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촌 데이트
부부도 아니고 애인도 아닙니다. 어느덧 알고 지낸 지 25년 된 여사친과 함께 서울 서촌을 돌아다녔습니다. 오후에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서촌 이후 광화문광장을 거쳐 명동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면 서촌이 어디냐? 경복궁 서쪽입니다. 효자동, 통인동, 체부동, 옥인동 일대입니다. 한옥도 있고 사이사이 골목길이 이어지면서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정겨움이 있는 동네입니다. 북촌, 남촌 처럼 방위로 지역을 나누는 것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했다고 합니다. 원래 서촌은 경복궁 서쪽이 아니고 정동 쪽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옵니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간판이 보입니다. 본디 이곳은 금천교시장이라 불렸습니다. 세종대왕 태어나신 곳이라고 해서 2011년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습니다. 시장 골목으로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합니다.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200m 정도 올라가면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여기는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의 사저가 있던 곳입니다. 조선 초기 서촌에 왕가가 모여 살았습니다.
경복궁역 주변 서촌 일대에서 여사친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봅니다. 동양, 서양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모습의 외국인이 많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많습니다. 데이트하는 커플도 많고요. 우리나라 사람, 외국인 할 것 없이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경복궁 영향일 것입니다.

2시쯤에 만납니다. 점심을 먹고 움직이기로 합니다. 서촌에는 토속촌 삼계탕이 있습니다. 서울 3대 삼계탕집 중 한 곳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3대 삼계탕에 속한 식당이 달라집니다만 토속촌 삼계탕은 빠지지 않고 꼭 포함됩니다. 한옥에서 먹는 분위기가 특별합니다.

토속촌 삼계탕은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서 좋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인삼주는 미리 세팅이 되어 있습니다. 인삼주 한 잔 마시고 삼계탕을 기다립니다. 토속촌 삼계탕은 진하고 고소한 맛이 있습니다. 적당히 익은 김치, 깍두기가 삼계탕 맛을 돋웁니다.

배불리 먹었고 우리는 걷습니다. 목적지는 수성동 계곡입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보기로 합니다. 느낌 받으면 인왕산까지 가는 것이고 힘들면 중간에 내려오고요. 골목을 오르던 중 이상의 집을 발견합니다. 이상의 큰 아버지 집이지만 이상이 3살 때부터 20년 동안 살던 집이기도 합니다. 이상의 여러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감성적으로 되더군요.

북쪽으로 걸어 올라갑니다. 이상의 집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대오서점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타이틀이 있습니다. 헌책방입니다만 책을 팔진 않고 카페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외부도 그렇지만 내부도 헌책방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이유, BTS RM 등이 다녀가면서 더욱더 유명해진 공간입니다.

시원하게 유자레몬차 마십니다.

안녕 아이유. 2014년 꽃갈피 앨범 표지 사진 촬영을 대오서점에서 했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서울이라 하면 커다란 도로 높은 고층빌딩과 아파트를 떠올립니다. 서촌 일대는 좁은 골목길이 이어집니다. 골목길 사이사이로 한옥도 보이고요. 자그마한 카페는 잠시 쉬어가라며 손짓합니다. 저 앞으로는 인왕산이 보입니다. 인왕산이 마을을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서촌은 깊이 들어갈수록 참 맘에 듭니다.

대오서점에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윤동주 하숙집 터가 나옵니다. 말 그대로 터만 있습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대학(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하숙했다는 집의 터입니다. 윤동주가 살 때는 한옥이었으나 지금은 다세대주택입니다. 다세대주택 담벼락에 하숙집 터라고 안내문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윤동주는 별 헤는 밤 같은 주옥같은 시 10편을 썼습니다.
근처에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도 가보려 했으나 공사 중이어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수성동 계곡까지 왔습니다. 계곡이라고는 하지만 물이 콸콸 흐르진 않습니다. 물이 흐르는 건 나중 문제고 수성동 계곡을 마주하는 순간 아름다운 풍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시대 명 화가들이 그린 수묵화가 현실로 4D로 팍 다가온 느낌이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극찬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조선의 대표 화가 정선도 수성동 계곡을 그림으로 남겼고요.

수성동 계곡 위로 인왕산까지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초소책방을 지나 청운문학도서관, 윤동주문학관, 창의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스톱. 8월 말 아직 여름입니다. 덥네요. 내려가는 길 멀리 서울 종로가 보입니다. 서울은 서울입니다.

점심 먹은 것도 소화가 되었고 더운 날씨 걸었으니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마시기로 합니다. 대오서점 옆에 있는 서촌가락으로 향합니다. 서촌가락은 테이블 5~6개뿐이 없는 자그마한 식당입니다.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시더군요.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감자전과 콩국수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십니다. 역시 막걸리는 땀 흘리고 나서 먹어야 제맛입니다. 오늘은 송명섭막걸리가 좋네요.

어디로 갈까 하다가 덕수궁에 가기로 합니다.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분위기가 좋을 것 같았습니다. 30분 넘게 걸어가야 한다는게 부담이긴 하지만 일단 걷습니다. 중간에 소품샵이 있어서 구경도 하고요. 이 아저씨는 소품샵에 큰 관심은 없습니다. 소품샵에서 즐거워하는 여사진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걷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지나가고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만납니다. 분수대 들어가 시원함을 즐기는 아이들이 부럽습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서울야외도서관이 열렸습니다. 5월 17일부터 9월 29일까지 매주 목, 금, 토, 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서울광장이 야외 도서관으로 변신하는 이벤트입니다. 책을 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후리하게 누워서 책 보는 모습이 편안해 보입니다. 이벤트 끝날 때까지 시간 있으니 참여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예정에 없던 것이라 패스.

덕수궁 보러 가려던 계획은 취소하고 명동으로 향합니다. 명동에서 한잔하고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여름날 명동에는 사람이 인산인해입니다. 떠밀려 간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인파로 북적입니다. 역시 명동은 북적북적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맥주에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하루를 정리합니다.

여사친 버스 태워 집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합니다. 저 혼자 한잔 더 하고 싶습니다. 냉면이 땡기더군요. 몇 년 전 방문했던 평래옥이 떠올랐습니다. 평래옥 가는 길에 명동성당을 바라봅니다. 밤에 선명하지 않게 흐릿하게 찍힌 명동성당. 몽환적이면서 웅장한 느낌이 듭니다.

평래옥 냉면. 평래옥은 닭무침이 기본으로 나오는 게 특징입니다. 고명으로 배추가 올라갑니다. 냉면과 닭무침을 안주 삼아 반주 한잔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날 냉면은 좀 별로 없음. 취한 건 아닙니다.
오늘 간 곳을 정리하면
경복궁역 - 토속촌 삼계탕 - 이상의 집 - 대오서점 - 윤동주 하숙집 터 - 수성동 계곡 - 서촌가락 - 광화문 광장 - 서울시청 서울광장 - 명동 - 평래옥
2시에 만났고요. 제가 평래옥에서 나오니 9시가 넘었습니다. 함께 먹고 걷고 이야기 나눕니다. 25년을 알고 지냈다는 것은 우리의 청춘을 함께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스스럼없고 반가운 친구입니다. 서촌에서 즐거운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선선해지면 다시 오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저 혼자 쓱 다녀올 수도 있고요. 서촌은 혼자서도 둘이서도 거닐기 좋은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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