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오릉
봄 경주 여행기 이어갑니다. 경주에는 수많은 고분이 있습니다. 경주 남산 아래에 있는 오릉을 찾아갑니다. 오릉은 말 그대로 5개의 고분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관련 있어 특별합니다. 봄날 오릉은 사진 명소로도 많이 찾습니다. 4월 5일 풍경입니다. 지금 벚꽃과 목련은 없습니다.
신경주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경주시 내남면에 있는 용산회식당입니다. 경주 시내에서 500번 버스를 타면 식당까지 갈 수 있습니다. 500번 버스는 오릉을 지나갑니다. 식당에서 밥 먹고 경주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오릉을 살펴보려 합니다. 오릉 주변에 벚꽃과 목련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주변으로도 벚꽃이 피었습니다. 길 전체가 벚꽃입니다. 옛날 필름 상표가 담긴 오능상회에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오릉 후문입니다. 버스에서 뒤로 돌아가야 오릉 정문이 나옵니다.
정문 앞에 가니 하마비(下馬碑)가 있습니다.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은 내리라는 것입니다. 신성한 곳이니 예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오릉 입장권 어른 2천 원.
오릉에 들어서니 여러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4월 초이기에 나무에 물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더욱더 푸릇푸릇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갑니다.
불경스럽지만 올록볼록한 고분이 귀엽습니다. 거대한 물방울 같기도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고 싶은 충동도 느꼈습니다. 고분 주변은 야트막하게 담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담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면서 고분을 살펴봅니다.
오릉은 말 그대로 5개의 릉입니다. 오릉에는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오릉에 신라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 2대 남해 차차웅, 3대 유리 이사금, 5대 파사 이사금 그리고 박혁거세 부인인 알영왕비까지 5명의 무덤이라 적고 있습니다. 모두 박 씨 임금입니다.
신라가 임금을 왕이라 부른 것은 22대 지증왕 때부터입니다. 그전에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으로 불렸습니다. 왕이라 늦게 불린 것은 신라가 중앙집권국가로의 성장이 늦었기 때문입니다. 남해왕, 유리왕 등 왕으로 불려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가 죽은 후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으로 떨어졌답니다. 이때 왕비도 따라 죽습니다. 사람들이 박혁거세와 왕비를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합니다. 몸의 다섯 부분을 각각 묻었답니다.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은 사실성이 떨어진다고도 합니다. 신라가 경주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이 파사 이사금부터이기 때문입니다. 무덤 양식도 박혁거세 당시의 양식이 아니라고도 하고요. 오릉은 지금까지 발굴 조사한 적이 없습니다. 도굴당한 기록도 없습니다. 발굴 조사하지 않는 한 무덤 주인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오릉 주변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안에 벚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운 것이 인상적입니다. 오릉 주변의 다른 벚나무보다 더욱더 화사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벚나무 아래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오릉의 정체가 확실하진 않지만 박혁거세와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당시 인물들이 그렇듯이 신화적인 면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나온 내용입니다. 기원전 69년경. 경주 지방에 여섯 개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촌장들은 나라를 세우자고 했습니다. 촌장들은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둘러보았습니다. 나정이라는 우물가로 흰말이 들어옵니다. 흰말은 크게 울면서 하늘로 올라갔고 흰말이 있던 자리에 자줏빛 알이 있었습니다. 알이 갈라지면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촌장들은 하늘에서 임금을 보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습니다. 혁거세는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입니다. 박처럼 생긴 알에서 나와서 박 씨가 되었습니다. 박혁거세는 기원전 57년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습니다.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지었습니다. 61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진짜 알에서 태어나진 않았을 것입니다. 임금이 하늘의 후손이라며 신성시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오릉 옆에 건물이 몇 채 있습니다. 먼저 볼 것은 알영정입니다.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이 태어난 우물입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따르면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나 여자아이를 낳았답니다. 어떤 할머니가 이 광경을 기이하게 보고 아이를 길렀습니다. 아이는 자라면서 빼어난 용모와 덕행을 갖추었고 박혁거세와 결혼합니다.
알영정 앞에 작은 대나무 숲
숭덕전으로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숭덕전은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입니다. 1428년(세종 11년)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다시 짓고 보수하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1735년(영조 11년)에 고친 것입니다. 홍살문 안쪽으로 영숭문, 숙경문을 지나면 숭덕전이 있습니다.
숭덕전으로 들어가는 영숭문은 닫혀 있습니다. 영숭문 앞에는 "신도입니다. 통행을 금함"이라 적혀 있습니다. 가운데는 신이 지나는 길이라 일반인은 지나 다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양쪽의 문을 이용해서 출입해야 합니다. 사당은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 너머로 살짝 구경합니다. 옛날에는 박혁거세 제사를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박씨 문중에서 주관합니다.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영숭문 옆에 숭성각이 있습니다. 숭성각에는 박혁거세와 숭덕전의 내용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가 있습니다. 조선 영조 35년(1759)에 신도비를 세웠습니다.
오릉은 목련 포토존이 인기가 많습니다. 제가 4월 5일에 갔을 때는 목련 꽃잎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3월 말경에 왔으면 딱 보기 좋았겠습니다. 목련은 연꽃 같은 꽃이 피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꽃이 피어나면서 순백의 모습일 때 곱고 귀하게 보입니다. 꽃잎이 떨어지면서 색이 변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오릉 담 너머로 벚꽃이 보입니다.
오릉 관람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거리에는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오릉은 다른 경주의 명소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는 화사한 벚꽃 따라 걸을 예정입니다. 걷기 전에 김밥 먹고 가겠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김밥이라 쓴 거 보이시나요? 교리 김밥입니다.
교리김밥은 계란 가득 들어간 김밥으로 유명합니다. 교촌마을에 있었는데 한번 먹으려면 대기줄이 엄청나게 길었죠. 교리김밥이 오릉 앞으로 이전했습니다. 회덮밥 먹고 왔는데 김밥에 국수가 들어가네요. 풍경이 좋아서 그런가 봅니다.
예전에는 신라오릉이라 했는데 경주오릉으로 공식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와 관련 있는 곳이니 영험하고 신비한 정기가 느껴집니다. 때마침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꽃구경까지 함께하니 좋습니다. 벚꽃은 4월 5일 풍경입니다. 지금은 꽃 다 떨어졌습니다.
회덮밥 먹은 내남면 이조리에서 오릉까지 버스 타고 이동합니다. 거리에 벚꽃 풍경이 예뻐서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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