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뭐 긴 설명 필요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선정이 되었구요... 그 시대에 어떻게 그런 조각을 만들어 내었는지..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뿐입니다.. 신비, 경이.. 이런말로도 표현이 잘 안되는.. 그리고 부족하지요.. 여름이 시작될 무렵 다녀왔 던 석굴암에 대한 느낌을 전해보려 합니다..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굴암은 석불사(石佛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경덕왕 10)에 재상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 석불사를.. 현세의 부모을 위해서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고, 774년 김대성이 죽자 신라 왕실에서 완성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석굴암은 신라 왕실의 염원에 의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 찾아 간 석굴암에는 하얀 안개가 가득했습니다... 석굴암 입구에서 표를 사고 (어른 4천원) 석굴암이 있는 곳으로 향해 걷습니다.. 어느 새 밝은 태양은 안개를 거둬내고... 찬란한 햇빛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10여분 숲길을 걷는 기분이 좋습니다..
어느 커다란 바위에 적혀 있는 글귀가 인상적입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이 남긴 글입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세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
푸른 초록이 이쁩니다...
개인적으로 석굴암에는 재미난 추억도 있습니다..
경주에서 동호회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불국사 앞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새벽 석굴암의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지요.. 새벽 같이 일어나서 산길을 오릅니다.. 1시간 정도 올랐나요? 그래서 석굴암에 도착하는 순간.. 할머니들을 비롯해서 상당수의 사람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헉!.. 대형버스도 있고.. 차 타고 오면 되는 것을.. 새벽같이 등산을 하다니... ㅋㅋ.. 일출도 못 보고... ^^
숲길을 뚫고 나오니 석굴암이 더욱 가깝게 다가옵니다... 왼쪽 위에 있는 누각 안에 석굴암이 자리하고 있지요...
이른 아침이지만.. 석굴암에는 수 많은 인파로 붐빕니다... 개별적으로 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학생들 단체로 온 모습입니다.. 초등학생이 많이 보입니다.. 시끌벅적..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선생님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메모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 나이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셨는지요? ^^.. 저는 메모.. ㅋㅋ..
이 친구들이 아직 석굴암을 비롯한 문화유산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할수도 있지만.. 그들의 추억 한켠에.. 경주에서의 시간이 의미있게 자리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가지 돌 들이 있습니다... 그냥 돌은 아니죠...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다... 이 석물들은 석굴암을 수리(1913~1915, 1962~1964) 할 때 교체된 구부재들과 기타 주변 석물이라는 군요...
수리한 시기가 좀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 그들이 수리할 것이 뭐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교체되고.. 남는것들..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물건 뜯고 조립하면 몇 개의 나사가 남는 그런 느낌... 그런 불길한 느낌은 점점 크게 다가옵니다...
석굴암에 들어가기 전 석굴암의 평면도와 종단면도를 봅니다... 석굴암의 구조에 대해서는 백과사전을 인용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석굴암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
긴 줄을 따라 들어다서 유리창에 가려진 석굴암을 보고 나옵니다.. 보고 나오는데 1분도 안걸리죠.. 본다기 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기분입니다.. 유리막에 가려진 석굴암... 어려서 수학여행으로 석굴암을 보러 왔을 때도 스쳐 지나갔습니다.. 한동안 석굴암을 내가 봤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번에는 석굴암 한 켠에 서서..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경비 아저씨가 사진 찍지 말라고 강하게 제지를 합니다.. 예전 같으면 몰래 찍었을 텐데... 이번에는 그저 바라만 봅니다.. 석굴암에 대한 예의도 아닌듯 하고.. 조금이라도 더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봅니다..
찬찬히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 유리창에 갇혀 답답해 보이는 모습도 안 쓰럽고.. 커다란 불상이지만 위압감이 느껴지기 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드는 얼굴 모습.. 조각솜씨..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석굴암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요.. 문화재청에서 사진을 갖고 왔습니다.. 느껴보시지요..
석굴암..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석굴암 사천왕상 (사진출처 : 문화재청)
요 며칠 사이에 석굴암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이자..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 교수가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을 했었지요.. 석굴암에 대해서 극찬을 하면서 아파하는 석굴암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던 김대성이 만들기 시작합니다.. 774년 완성이 되었지요.. 오랜세월 이어오던 석굴암은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폐사가 됩니다.. 시간은 흘러 일제강점기가 되고... 방치되어 있던 석굴암은 어느 우체부에 의해서 발견이 됩니다.. 통감까지 와서 석굴암을 보고 가지요..
이제 문제는 지금부터..
이후로 석굴암에 있던 석탑과 불상이 사라집니다... (누가 갖고 갔을까요?.. ).. 그리고.. 일본인들이 초대형 사고를 치게 되는데.. 자기들은 문명국이기에 문화적으로 앞섰다면서... 석굴암을 고치겠다고 손을 댑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저네들이 뭘 할 줄 알겠습니까? 본존불 하나만 남기고.. 다 해체를 합니다...
콘크리트로 1m 돔을 만들고... 해체한 돌을 콘크리트로 붙입니다..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지요...
제대로 고쳤을리가 없지요.. 석굴암에 습기가 차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일이 더 커지는데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보수공사를 하면서 습기가 차는 것이 비가 샌다고 생각한 나머지.. 콘크리트 위에 콘크리트를 더 칩니다... 허걱.. 더 엉망이 됩니다...
습기가 차는 것은 비가 새는 것이 아니고.. 결로현상이었던 것이고.. 신라시대에는 불상밑에 감로수를 두어 천연통풍이 되게 해서 습기가 차지 않았는데.. 그 통풍을 막아버리니 습기가 차게 된 것이지요..
현대에 와서 잘못된 보수로 인해 습기는 차고.. 그 해결책으로 석굴암 내에 에어컨디셔너를 설치합니다... 하지만 기계가 돌아간다는 것은 진동을 유발하는 것이되고.. 진동은 석굴암에 보이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수광전.. 원래 승방으로 사용되는 건물이었습니다.. 지금은 관리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석굴암 일대를 다니다가 학생들 앞에서 설명하는 어느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됩니다... 석굴암의 역사에 관해서는 유홍준 교수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이야기가 비슷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석굴암을 보수 할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남았다고 합니다... 그 한번의 기회를 살리기 위하여 수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합니다.. 한 번의 기회를 통해서 완벽한 보수가 아닌.. 석굴암이 처음 만들어졌던 그 때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석굴암은 완벽한 sin12˚ 의 값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1/1000 오차도 허락하지 않은.. 설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인류최고의 건물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대한민국의 모든 유산이 파괴되어도 석굴암 하나만 남아도 세계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사 속 무관심과 무지로 석굴암은 지금도 아픔을 겪오 있습니다.. 석굴암을 더 이상 아프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세계가 보호해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석굴암이 1400년 전 처음 태어났을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경상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0년 전 숭고한 사랑의 완성을 느끼게 되는 안동 월영교 (44) | 2011.12.31 |
---|---|
봐도 봐도.. 볼 때마다 새로울 것 같은 경주 양동마을 (56) | 2011.09.28 |
경주에서.. 신라 천년의 미소가 전세계로 퍼진다.. (72) | 2011.08.02 |
기찻길에서 특별한 와인이 익어간다... 청도 와인터널.. (64) | 2011.06.16 |
경상북도의 참맛을 찾아 떠나는.. 흥겨운 기차여행... (66) | 2011.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