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근대역사관 1관
목포는 일제강점기 전국 6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목포로 모여들었습니다. 일본은 목포 곳곳에 건물을 짓습니다. 건물 중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있고 새로운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일본영사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은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변신하였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위에 빨간 건물) 앞에는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비와 도로원표가 있습니다. 목포가 길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라는 것입니다. 현재 1번 국도는 목포 고하도까지 국도 2호선은 신안까지 연장되었습니다. 도로원표는 여기가 목포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 올라가는 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만납니다. 목포 평화의 소녀상은 일제의 잔재 앞에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소녀상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구 목포 일본영사관입니다. 1900년 일본의 영사 업무를 위해 지은 목포 최초의 근대적 건축물입니다. 일제의 목포 경제 침탈과 식민지 지방통치의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영사관을 통해 많은 일본인이 목포에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06년 목포 이사청 1910년 목포부청으로 사용합니다. 해방 이후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사용하다가 2014년부터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 되었습니다.
건물은 2층 구조입니다. 붉은색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단단하고 견고해 보입니다. 일본이 건물을 단단하게 지은 것은 평생 우리나라를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중간에 하얀색으로 일장기 문양을 표현했습니다. 관람료 어른 2천 원.
목포 근대역사관 1관은 이지은(아이유), 여진구 출연한 호텔 델루나 촬영지입니다. 2019년 방송. 근대역사관 1관 안에 호텔 델루나 포토존도 있습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1관은 목포의 근대역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7개의 테마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목포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만납니다. 목포는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하고 있는 포구입니다. 목포는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 또는 강과 바다의 경계를 이루는 목이라는 뜻입니다. 1897년 고종이 칙령으로 개항한 최초의 항구입니다. 부산, 원산, 인천에 이은 네 번째 개항이고요. 고종은 개항을 통해 관세 수입을 늘려 정부 재정을 확충하고자 했습니다.
개항 당시 목포는 집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적었습니다. 지금도 목포 시내는 그렇게 넓진 않습니다. 개항 이후 갯벌과 바다를 매립합니다. 목포역 앞 호수도 매립합니다. 목포역 앞이 호수였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진 않습니다. 매립은 최근까지도 이어집니다. 1989년 이후 하당신도시가 넓게 만들어졌습니다. 사진은 목포 모형도.
목포각국조계. 조계(租界)는 조약에 의해 영토의 일부를 한정하여 외국인의 거주와 영업을 허가한 땅입니다. 거류지라 부르기도 합니다. 초창기 목포에 들어온 외국인 대부분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 영사관에는 9개의 벽난로가 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벽난로를 복원하였습니다.
조선육지면발상지비(朝鮮陸地綿發祥之碑) 모형. 1904년 조선영사 와카마츠 도사부로가 목포 고하도에서 육지면 시험 재배 성공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입니다. 육지면은 미국산 면화로 고품질 다수확 종입니다. 일본은 욕지면 재배하기에 기후가 맞지 않습니다. 목포에서 육지면을 엄청나게 재배해서 일본으로 가지고 갑니다.
일제강점기 목포 시가지 모형. 건물도 많고 길도 넓게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목포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도시가 발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목포 입장에서는 그만큼 발전이 안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목포의 건물들. 조선은행 목포지점은 지금 헐리고 없습니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사용 중입니다. 구 목포부립병원 관사는 카페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터치스크린으로 알아보는 목포의 역사
일제강점기 목포에서 수탈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조선통감부에서 우리 농민에게 목화 농사를 권유했습니다. 농민들이 권유에 잘 응하지 않으니 헌병을 동원해서 재배를 강요합니다. 사진 왼쪽 기계는 조면기입니다. 목화의 솜과 씨를 분리하는 기계입니다. 쌀 수탈은 이미 다들 아실 것이고요. 1911년 대비 1929년 일본으로 간 쌀의 양이 9배 늘어났다는 그래프도 볼 수 있습니다. 쪽쪽 뽑아갑니다.
일본인들이 전라남도에서 운영하던 상점, 병원, 서점 등의 안내 광고.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생활 모습을 여러 가지 자료로 볼 수 있습니다. 안경, 시계 등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목포의 변화된 모습도 소개합니다. 목포 도시 확장하면서 인구도 늘어납니다. 1943년에 7만 명이 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목포는 전라남도 제일의 공업도시였습니다. 그 흔적은 목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정명여학교(현 목포 정명여자중·고등학교) 선교사 사택 천장에서 발견된 독립가. 1921년 당시 14살부터 19살까지 정명여학교 학생들이 독립 만세 시위를 기획하고 참여하여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지만 독립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목포에서 일본인들이 얼마나 핍박했는지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유성기
피아노.
냉장고, 금고, 가스히터, 재봉틀. 사진 왼쪽 나무로 만든 것이 냉장고입니다. 냉장고가 신기합니다. 위 칸에 얼음을 넣으면 아래 칸까지 찬 기운이 전해져 여름에도 음료수와 과일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일제강점기에서는 우리글이 국어가 아니고 조선어였습니다. 조선어는 선택과목의 하나였습니다. 1939년부터는 조선어를 실질적으로 폐지합니다. 학교에서는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일제강점기 의료용품, 매약류(약국에서 미리 조제해 놓고 판매하는 약)
인력거
최인규 감독의 1946년 영화 자유만세를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포 하면 떠오른 가수 이난영의 노래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난영은 목포 출신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최고의 가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 저고리시스터즈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Gq432OPNVrc?si=1UWEmiQPrP1nAkAK
이난영 목포의 눈물
목포 근대역사관 1관에서 빼놓지 말고 봐야 할 곳이 방공호입니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있습니다. 방공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방공호는 태평양전쟁 시기 공중폭격에 대비하여 피난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인공동굴입니다. 일제는 방공호에 취사시설, 공기 정화시설까지 마련하고 장기전에 대비합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 유달산에 있는 것이기에 유달산 방공호라고도 부릅니다. 총연장 약 85m입니다. 밖으로 통하는 문은 3개가 있습니다. 방공호는 우리 조상들이 다 손으로 공구를 들고 만들었습니다.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남쪽을 바라봅니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이 보입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에서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목포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목포의 굴곡진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일제의 수탈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 1관 건물만 보지 말고 안에 담긴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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