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건원릉
반만년을 이어 온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왕이 있었습니다. 그 들은 다 명을 달리했고 그들의 무덤은 전국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까지도 왕이 지배했던 나라 조선. 조선시대 왕릉을 찾아가는 길은 숲 속 휴양림을 걷는 기분입니다. 조선의 왕릉은 수도권 주변에 주로 펼쳐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동쪽에 있는 구리시에는 동구릉이 있습니다. 동구릉에는 이상한 왕릉이 있습니다.
동구릉(東九陵)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능. 동구릉은 왕 한 명의 릉이 아닙니다. 9명의 왕릉이 모여 있는 것이랍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대표적이면서 독특한 건원릉만 먼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쉬는 날 이불속에 뒹굴뒹굴할 수 있지만 저의 발걸음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불을 박차고 나와서 서울로 향합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구리까지 한 번에 갈 수 없기에 동서울 터미널까지 와서 동구릉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동구릉까지 가는 버스는 많더구먼요. 1, 1-1. 1-5, 1-6 등등 그렇게 버스는 구리시내를 지나서 동구릉에 도착합니다.
동구릉 앞으로 구리 둘레길이 지나갑니다. 제주 올레길에 뒤이어 많은 걷기 여행 코스가 등장했습니다. 걷기 여행이 인기를 끌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행을 따라만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행자 입장에서 새로운 코스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반갑습니다. 다만 관리를 잘 좀 하면 좋겠어요. 길만 만들어 놓고 알아서 가라고만 하는 곳들도 종종 보입니다.
구리 둘레길은 왕숙천에서 아차산까지 4개의 코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총길이는 약 40㎞.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릉입니다. 동구릉만 세계문화유산이 아니고 조선왕릉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조선왕릉 자체의 조형예술적 가치, 풍수이론에 대한 고유한 해석, 조선왕릉 함께하는 기록문화, 6백 년을 이어온 왕실의 제례 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배경입니다.
입장료 1천을 내고 들어옵니다. 관리하는 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좋습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보면 동구릉 역사문화관이 있습니다. 동구릉과 조선왕릉에 대해서 미리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무조건 들어갔습니다.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동구릉 관람시간은 하절기(3~10월)에는 6시부터 18시 30분까지 동절기(11~2월)는 6시 30분부터 17시 30분까지입니다. 매표시간은 관람시간 1시간 전에 마감되고요.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동구릉 홈페이지에는 동구릉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라고 나왔는데 저는 2시간 가까이 돌아다녔네요.
날씨는 춥지만 푸른 하늘은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조선시대 왕릉이 좋은 이유는 숲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겠지만 오늘날에는 자연휴양림으로서의 역할도 상당합니다. 동구릉에는 9릉 17위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무덤이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익종의 능인 수릉이 9번째로 만들어졌습니다.
태조라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해서 쭈욱 올라가는 높은 어르신인대 그 주변에 맘대로 묘를 써도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 문화해설사 분이 계셔서 물어봤습니다. 왕릉별로 지맥이 다르기에 문제는 없다는군요.
수릉과 현릉을 둘러보고 건원릉으로 왔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왕릉 그것도 조선 태조의 왕릉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릉을 보기 위해서 들어가 봅니다. 홍살문 앞으로 옵니다. 몸과 마음가짐을 엄숙하게 하고 예를 갖춥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길은 참도라고 합니다. 참도는 제례를 위한 공간이기에 가지 말라는 푯말이 붙어 있습니다.
건물모양이 정(丁) 자 이기 때문에 정자각입니다. 정자각은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건물입니다. 이 정자각이 작년 2011년 연말에 보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건원릉의 정자각은 태종 8년(1408)에 건원릉과 함께 건립됩니다. 조선 1대 태조의 정자각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조선왕릉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건원릉의 정자각과 더불어 동구릉 내의 숭릉 정자각(보물 제1742호)과 목릉 정자각(보물 제1743호)도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자각 앞에 있는 조형물. 이것은 소전대(燒錢臺)라고 합니다. 제례의 제물을 소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소전대에서는 위패를 태웠습니다.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곡배(曲拜 - 가운데 네모난 돌)를 만납니다. 임금을 뵙고 절을 하는 장소입니다.
비각안에는 신도비가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것은 건원릉이 만들어질 때부터 있었던 것이고요. 오른쪽의 것은 대한제국 수립 후에 만든 것입니다. 비석이 웅장합니다. 개석과 비석받침이 정교합니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비각입니다.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능이 잘 안 보입니다. 그렇다고 후다닥 올라가 볼 수도 없고 말이죠. 다행스럽게도 문화유산해설사 분이 어디선가 짠 하고 등장을 해주시네요. 능이 잘 보이는 위치를 알려줍니다.
정자각 사이로 보니 건원릉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능 주변 석물들도 보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겨울이라 푸른 잔디는 없다 치더라도 이상한 잡풀들이 가득합니다.
사진은 수릉의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왕릉이라면 봉분이 이렇게 반질반질합니다.
줌을 당겨보니 풀의 정체는 억새입니다. 억새가 왜 피었지? 역사 속으로 들어갑니다. 인조실록 1629년(인조 7) 3월 19일의 첫 번째 기사 내용을 살펴봅니다.
동경연 홍서봉이 아뢰기를,
“건원릉 사초(莎草 : 무덤에 잔디를 입히는 것)를 다시 고친 때가 없었는데, 지금 능에서 아뢰어 온 것을 보면 능 앞에 잡목들이 뿌리를 박아 점점 능 가까이까지 뻗어 난다고 합니다. 원래 태조의 유언에 따라 고향의 억새풀을 사초로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른 능과는 달리 사초가 매우 무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무뿌리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어제 대신들과 논의해 보았는데, 모두들 나무뿌리는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사초가 만약 부족하면 다른 사초를 쓰더라도 무방하다고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식(寒食)에 쑥뿌리 등을 제거할 때 나무뿌리까지 뽑아버리지 않고 나무가 큰 뒤에야 능 전체를 고치려고 하다니 그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흙을 파서 뿌리를 잘라버리고 그 흙으로 다시 메우면 그 뿌리는 자연히 죽을 것이다. 예로부터 그 능의 사초를 손대지 않았던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던 것이니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이지요..
건원릉에 억새풀이 덮여 있는 것은 태조의 특별한 유언 때문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왕자들의 치열한 권력다툼을 지켜보면서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습니다. 말년이 되고 죽음이 가까워지자 태조는 마음의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에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자신이 죽고 나면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태조의 고향인 함흥까지가 너무 멀기에 할 수 없이 함흥에서 나는 억새풀로 자신의 봉분을 덮어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래서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의 유언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봄여름에는 일반적인 봉분처럼 푸른 잔디로 뒤덮이지만 가을, 겨울이 되면 잔디 대신 억새풀이 자랍니다.
건원릉 다음 코스 인 목릉에 다녀오면서 바라본 건원릉입니다.
건원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능으로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즉으로 고려 공민왕의 현릉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으로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없던 곡장을 봉분 주위에 두르고 있고 석물의 조형은 남송 말기의 중국풍을 따르고 있습니다.
태조는 생전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했고 그래서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태종이 태조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건원릉을 조성했습니다. 신덕왕후의 능을 도성 밖으로 이장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라 할지라도 말년에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옛 일을 추억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가 봅니다. 고향에 직접 가지는 못했더라도 고향의 흙 안에 잠든 태조 이성계는 죽어서 행복했을까요? 2012년 들어서 처음으로 포스팅합니다. 제 블로그에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 하시는 일 모두 대박 나시고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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