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시원하고 반갑게 맞아주는 안동 묵계서원, 카페 만휴정

안동 묵계서원

 

경상북도 안동은 유학의 학문적 전통이 강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안동에는 서원이 많습니다. 병산서원, 도산서원 등 안동에만 26개의 서원이 있습니다. 안동은 서원이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그중에 한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안동 남동쪽 길안면에 있는 묵계서원입니다. 

 

묵계서원을 가기 전에 만휴정을 찾았습니다. 안동 시내에서 만휴정까지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더군요. 생각보다 꽤 멀었습니다. 만휴정은 조선시대 문신 김계행의 정원입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만휴정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묵계서원 이정표가 보입니다. 어느 여행책에서 만휴정과 묵계서원을 함께 봐야 한다는 글이 떠오릅니다. 먼 길 돌아가는 것이라면 지나칠 텐데 바로 앞이기에 놓칠 수 없습니다.

 

자동차로 좁은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숲으로 들어갑니다. 별도의 주차장은 없습니다. 서원 앞 나무 그늘에 주차합니다. 입장료, 주차비는 없습니다. 묵계서원은 처음입니다. 반갑습니다. 

 

 

 

 

진덕문(進德門)을 통해 서원으로 들어갑니다. 진덕은 덕을 증진하자는 뜻으로 해석해봅니다. 덕(德)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유교에서는 덕을 중요시합니다. 덕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유교적, 성리학적으로 깊게 들어가면 어렵지만, 덕이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됨됨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덕문을 들어가는데 고풍스러운 누각이 나타납니다. 오랜 시간을 품은 것만 같습니다. 읍청루(浥淸樓)입니다. 맑음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누각 위에 사람이 있습니다. 옆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읍청루에 오르니 그늘도 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시원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쉬고 싶습니다. 누워서 낮잠 자는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멍석 위에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 메뉴판이 있습니다. 카페의 한 자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에 무슨 카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원 옆으로 만휴정이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 에이드, 전통차 등이 있습니다. 음료 마시면서 쉬어가도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음료를 마시지 못했습니다. 

 

 

 

 

읍청루를 지나니 묵계서원 강당이 보입니다. 

 

묵계서원은 응계 옥고(1382∼1436)와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을 봉향하는 서원입니다. 1687년(숙종 13)에 창건하였습니다. 1869년(고종 6)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당시 서원이 1,700개 정도였는데 47개만 남겨 두었습니다. 1988년 강당, 읍청루, 진덕문, 극기재(동재)를 복원하였습니다.  

 

훼철(毁撤) : 건물을 부수거나 철거하는 것

 

 

 

 

읍청루 올려다 본 모습

 

최근에 복원한 건물이기에 카페로 사용하는 데 큰 문제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읍청루를 보면 최근에 복원한 건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꽤 오랜 시간 지나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묵계서원 입교당에서 숙박도 가능합니다. 평일 1박 2명에 18만 원입니다. 가격은 좀 있습니다. 한옥에서 하룻밤 머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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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재 앞에 매화나무가 반짝입니다. 극기재는 기숙사입니다. 보통 서원에는 학생들 공부하는 입교당 앞으로 기숙사가 있습니다. 동재, 서재 두 곳을 만드는데, 묵계서원에서는 동재만 있습니다. 옛 서원 건물에 선풍기가 턱 하니 자리하고 있는 것도 눈길이 갑니다. 선풍기가 없어도 분위기가 시원합니다. 

 

 

 

 

읍청루에서 입교당으로 오르는 길에 봉숭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손가락에 봉숭아 물들이고,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화려한 네일아트보다 봉숭아 물들인 게 더 예쁩니다. 

 

 

 

 

서원의 중심에 강당이 있습니다. 강당은 입교당이라고 부릅니다. 묵계서원을 있게 한 보백당 김계행, 응계 옥고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김계행은 김종직과 함께 영남 유림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성종 때 대사성(성균관의 장. 서울대 총장)을 역임하고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에 추증하였습니다.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뒤 71세에 묵계서원이 있는 마을로 들어옵니다. 안동 김씨의 입향조가 됩니다.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라고는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라는 유훈을 남길 정도로 청백리의 표상입니다. 

 

옥고라는 이름만 봤을 때 죄를 지은 분인 줄 알았습니다. 옥고는 세종 때 사헌부 장령을 지냈습니다. 청렴결백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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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계서원 강당 뒤 창으로 바라본 묵계서원

 

묵계서원 강당에 할머니 몇 분이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있으십니다. 낯선 이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더운데 어떻게 왔냐면서 올라와서 쉬었다 가라고 하십니다. 당신들이 사용하시던 선풍기를 제 쪽으로 당겨주십니다. 저는 사양하고 말씀만이라도 시원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서원 구경을 이어갑니다. 

 

 

 

 

"좋은 날에 만나 좋은 너를 만나" 만나고 싶습니다. 

 

 

 

 

서원은 지금으로 치면 지방 사립대학교입니다. 교육과 제향의 기능을 함께 합니다. 입교당이 교육영역입니다. 제향영역은 향사(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서원마다 모시는 분이 다릅니다. 묵계서원은 옥고 선생과 김계행 선생을 모시는 것입니다. 두 분의 위패가 청덕사에 있습니다. 사당은 서원 안에서 가장 소중히 다루어져야 하는 곳이기에 서원의 가장 안쪽 높은 곳에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백일홍(百日紅)이라고도 합니다. 백일 동안 꽃이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7월에서 10월까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꽃이 100일씩 계속 피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꽃 한 송이는 오래 피지 않지만, 꽃이 지면 다른 꽃이 차례로 피어나서, 긴 시간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백일홍이라는 국화과 꽃도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릅니다. 백일홍 소리가 변해 배롱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묵계서원 안에 배롱나무가 많지는 않습니다. 배롱나무마다 붉은 꽃이 예쁘게 피어나 서원을 빛내고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자라면서 껍질을 벗겨냅니다. 허물을 벗습니다. 세속의 습성, 욕망을 떨쳐 버리고, 깨끗하고 청렴한 성품을 가지라는 뜻에서 서원에 배롱나무를 심습니다. 여름에 꽃도 예쁘니 보기 좋고요. 

 

 

 

 

강당에서 바라본 읍청루. 

 

 

 

 

 

 

 

 

묵계서원 곳곳에도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습니다. 서원 주변으로 공사를 하더군요. 배롱나무 뒤로 검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공사장 풍경과 소음 때문에 고즈넉하게 서원을 즐기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공사는 주사채 복원공사인 것으로 추측해봅니다. 서원 철폐령 때 헐리지 않고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카페에서 구입한 음료는 서원 안에서 자유롭게 마실 수 있습니다. 배롱나무 아래 테이블이 있습니다. 

 

 

 

 

가운데 2개의 돌탑(?) 정체가 궁금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만든 것 같지는 않은데, 무엇에 쓰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김계행 신도비

 

 

 

 

서원하면 어렵고 무거운 분위기를 생각하는데, 묵계서원은 카페도 있고, 할머니들의 반갑게 맞아주셔서 편안하게 둘러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묵계종택까지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만휴정만 보고 묵계서원까지 둘러보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휴정, 묵계종택, 묵계서원 모두 보백당 김계행과 관련 있습니다. 함께 돌아보시면 의미가 좀 더 진하게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