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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효종대왕릉 영릉(寧陵)

1년에 한 번씩 외가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올해는 경기도 여주에서 모였습니다. 1박을 하고 여주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습니다. 먼저 찾은 곳은 조선 효종대왕릉(영릉, 寧陵)입니다. 가을도 끝이 보이는 이때 왕릉은 우리에게 어떤 감동과 의미를 안겨줄지 살펴보겠습니다.

원래는 세종대왕릉(영릉, 英陵)을 가려고 했습니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 모두 영릉입니다. 한자는 다릅니다. 영릉이 한 곳 더 있습니다. 영조의 맏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일찍 죽은 효장세자(사후 진종으로 추존)의 능도 영릉(永陵)입니다.

먼저 세종대왕릉을 갔는데, 보수 공사 중이어서 관람할 수 없었습니다. 세종대왕릉에서 차로 1~2분 거리에 있는 효종대왕릉을 관람하기로 합니다.  세종대왕릉 공사 중이라고 효종대왕릉에서는 관람료를 받지 않습니다. 공사는 2020년까지 이어진다 하니, 관람하실 분은 사전에 확인을 해보셔야겠습니다.


 

매표소에서 10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재실(齋室)이 있습니다. 왕릉이니까 제사 지낼 일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제사 지내기 위해 제수 장만, 제기 보관 등을 하면서 제관(祭官)들이 머무는 곳이 재실입니다. 효종대왕릉이 구리에서 여주로 이전하면서, 재실도 함께 옮겨온 것이랍니다.

효종대왕릉 재실은 특별합니다. 현재 조선왕릉에 있는 재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된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효종대왕릉 재실은 훼손되지 않고 처음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재실 안에 건물과 함께 3그루의 큰 나무가 눈길을 끕니다.

 

 

재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회양목이 있습니다. 회양목은 원래 작고 낮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 정도로 큰 회양목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영릉 재실에서 계속 자라온 것으로 보고 있으니, 수령이 300년은 족히 넘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45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회양목 맞은편에 늘씬한 향나무에도 눈길이 갑니다.

 

 

거대한 느티나무도 있습니다. 거대한 용이 나무로 변한 것일까? 라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수령은 500년 정도 되었다는군요. 오랜 세월의 힘이 느껴집니다. 나무를 함부로 만져서 안 될 것 같은 경외심이 듭니다. 이렇게 묵묵히 오랜 세월 지키고 있는 고목을 보면, 아등바등 싸우는 인간들이 참 작아 보입니다.

 

 

재실에서 나와 능까지 걸어갑니다. 전성기의 가을이 지나 단풍도 지고, 나뭇잎도 떨어졌습니다. 한적하게 걸으며 깊어가는 가을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 바스락 소리도 있고,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도 좋고요. 11월 첫째 주 정도까지는 단풍을 즐기며 걸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효종대왕릉에서 왕의숲길을 따라 세종대왕릉까지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릉 보수공사로 왕의숲길도 갈 수 없습니다. 왕의숲길 이 길은 꼭 가보시길 추천하는 곳입니다. 왕의 기운을 느끼며, 자연과 함께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최고의 산책로입니다. 길이도 700m 정도여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단 5월부터 10월까지만 걸을 수 있습니다.


 

홍살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정자각이 있고, 뒤로 능이 보입니다. 홍살문을 지나 능으로 가는데, 이때 바닥을 잘 보셔야 합니다. 길이 왼쪽은 높고, 오른쪽은 낮습니다. 왼쪽은 향로라고 해서,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지나가는 길입니다. 신이 다니는 길입니다. 오른쪽은 어로입니다.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길입니다. 관람하는 분은 어로로 걸어야 합니다.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 지낼 때 중심이 되는 건물입니다. 건물 모양이 ‘丁’자처럼 생겼기에 정자각이라 불립니다. 정자각 좌우로 수라간, 수복방이 대칭으로 있어서, 제례에 필요한 준비를 합니다.  





  

 

능에 좀 더 가까이 가보기로 합니다. 효종대왕릉은 능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잔디를 가로질러 가면 안 되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아래에서 능을 올려다보시면 능이 2개입니다. 왼쪽 위에 있는 것이 효종대왕릉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효종의 비 인선왕후의 능입니다. 이런 형태를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 합니다. 흔한 구조는 아닙니다. 봉분을 2개로 한다면 옆으로 붙여서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동원상하릉을 만드는 것은 풍수지리 때문이랍니다. 능혈의 폭이 좁아서, 정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효종대왕릉 비 인선왕후의 능. 곡장이 없습니다. 곡장은 능을 둘러싼 담을 말합니다. 동원상하릉에서는 왕릉에만 곡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효종대왕릉에서 바라본 인선왕후의 능. 인선왕후는 효종과 함께 북벌론을 주장하였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효종(당시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기에, 북벌론을 주장하였을 것입니다. 북벌론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기 위해 청나라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의 능입니다. 조선의 제17대 왕입니다. 인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이름은 이호. 인조의 첫째아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잡혀갔다 조선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죽습니다. 소현세자의 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 봉림대군(효종)이 왕세자가 됩니다. 효종은 대동법을 실시했고, 화폐(상평통보)를 유통시켰습니다. 북벌론을 주장하며 군사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영릉(寧陵)은 처음부터 여주에 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건원릉 옆에 있었습니다. 건원릉은 조선 태조의 능입니다. 구리에 있습니다. 처음 능을 만들었을 때 석물에 틈이 생겨, 봉분에 물이 샐 수 있다 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조선 제17대왕 효종이 잠들어 있는 영릉(寧陵)을 다녀왔습니다.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도 연결됩니다. 세종대왕 영릉은 많이들 가시는데, 효종의 영릉은 찾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용하게 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능의 형태가 독특해서 좀 더 눈길이 가기도 하고요. 재실도 특별합니다.  

저는 예전에 5월에 영릉을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있었는데, 만추에 살펴보는 영릉의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지금 공사 중이라 갈 수 없지만, 세종과 효종 두 왕을 만나는 길은 의미 있습니다. 다음 코스는 신륵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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