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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병산서원

 

저는 여름을 좋아합니다. 낮이 길고, 햇살이 밝게 비추는 것도 좋습니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예쁜 꽃이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분홍빛 배롱나무꽃을 무척 좋아합니다. 전국에 배롱나무꽃 명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안동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는 탑 오브 더 탑입니다. 

 

서원은 안동 시내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걸립니다. 병산서원 진입로가 공사중이어서 비포장길입니다. 덜컹덜컹 운전이 쉽지 않습니다. 길옆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물줄기가 보기 좋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주차장에서 병산서원까지 낙동강과 하얀 백사장이 이어집니다. 병산서원은 입장료, 주차비 없습니다. 

 

 

 

 

주차장에서 병산서원까지 약 600m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시간상으로는 10분 정도 걸립니다. 콩밭에서는 콩이 익어가고, 은행나무에서는 은행이 결실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름이 깊어감을 느낍니다. 중간에 카페도 2~3 곳 보입니다. 그늘이 없습니다. 더위에 약한 분은 힘들 수 있습니다.  

 

 

 

 

2019년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648개 서원이 있는데, 그중에서 9개만 등재된 것입니다. 병산서원도 포함됩니다. 병산서원이 가진 특별한 가치를 새기며 서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병산서원을 만나니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붉은 배롱나무꽃이 서원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와우 탄성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아버지 부시) 기념 식수

 

 

 

 

서원의 입구인 복례문(復禮門)이 보입니다. 복례문으로 들어가는 길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습니다. 소박하면서 정갈함이 느껴집니다. 서원 안은 어떤 모습일지 사뭇 긴장하게 됩니다. 복례문 욕망과 탐욕의 유혹을 이겨내고 예(禮)로서 자신을 절제하여 인(仁)을 이룩하라는 뜻입니다.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복례문 들어가면 광영지(光影池)가 연못이 있습니다. 광영지는 선비들이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만든 '서원 속의 정원'입니다. 네모난 연못에 동그란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서원 하나하나 세심한 뜻이 있습니다. 연못 위에 떨어진 꽃잎도 예쁩니다. 

 

 

 

 

병산서원의 하이라이트인 만대루(晩對樓)를 만납니다. 만대루는 2020년 보물 제210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만대루라 이름은 두보의 白帝城樓(백제성루)라는 시 중에서 "翠屏宜晚對(취병의만대)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종일토록 바라보아도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대루 앞에서 내려다본 모습

 

 

 

 

 

 

 

 

만대루에 대해서는 극찬이 끝이 없습니다. 한국 건축의 백미, 슈퍼스타, 건축가들의 교과서, 자연과 하나 되는 가장 이상적인 공간 등 최고의 찬사가 이어집니다. 만대루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찬사가 헛된 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은 차경(借景)을 중시합니다. 차경은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으로 건축물 주변의 풍경을 안으로 들여온다는 것입니다. 만대루에 오르면 주변 풍경이 병풍처럼 넓게 펼쳐집니다. 산, 강, 하늘이 병산서원과 만대루와 함께합니다. 병산서원 자체는 작을지 몰라도,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지기에 병산서원과 만대루는 절대 작지 않습니다. 2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면적 그 이상으로 더 넓게 확장할 수 있는 풍경입니다. 

 

 

 

 

만대루는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으로 갖추었습니다. 만대루에 올라갈 수 없어서 옆에서만 구경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옆에서만 살짝살짝 봐도 공간이 주는 따스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 보도 만대루를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만대루를 지나면 병산서원(屛山書院) 현판이 보입니다. 병산서원의 시작은 고려 중기 풍악서당입니다. 서당의 유생들이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본 왕이 서책과 사패지를 내려 주기도 했습니다. 마을이 커지면서 서당을 옮겨야 했습니다. 서애 류성룡이 병산으로 옮길 것을 권하였고, 1575(선조 8)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병산서원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서애 류성룡, 수암 류진 두 분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내려 준 논밭

 

 

 

서원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교육과 제향입니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을 강학영역이라 합니다. 강학영역의 중심이 입교당(立敎堂)입니다. 입교당 중앙은 강학당, 동쪽은 명성재, 서쪽은 경의재 세 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입교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착한 본성에 따라 인간 윤리를 닦아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만대루와 입교당 사이에 동재(右)와 서재가 있습니다. 유생들 기숙사입니다. 좌고우저(左高右低)의 원리에 따라 동재에는 상급생들이, 서재에는 하급생들이 기거하였다.

