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15코스 고내포구 화연이네 & 산책
이제 걸을 만큼 걸었습니다. 팔과 다리는 햇볕에 타고 또 타서 쓰라리고 발에는 물집이 잡혀서 걷기 불편합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밥 먹는 거. 날은 어둑어둑 저물어 갑니다. 뜨거웠던 태양 대신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오를 무렵입니다. 고내포구를 나와 밥 먹을만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올레길 15코스 종착지이자 16코스 출발지인 고내포구에는 분위기가 괜찮은 맛집, 멋집이 몇 군데 있습니다. 우연히 찾았지만 다음에는 일부러 가고 싶은 곳입니다.
제주도 내려가기 전에 계획은 포구 앞 횟집에서 고등어회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 보니 포구 앞 어느 횟집 고등어회가 맛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딱 하고 갔더니 회가 없대요. 아니 있긴 있는데 고등어는 없고 비싼 것만 있다고 합니다.
포구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다른 식당을 찾아봅니다. 맛은 있어 보이지만 바닷가와 어울리지 않는 메뉴들이 몇 개 보입니다. 그러다 눈에 띈 곳이 여기 '화연이네'입니다. 식당 밖에 있는 메뉴를 보니 구미가 당갑니다. 식당도 깔꼬롬해 보입니다.
식당은 자그마합니다. 네댓 개의 테이블이 있고 마룻바닥으로 되어 신발 벗고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한쪽 벽면에는 유명인들의 싸인이 가득합니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이 얼굴이 익히 알려진 유명인은 사인해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알아보고 사인해 달랄까요? 아니면 그 자칭 유명인이 사인해 드릴까요?라고 말 할까요?
메뉴는 해물 요리가 대부분입니다. 하루종일 땀 빼고 돌아다녔으니 기운도 내고 입맛 도는 것을 골라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전복성게국. 싱싱한 전복과 성게의 조합을 기대합니다.
반찬이 나옵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게 정갈하니 잘 나옵니다. 서빙 보는 아저씨는 반찬 재활용 안 하기에 조금만 내온다는 한마디 남기고 가시네요. 이 중에서 저는 왼쪽 위에 미역하고 가지를 냠냠 잘 먹었습니다. 다른 건 손이 잘 안 갑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실 메인요리요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안 먹기도 했습니다.
짜잔 이것이 전복성게국의 자태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전복이 안에 숨어 있고 그 위에 미역과 성게알이 좀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팽이버섯을 올려놓은 모습입니다. 저는 요렇게 들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복을 끄집어낸 것입니다. 전복과 성게가 싱싱합니다. 국물도 구수하면서 시원하니 술술 넘어갑니다. 전복성게국 한 그릇에 오늘 하루의 피로가 풀립니다.
고내포구에서 해안도로 타고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됩니다.
밥을 먹었으니 후식을 먹습니다. 고내포구 주변에 분위기 괜찮은 맥주집들이 있습니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나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저기서 *폼 잡고 한 잔 하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곳들 다 피하고 자그마한 카페에 들어섭니다. 무인카페입니다. 작년 올레길에 걸었던 어느 무인카페 느낌이 좋아서인지 이번에도 살며시 들어갑니다. 카페 이름은 '산책'
나무 책상과 나무 의자가 무척 정감 있고 따뜻한 분위기입니다. 남자 한 분이 조용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인연이 재밌습니다. 밥 다 먹고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니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합니다. 어? 누구냐 넌? 알고 봤더니 여기 카페에 있던 그 남자분이었네요. 다음날 아침도 같이 먹게 되고. 잘 생긴 그 아저씨 서울 잘 올라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두커피, 믹스커피, 각종 음료수, 유기농 티백, 유기농 허브차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격도 저렴합니다. 1천 원, 2천 원 정도뿐이 안 합니다. 이렇게 팔아서 장사되나? 할 정도입니다. 다 먹고 계산은 알아서. 벽면에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습니다. 자기가 쓰고 싶은 말 쓰고 붙이면 됩니다. 저도 하나 써보고 싶었는데, 포스트잇이 안 보입니다.
평소 커피 잘 안 마시는데 이 날은 왠지 커피가 땡기네요. 유기농 원두커피 한 잔 따르고 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봅니다. 유기농 원두커피 한 잔 2천 원. 유기농이면 으레 비쌀 것이라 생각되는데 가격이 저렴합니다. 그러면 커피맛이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카페 내 안내문에 의하면 카페 주인장이 매일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린다고 하는군요. 커피는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것만 사용한답니다. 양심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무인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3가지 비결. 글이 재밌어서 사진 찍어봤습니다. 무인카페를 공짜카페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카페 주인장 생각은 사람들이 조용히 와서 차를 즐기고 갔으면 하는데 분위기를 엉망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봅니다. 거기다 물건 훔쳐가고 돈 안 내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요. 나쁜 사람들.
무인카페 산책은 고내포구 앞에 있습니다. 조용히 차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느끼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아침 9시에 오픈. 밤 10시에 문 닫습니다.
밥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밤바다를 어슬렁 거립니다. 그전에 편의점에서 맥주 하나 사 들고요. 오늘도 무사히 걸어왔음에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축배를 들어봅니다.
역시 제주의 여름 밤바다 분위기는 멋집니다. 저 멀리 서는 고기잡이 배들이 불을 밝히며 고기 잡고 있습니다. 배에서 일하시는 것은 힘들겠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분위기 좋은 조명이 되어줍니다. 포구에서 밤 낚시하는 분도 있고 그냥 구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고, 고맙고,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다음날 아침에 바라본 포구의 모습.
제주 올레길 15코스 종착지이자 16코스 출발지인 고내포구입니다. 전복성게국 먹고 기운내고 무인카페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차분하게 마음 가라앉히고요. 마지막으로 포구 방파제에서 맥주 한 캔 하면서 여유도 느낍니다. 15코스를 힘들게 걸었던지라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고내포구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힘든 마음이 사라지고 편안해졌습니다. 고내포구는 나중에 제주도 여행길에 다시금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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