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정병욱 가옥
지난 포스팅에서 백석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시 잊고 있던 시인 한 명이 떠 올랐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전체를 모른다 해도 시 제목, 시의 한 구절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를 못 볼 뻔했다는 거 아시나요? 윤동주의 시가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알려면 광양으로 가야 합니다.
윤동주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로 가야 합니다. 망덕포구는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어디가 바다고 강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물길이 넓습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물이 탁합니다.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경계하여 지키다) 할 수 있는 위치라 해서 '망뎅이'라 불렀고 한자로 망덕이 되었습니다. 사진은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연결하는 '별헤는다리' 위에서 찍었습니다.
배알도와 별헤는다리가 보입니다. 다리 이름은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담긴 별헤는 밤에서 가져왔습니다. 별헤는다리 이름처럼 밤이면 다리가 조명으로 반짝반짝 빛난다고 합니다. 저는 다리 조명을 사진으로만 봤습니다. 만덕포구 일대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입니다. 기수지역에 다양한 어종이 분포합니다.
망덕포구 주변에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만큼 식당도 많습니다. 주로 횟집입니다. 망덕포구를 대표하는 어종은 전어입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쯤에는 전어 축제도 합니다. 요즘 전어는 양식이 많아서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습니다. 전어가 맛있을 때는 가을입니다. 망덕포구에서는 싱싱한 자연산 전어를 맛볼 수 있습니다.
바다 옆으로 데크를 만들고 벤치를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정병욱 가옥에 도착했습니다. 별헤는다리에서 장병욱 가옥까지는 대략 200m 정도 됩니다. 정병욱 가옥은 딱 봐도 오래전에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양조장과 주택 겸용입니다.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병욱 부친이 지은 건물입니다.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있다면 배알도 수변공원에 주차하고 해맞이다리, 배알도, 별헤는다리 지나서 정병욱 가옥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러면 편도로 1.5㎞ 3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윤동주 유고 보전 정병욱 가옥.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정병욱 가옥 안으로 들어가기 전 안내문을 살펴봅니다. 이 건물의 내력 정병욱과 윤동주의 관계를 살펴봅니다. 먼저 포스팅 제목에서부터 언급한 정병주라는 분을 알아야 합니다. 1922년 출생하셨고 지금은 작고하셨습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셨습니다. 연희전문학교 다닐 때 윤동주와 절친이었습니다.
한반도 지도 아래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교수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이야기입니다. 정병욱 아호는 백영(白影). 윤동주의 시 '힌그림자(흰그림자)'에서 백영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윤동주가 별 헤는 밤을 쓰고 정병욱에게 보여주었답니다. 윤동주는 정병욱의 조언을 들어 시구를 추가합니다. 정병욱은 친구의 조언을 듣는 윤동주의 너그러운 아량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정병욱 부모님의 생애와 가옥의 내력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옥 안으로 들어갑니다. 가옥 곳곳에서 윤동주와 정병욱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윤동주의 육필 원고도 있습니다. 1941년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졸업하면서 육필시고 3부를 만듭니다. 1부는 자기가 갖고 1부는 은사인 이양하 교수님에게 1부는 친구인 정병욱에게 줍니다.
윤동주가 시집을 내려 했지만 출판하지 못합니다. 일제가 한글로 된 시집 출판을 그냥 보고 있진 않았습니다. 일본으로 떠납니다. 1944년 정병욱이 일제 학병으로 떠날 때 부모님에게 윤동주 시고를 전달합니다. 귀한 것이니 자신이 살아 돌아올 때까지 간직해 달라는 그리고 돌아오지 못하면 모교에 전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해 달라는 유언 아닌 유언을 남깁니다.
일제강점기 한글에 대한 탄압이 있던 살벌하던 시기입니다. 한글로 된 문서가 집 안에 다발로 나오면 정병욱 부모님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정병욱의 부모님은 시고를 명주 보자기로 잘 싸고 항아리에 넣은 후 마루를 파서 보관합니다.
윤동주는 일본에서 광복을 반년 앞두고 숨을 거둡니다. 생체실험에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병욱이 돌아옵니다. 윤동주 본인이 가지고 있던 것과 은사에게 드렸던 시고는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1948년 정병욱은 강처욱과 함께 자신의 집에 보관했던 시고의 시와 몇 편의 산문을 더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합니다. 처음에는 시집의 제목을 병원이라고 하려 했었답니다. 병원 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훨씬 시적이고 아름답습니다. 항아리 위에 윤동주의 시가 적혀 있습니다.
사진 속 시는 서시. 신성우의 서시 아니고요. 요즘 세대는 신성우 모를 테니 패스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집
국문학자로서 정병욱의 연구물. 정병욱은 부산대, 연세대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27년 근무했습니다. 한국 고전문학 분야에 탁월한 연구 업적을 쌓았습니다. 주전공인 고전시가를 비롯하여 고전소설, 판소리, 한문학, 서지학에 걸쳐 다양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60세에 돌아가셨더군요.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양조장에서 사용하던 가구들
느린 우체통이 있습니다. 엽서는 광양의 백운산 휴양림을 담고 있습니다. 광양 하면 제철소를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광양 여기저기 가볼 곳이 많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고요. 광양불고기, 전어, 매실 등이 특히 유명합니다.
윤동주 힌그림자(흰그림자)
정병욱은 생전에 윤동주에 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윤동주에 관해 이야기하면 시를 이해하는데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가 말이야 윤동주랑 알았는데 이러면서 떠들고 다녔을 법도 한데 말입니다. 정병욱의 신중함과 사려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병욱은 윤동주보다 2년 후배이자 5살 어린 동생이었습니다. 윤동주는 나이가 어리지만 형으로 부르기도 하면서 높임말을 쓰기도 했었답니다. 지음으로써 서로를 존중했던 사이였습니다. 윤동주 하면 우리나라 대표 시인으로 불릴 만큼 유명합니다. 정병욱이라는 뛰어난 국문학자가 있었기에 윤동주의 시도 더욱 빛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윤동주와 함께 정병욱의 업적도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전라남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포의 아픈 역사와 눈물이 담긴 목포근대역사관 1관. 목포 여행 (7) | 2024.04.20 |
---|---|
바다 바로 앞 산책로와 카페. 목포 스카이워크. 목포 여행 (20) | 2024.03.27 |
목포니까 가능하다. 소고기 전복 낙지 콜라보. 목포 하당먹거리 (5) | 2024.02.03 |
푸짐하게 즐기는 목포 별미 덕자. 별스넥 목포 맛집 (12) | 2024.01.07 |
순천의 세련된 국밥집 건봉국밥. 순천 맛집 (18) | 2023.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