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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일제강점기 우리는 많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일제는 우리에게 무력을 행사하였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는 일제강점기 형무소로 사용했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역사관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를 맞이하지만, 그 속에는 독립의 얼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사전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약은 역사관 홈페이지에서 받습니다. 관람 14일 전부터 1일 전까지 예약 가능합니다. 관람 인원은 시간당 100명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관람 시작입니다. 관람료는 어른 1명 3천 원입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시관부터 관람합니다. 전시관은 서대문형무소 업무를 총괄했던 건물입니다. 지하는 조사실,  1층은 사무실, 2층은 소장실과 회의실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은 형무소 역사실, 민족저항실, 지하조사실 등으로 나누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형무소 역사실부터 관람합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개소합니다. 개소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식 감옥이었습니다. 국권을 회복하고자 맞서 싸운 한국민을 저지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탄압이 더욱 심해졌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수감하였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초를 겪은 장소입니다. 

 

 

 

 

 

 

1912년 공덕동에 대규모 감옥을 신축합니다.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공덕동 감옥이 경성감옥이 됩니다. 1923년에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뀝니다. 1930년대 들어서면, 처음 감옥이 만들어졌을 때보다 30배 넘게 규모가 커집니다. 그만큼 많은 독립운동가를 수감했기 때문입니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바뀝니다. 1998년 서대문구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민족저항실입니다. 시기별로 나누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민족저항실 Ⅰ 에서는 대한제국 말기 의병부터 1919년 3ㆍ1 독립 만세운동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용수입니다. 원래 용수는 간장이나 술을 거를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형무소에 오니 용도가 바뀝니다. 수감자 이송 시 일반인에게 독립운동가 얼굴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얼굴에 씌웠던 도구입니다. 

 

 

 

 

 

 

1919년 3ㆍ1 독립 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대량으로 만드는 데 사용하였던 태극기 목각판입니다. 3ㆍ1 독립 만세운동 때 독립선언을 발표한 민족대표 33인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순국한 분들도 있고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수많은 인사들이 서대문형무소로 들어옵니다. 수감 인원이 3천 명이 넘어서고, 서대문형무소를 대대적으로 넓힙니다. 

 

 

 

 

 

 

민족저항실 Ⅱ 에서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사상범'의 수형기록카드 약 4,800장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수형기록카드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상범은 기존 사회체제에 반대하여, 체제의 변혁을 꾀하려다 붙잡힌 사람을 뜻합니다. 일제에게 독립운동가는 사상범이었겠지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입니다. 

 

 

 

 

 

 

민족저항실 Ⅲ은 1920년대부터 1945년 광복까지 서대문형무소와 관련된 항일 독립운동을 소개합니다. 사형장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절명시가 전해오는 울림이 큽니다. "단두대 위에 올라가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전시관 지하는 조사실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 들어와서 조사받고 대기하던 곳입니다. 수감자들을 취조했던 곳입니다. 고문 육성 증언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사실에서 여러 고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매달아 물고문도 하고 벽관에 가두기도합니다. 날카로운 꼬챙이로 손톱과 입속을 찔러 고통을 주고, 고문 방법이 잔인합니다. 모형으로 봐도 이런데, 실제로 고문당한 독립운동가들의 고통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전시관을 나와 외부에 있는 옥사를 살펴봅니다. 옥사는 중앙사, 11-12옥사, 9옥사, 공작사 등으로 구분합니다. 위 사진에서 보는 곳은 중앙사입니다. 현재 중앙사는 형무소 조직기구, 감시도구, 재소자들의 일과 등 형무소 안의 전반적인 생활을 알아 볼 수 있는 것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앙사를 중심으로 10옥사, 11옥사, 12옥사가 뻗어 나갑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중앙사를 중심으로 옥사를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하였습니다. 간수가 한 곳에서 모든 곳을 감시, 통제하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일본인 간수들은 총, 칼을 소지하고 수감자에게 무차별적 구타를 자행하였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는 태극기는 좀 더 특별합니다. 







 

 

 

 

 

 

옥사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1평도 안 되는 비좁은 독방도 볼 수 있습니다. 1평이면 몸 하나 누우면 끝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해 독방을 만든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특수범죄자로 분류하여, 전기, 변기도 없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가두었습니다. 고문과 폭해 등 갖은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수감자들은 타벽통보법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감방과 감방 사이의 벽을 두드려 정보를 주고받던 암호 통신법입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순서대로 두드려 글자를 조합하는 방식입니다. 

 

 

 

 

 

 

왼쪽이 10옥사. 중앙사, 전시관입니다. 오른쪽 태극기 걸린 곳이 9옥사입니다. 태극기 앞에 커플이 있습니다. 우연인지 저 커플이 제가 사진 찍을 때마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네요. 예쁜 커플이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격벽장입니다. 수감자들이 간단한 운동을 했던 곳입니다. 192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운동할 때 대화하거나 도주하는 것을 막으려고 격벽을 세워 수감자들을 보호하고 감시하였습니다. 가운데에 높은 감시대를 세워 수감자를 감시하고 통제하였습니다. 해방 이후 철거한 것을 2011년에 복원하였습니다. 

 

 

 

 

 

 

나무 뒤에 있는 건물이 사형장입니다. 나무는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불립니다. 1916년 사형장 만들 때 심은 나무입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이 원통한 마음에 이 나무를 붙잡고 통곡했다 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 불립니다. 사형장 안쪽에도 미루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답니다. 억울한 한이 서려 자라지 못하고 말라 죽었답니다. 그 때 모습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나무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높은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사형장이 있습니다. 

 

 

 

 

 

 

여옥사.

 

여성 미결수를 가뒀던 곳입니다. 1916년 즈음 지었습니다. 철거한 것을 2011년에 복원하였습니다. 특히 여옥사 8호 감방은 1920년 3월 1일 3ㆍ1 독립 만세운동 1주년 옥중 만세 투쟁이 펼쳐졌습니다. 여옥사 지하 공간에 유관순 열사가 갇혔다고도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독립운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유관순입니다. 천안 아우내(병천)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920년 고문 후유증으로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에서 순국하였습니다. 나이 19세 때입니다. 

 

 

 

 

 

 

독립운동 탄압했던 도구. 쇠도리깨는 흉기입니다. 

 

 

 

 

 

 

1908년 서대문형무소를 열었던 당시는 담장 일부만 벽돌이었습니다. 1923년에는 형무소 주변 전체를 4m 높이의 벽돌담으로 쌓았습니다. 망루는 수감자를 감시하고 탈옥을 막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높이는 10m. 일제강점기에는 6개가 설치되었으나, 지금은 2개만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이곳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을 것을 생각하면 화가납니다. 지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고 감사한 마음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신 분들의 이야기는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은 가봐야 할 곳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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