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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삼판서고택

 

집에도 기운이 있다고 합니다. 좋은 기운이 있는 집이 있고요. 특정 지역이나 집에서 특별한 인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경상북도 영주시에는 삼판서 고택이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3명의 판서가 살았던 집이라는 뜻입니다. 삼판서고택에서 좋은 기운을 담아봅니다. 

 

 

영주시 북쪽에 있는 소백산 생태탐방원에서 1박 했습니다. 삼판서 고택을 보기 위해 영주 시내로 향합니다. 차창 밖으로 사과 과수원과 인삼밭이 많이 보입니다. 영주시 풍기읍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삼을 재배한 지역입니다. 1541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산삼 종자를 채취해서 풍기에 심은 것이 인삼 농사의 시작입니다.  

 

 

 

 

 

 

저와 일행을 태운 버스는 영주 시내로 접어듭니다. 버스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눈치입니다. 길가에 정차합니다. 기사 아저씨가 주차할 곳을 찾는 것 같습니다. 차창 밖으로 구강정(龜江亭)이 보입니다. 구(龜)는 거북이를 뜻합니다. 거북이와 무슨 관련이 있지 궁금합니다. 2012년 구강정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버스는 서천변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섭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하천 이름이 서천입니다. 서천은 영주시의 젖줄이라 불립니다. 영주 시내 가운데를 흐릅니다.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면 삼판서고택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리 너머 언덕 위에 고택이 있습니다. 서천 따라 불어오는 찬 바람이 매섭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건물은 제민루입니다. 다리 건널 때는 저 건물이 삼판서고택인 줄 알았습니다. 

 

 

 

 

 

 

삼판서고택 앞에 도착했습니다. 판서는 지금으로 치면 장관입니다. 영주 삼판서고택은 입장료, 관람료 없습니다.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택의 첫 번째 판서는 정운경입니다.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조선시대 형조판서)를 지냈습니다. 정운경은 사위인 황유정에게 그리고 황여정은 사위인 김소랑에게 고택을 물려줍니다. 김소랑의 아들 김담이 이어받습니다. 이후에는 김담의 후손이 고택을 관리하였습니다. 황유정은 공조판서 김담은 이조판서를 지냈습니다. 사위들에게 집을 내어주는 것이 새롭습니다.  

 

 

 

 

 

 

정운경은 강직하고 청렴한 관리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정운경이 세상을 떠나자 친구들이 염의(廉義)라는 사시(私諡)를 지어 주었습니다. 김담은 세종대왕과 함께했습니다. 관리이면서도 당시 가장 뛰어난 천문학자, 지리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외국의 천문역서를 조선식으로 수정,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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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판서 고택은 영주에 남아있는 고택 중 가장 오랜 역사가 있는 건축물입니다. 정면 7칸, 측면 6칸 규모입니다.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ㅁ자형입니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석축 위에 사랑채인 집경루(執敬樓)가 보입니다. 집경루는 모든 자손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조상을 공경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채를 보면 전통 가옥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사랑채는 남자의 공간으로서 묵객들이 묵객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취미를 즐깁니다. 


 

 

 

 

삼판서 고택이 세 명의 판서외에도 역사적 인물 때문에 더 주목을 받습니다. 조선 개국 일등 공신이자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의 생가입니다. 정도전의 아버지가 정운경입니다. 정도전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유배 뒤에 머문 곳도 삼판서고택입니다. 정도전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고향 영주와 고향집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리움을 시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아버지의 강직하고 청렴함을 배웠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것이 조선을 설계하는데 바탕이 되지 않았겠냐는 추측 및 상상을 더 합니다. 사헌부 지평 황전, 집현전 교리 김중 등 많은 학자와 선비가 삼판서 고택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집에 좋은 기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삼판서 고택 옆에 제민루가 있습니다. 제민(濟民)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보건소와 비슷한 기능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소백산에서 나오는 진귀한 약재를 보관하고 태의(왕과 왕족 치료하는 의원)에게 약재를 공납하기도 했습니다. 1371년 하륜이 군수로 부임하면서 지은 것을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민루에서 서천을 바라봅니다. 물가에 새들이 날아옵니다. 강변에는 카라반이 주차해 있고 시민들이 운동합니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현재 영주의 모습을 만들게 된 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삼판서고택과 제민루의 역사이기도 하고요. 1961년 여름 영주에 대홍수가 발생하였습니다. 영주읍내 80%가 물에 잠겼습니다. 사망자도 14명이 있었고 약 15,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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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판서 고택 앞에 달 조형물이 있습니다. 가만 보니 조명 장치인 것 같습니다. 밤에 불 들어오면 예쁘겠습니다.

 

대홍수로 인해 삼판서 고택이 피해를 입습니다. 관리가 안되고 결국에는 철거에 이릅니다. 제민루는 무너졌고요. 그러면 지금 건물은 뭐냐? 삼판서 고택은 2008년에 제민루는 2007년 복원하였습니다. 삼판서고택의 원래 위치는 구성산 아래였습니다. 원래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복원한 것입니다.

 

 

 

 

 

 

산 아래 있던 삼판서 고택의 원래 모습. 사진 출처 영주시민신문 홈페이지

 

 

 

 

 

 

1961년 대홍수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는 삼판서 고택 뒤 나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무에 안내문이 있습니다.  '국가재건 최고 회 의장 박정희 장군 기념식수 유래'라 적혀 있습니다. 홍수로 인한 피해가 심해서 박정희가 내려왔고 수해복구를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가 박정희였으니까요. 

 

대홍수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서천의 유로를 변경하는 것입니다. S자로 흐르는 서천을 직강화합니다. 그러면서 영주의 지형이 바뀝니다. 공사가 끝나고 박정희가 내려와서 기념식수를 한 나무입니다.  

 

 

 

 

 

 

 

 

 

 

 

태양광 벤치가 인상적입니다. USB 충전 단자도 있습니다. 패널이 깨진 것이 관리가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버스로 돌아가기 전 고택 앞에서 서천을 바라봅니다. 서천 가운데 암반이 올라와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이때는 서천 옆 정자가 구강정이라 부르는 것이 서천의 암반을 보고 지은 줄 알았습니다. 구성산이 거북이 모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자 이름에도 거북이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삼판서고택은 영주 시내에 있습니다. 영주역에서도 가깝고요. 영주 여행길 시작할 때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삼판서고택은 정도전 생애를 알아보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세 분의 판서도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서천을 내려다보면서 영주의 역사를 알게 된 것도 유익했습니다. 고택이 원래 위치는 아니라 할지라도 고택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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