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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충청수영성

 

봄소식 따라 떠난 장항선 기차여행입니다. 장항선 유일의 간이역인 청소역에서 내렸고, 청소면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청소면은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지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청소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천으로 왔습니다. 오천에 도착해 충청수영성을 먼저 찾았습니다.

 

 

청소역 앞 편의점에서 9시 5분 버스를 탑니다. 701-1번 버스였습니다. 광천에서 오천까지 가는 버스가 청소를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면서 갑니다. 혼자만의 이런 여유가 좋습니다. 창밖으로는 갈대밭도 보이고, 벚나무 가로수길도 지납니다. 이제 좀 있으면 벚꽃이 활짝 피어나겠습니다.

 

버스는 오천면내로 접어듭니다. 오천농협이 보입니다. 여기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내리기에, 오천에 다 왔다는 생각에 같이 내렸습니다. 오천면사무소가 보입니다. 오천면사무소 바로 옆이 충청수영성입니다. 충청수영성 바로 앞에 주차장 있습니다.

 

 

 

 

 

 

수영성은 해군기지를 말합니다. 충청수영성은 충청도에 있는 해군기지를 말합니다. 보통 육지에 산성, 도성, 읍성은 익숙한데, 수영성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수영성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군요.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수영성이 있습니다.

 

충청수영성은 별도의 입장료, 주차비는 없습니다. 특별히 관람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은데, 밤이 되면 어두워서 다닐 수는 없을듯 합니다. 충청수영성의 서문이 아치형의 문틀만 남아있습니다. 서문을 정문 삼아 들어갑니다. 지금 동백꽃도 피었겠군요.

 

 

 

 

 

서문으로 들어오면 진휼청으로 추정하는 건물을 보게 됩니다. 충청수영성에 건물이 많았는데, 대부분 사라졌답니다. 고지도를 보고 진휼청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진휼청 앞에 할머니 몇 분이 앉아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드립니다. 할머니들은 충청수영성 주변을 다니면서, 청소하셨습니다.

 

진휼청은 흉년에 충청수영성에서 빈민구제를 담당했던 곳입니다. 충청수영성이 폐지된 후 민가로 사용하였답니다. 이후 보령시에서 매입해서 문화재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은 영보정.

 

 

 

 

 

성곽을 따라 걷는 느낌이 좋습니다. 날씨가 더 따뜻해져서 푸른 잎이 돋아나면 더 보기 좋겠습니다. 이날 꽃샘추위로 너무 추웠어요.

 

 

 

 

 

영보정(永保亭)입니다. 충청수영성의 메인입니다. 2015년에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 영보정은 조선 연산군 11년(1504년) 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량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187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37년 만에 복원했습니다. 영보정은 영원히 보전한다는 뜻입니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영보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청소하고 계십니다. 인사를 건넵니다. 사람들 많이 오나요? 물으니 여름에 특히 많이 온답니다. 영보정에 오르면 여름에 시원하겠습니다.

 

 

 

 

 

영보정에서 바라본 오천항 풍경이 좋습니다. 영보정 주변에서 보는 일몰이 참 좋다고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멋있습니다. 다음에 누군가와 함께 올 날을 미리 그려봅니다.

 

영보정의 멋진 풍경을 보고 많은 이들이 칭송했다고 전해집니다. 정약용은 "세상에서 호수, 바위, 정자, 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영보정을 으뜸으로 꼽는다"라 했답니다. 채팽윤(조선 후기 문신)은 "호서의 많은 산과 물들 중 영보정이 가장 뛰어나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충청수영성을 간단하게 보신다면 영보정까지만 보고 내려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충청수영성을 한 바퀴 돌아보고자 합니다. 영보정 뒤로 내려가면 도로가 나옵니다. 도로를 건너가면 공해관의 출입문 역할을 하는 삼문이 있습니다. 공해관은 수군절도사의 집무실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객사

 

 

 

 

 

충청수영성 입구에는 충청수영성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충청수영성이 있는 오천항은 백제시대에 회이포라고 불렸습니다. 통일신라시대까지 외국과 교역이 이루어졌습니다. 고려시대에 왜구의 침입이 많아지면서 수군을 설치합니다. 조선시대 수영성이 만들어지고, 충청도 해안방어의 요충지가 됩니다.

 

충청수영성은 중종 4년(1509년)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지었습니다. 성의 둘레는 1,650m, 성은 전체적으로 자라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4개의 성문과 소서문을 두었습니다. 4개 성문 중 처음 올라왔던 서문(망화문)만 남아 있습니다.

 

충청수영성의 수군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군을 격파했습니다. 진주성에서 대부분 죽음에 이릅니다. 충청수영성을 지키던 수군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은 빈체로 방치되기 시작합니다. 고종 33년(1896)에 폐영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습니다.

 

 

 

 

 

 

객사 뒤로는 복원이 되지 않았습니다. 복원하기 위해서 조사를 하는 단계로 보입니다. 사이사이 이곳은 어떤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습니다. 저는 날것의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이 부분 걷는게 좋았습니다. 물론 원래의 모습으로 잘 복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있습니다.

 

 

 

 

 

 

 

 

 

성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조선 초기 충청수영성과 그 아래 군선이 142척, 수군이 8,414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 안에는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변루(待變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옹성(甕城) 5개, 문 4개, 연못 1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을 한 바퀴 쭉 돌고 나니, 성곽은 끝이 나고, 오천면내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충청수영성과 함께 했습니다. 저 멀리 영보정이 보입니다. 오른쪽에 오천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충청수영성은 군대가 있던 곳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복원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충청수영성 자체가 가진 풍광이 멋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저는 오천항으로 내려갑니다. 오천항에는 키조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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