 

 

 

 

입교당 뒤로 창이 있습니다. 창을 열면 입교당 뒤에 풍경과 연결됩니다. 이것도 차경입니다. 창을 열고 주변 풍경을 받아들이면서, 입교당은 더욱더 넓고 트인 공간이 됩니다. 

 

 

 

 

서원의 뒷부분은 제향영역입니다. 향사(제사)를 지내고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문은 내삼문입니다. 향사 때 제관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신문이라고도 합니다. 문 앞에 커다란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수령이 약 380년 되었습니다. 배롱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하여 크고 높게 자라진 않습니다. 

 

 

 

 

내삼문 문틈 사이로 존덕사(尊德祠)를 봅니다. 존덕사는 서애 류성룡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서원에서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기에 서원의 가장 안쪽 높은 곳에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존덕사는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높이 우러른다는 뜻입니다.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에 향사를 지냅니다. 

 

 

 

 

내삼문 앞 배롱나무. 내삼문은 신문이라고도 합니다. 붉은 배롱나무가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신성한 공간이어서 그런지 서원의 다른 곳보다도 내삼문 앞 배롱나무는 더욱더 신비롭습니다. 사진 촬영 포인트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가족 나들이를 왔나 봅니다. 아이들 셋이 내삼문 앞에서 섭니다. 아빠는 아이들 사진 찍어주고요. 차렷 자세로 아빠의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이들 표정이 무척 귀엽습니다. 

 

 

 

 

내삼문 옆으로 전사청 들어가는 문 주변으로 배롱나무가 활짝 피었습니다.  

 

 

 

 

전사청입니다. 향사 음식과 제기를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병산서원의 전사청은 별도로 담장을 둘러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하고 있습니다. 향사에 올리는 음식을 철저히 지휘하고 감독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사청 담 위에 떨어진 꽃잎

 

 

 

 

전사청 안에 피어난 배롱나무꽃

 

 

 

 

입교당 쪽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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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각(藏板閣) 앞 풍경. 장판각은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화재를 막기 위해서 다른 건물과 거리를 두어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서원의 명문도를 평가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판본의 소장량입니다. 책을 발간하는 목판은 서원의 중요한 재산입니다. 현재 병산서원에는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장판각에서 바라본 입교당 

 

 

 

 

장판각 앞에서 내삼문, 전사청 방면으로

 

 

 

 

푸른 하늘도 올려다보면서

 

 

 

 

 

 

 

 

병산서원뿐만 아니라 서원, 절에서 배롱나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배롱나무의 껍질에 답이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자라면서 껍질을 벗겨냅니다. 세속의 습성이나 욕망을 떨쳐 버리고, 깨끗하고 청렴한 성품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배롱나무꽃을 보면 작은 꽃잎이 촘촘하게 담겨 있습니다.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오르면서 화사함이 극에 달합니다. 배롱나무는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렀습니다. 간지럼을 태우면 나무가 간지러워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끈한 나뭇결이 고와서 만지고 싶어서 간지럼나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서원 나가면서 저 멀리 산과 강을 바라봅니다. 사진 왼쪽 끝에 짚으로 만들어진 구조물(?) 보이시나요? 서원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쓰던 화장실입니다. 달팽이 모양이라 '달팽이 뒷간'으로도 불립니다. 

 

 

 

 

복례문으로 나와서 문 앞에 배롱나무를 바라봅니다. 

 

 

 

 

병산서원 자체는 그렇게 크진 않습니다. 단순히 서원 건물로만 한정 지을 수 없습니다. 서원 주변의 산과 강까지도 서원의 영역입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이상향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병산서원은 크고 넓습니다. 여름날 화사하게 피어난 배롱나무꽃은 주변을 밝게 해 주기에 서원을 더욱더 빛나게 합니다. 병산서원은 한 번 보고 다 봤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은 시대의 걸작입니다. 또다시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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