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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무섬마을

경상북도 영주로 떠난 여행길입니다. 영주에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무섬마을입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사람이 발길이 잘 닿지 않을듯한 곳에서 어떤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있습니다. Ω자 형태입니다. 얼핏 보면 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별도의 입장료나 주차비는 없습니다.

주차하고 관광안내소를 찾았습니다. 아름드리나무 왼편에 보이는 건물이 관광안내소입니다. 어떻게 둘어보아야 하느냐고 여쭤봅니다. 둑방길을 따라가서 외나무다리를 만난 후, 마을로 들어와서 구경하라 하십니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니, 생활하는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돌아보라 당부하셨습니다.

 

 

둑방길을 따라가니 하천 옆으로 거대한 모래사장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 외나무다리가 보입니다. 외나무다리는 무섬마을을 상징합니다. 무섬마을 사람들은 외나무다리를 건너 농사지으러 향했습니다. 장마때 물살에 휩쓸려가면 주민들은 다시 다리를 만들기를 반복하였습니다. 현대에 와서 신식다리가 놓이면서, 외나무다리는 추억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을에는 외나무다리가 2개 있습니다. 둘 다 직접 건널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외나무다리를 건너보았습니다. 길이는 약 150m 정도됩니다. 폭은 50㎝ 정도입니다. 이정도는 가볍게 걸어갈 수 있겠지 했는데, 막상 물 위를 지나갈 때는 움찔하기도 했습니다. 이날은 비가 와서 물이 좀 불어있었습니다. 중간중간 교행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원수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외나무다리 주변의 너른 백사장이 있습니다. 하천의 퇴적사면에는 퇴적작용으로 모래가 쌓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다리는 수도교입니다. 무섬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수도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외부로 외나무다리를 통해 마을 외부와 연결하였습니다.

 

 

두번째 외나무다리

 

 

둑방길 끝에 무섬자료전시관이 있습니다. 무섬마을의 역사, 문화 그리고 마을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마을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 재밌습니다. 전시관은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람 후 문을 꼭 닫고 가라는 문구도 기억에 남습니다. 야생동물이 올 수 있다네요.

 

 

무섬마을은 지금도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살림도 하고, 텃밭도 가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자들이 왔다갔다 하다보면 동네 주민과 마주치기도 합니다. 어르신들 뵈면 인사도 여쭤봅니다. 관광지가 아니고, 주민이 살고 있기에 집들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평민이 한마을에 함께 살았습니다. 양반만 모여살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기에, 평민도 함께 어우러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을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5월 무섬마을에는 예쁜 꽃이 곳곳에 피었습니다. 산딸나무꽃, 양귀비, 마가렛 등이 보입니다. 꽃밭이라고 정형화되게 키우는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초가집 지붕은 동그랗습니다. 무섬마을 초가집은 각이 있습니다. 안동, 영주 등 경상북도 내륙의 초가집은 까치구멍집이라 부릅니다. 지붕 용마루 양쪽에 둥근 구멍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내륙의 집은 닫힌 구조입니다. 겹집입니다. 환기가 잘 안됩니다. 지붕에 구멍을 뚫어서 환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 모양이 까치둥지를 닮았다하여 까치구멍집이라 부릅니다.

 

 

무섬마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집이면서, 반남박씨 종택인 만죽재 고택

무섬마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무섬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66년입니다. 반남 박씨인 박수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습니다. 박수의 증손녀 사위인 예안 김씨(선성 김씨) 김대가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무섬마을은 반남박씨와 예안김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구한말에는 120여 가구에 500명가까이 살기도 했답니다. 현재 50가구에 100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무송헌(撫松軒) 김담 종택. 김담은 조선 세종 때의 천문학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이순지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서인 칠정산을 만든 것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칠정산은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천문학 수준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송(撫松)은 소나무를 어루만진다는 뜻입니다.

 

 

무섬마을의 대표적 부잣집인 김위진 가옥(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60호)





 

 

 

 

 

무섬마을 중심에 있는 섬계고택. 섬계는 무섬마을의 옛 이름입니다. 섬계고택, 만죽재고택 등 무섬마을의 여러 고택에서는 민박도 가능합니다. 집집마다, 인원수마다 가격 차이가 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4명 기준으로 5~10만원 정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저도 하룻밤 머물고 싶습니다.

 

 

청퇴정에 올라 바라본 무섬마을 풍경

 

 

김태길 가옥 수춘재 앞에도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해우당입니다. 수도교를 건너 무섬마을로 들어오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1830년 김영각(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손자)이 지은 집입니다. 1879년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중수하였습니다. 해우당은 무섬마을에서 가장 큰 집입니다. 해우당은 김낙풍의 호입니다. 김낙풍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조언자였답니다. 해우당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입니다.

 

지도에서 초록색은 모래사장이 있는 곳입니다. 하천에 공격사면은 유속이 빠르면서 침식이 활발합니다. 반면 퇴적사면은 유속이 느리면서 퇴적이 이루어집니다. 위 지도에서 초록색 부분이 퇴적사면입니다.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무섬마을을 다녀왔습니다. 하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곳에 마을이 만들어졌습니다. 독특한 자연적 경관 속에 인문적 경관이 더해져서 무섬마을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오랜 고택에는 사람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기에 반갑습니다. 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보는 것도 무섬마을의 추억을 오래남게 해줍니다.

영주 무섬마을 http://musum.kr/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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