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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우리나라는 근현대로 들어오면서는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특히 일제는 우리나라를 침탈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서 우리는 펼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국채보상운동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은 대구입니다. 대구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찾았습니다. 

나홀로 떠난 당일치기 대구 기차여행입니다. 저는 혼자 기차타고 다니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기차가 좋고,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다니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각설하고 고속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립니다. 첫번째 목적지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입니다. 동대구역 3번 출구로 나와서 버스를 탑니다. 목적지가 거의 다 왔을 무렵, 다음 정류장이 '국채보상운동공원'이라는 안내방송을 들었습니다. 

 

 

공원 이름에 '국채보상운동'을 넣었다는 것이 뭔가 특별해 보였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공원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합니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넓은 공원이 있다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공원이 있는 곳은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입니다. 동인동에 있어서 동인공원으로도 불린답니다.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고, 시민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1998년 3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공원 조성공사를 했습니다. 면적은 42,509m2(12,859평)

 

 

벤치 뒤에 방석보관함이 있습니다. 열어보니 진짜 방석이 있습니다. 겨울이니까 벤치가 차가우니 방석을 깔고 앉으라는 배려인가 봅니다. 

 

 

공원 곳곳에 국채보상운동 기념물이 있습니다. 먼저 만난 것은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입니다. 대구 패물폐지부인회에서 '경고 아 부인동포라(우리 부인동포에게 공경스럽게 고한다)'는 한글로 된 격문을 공포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 당시 가정주부, 여학생, 기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갖고 있던 보석, 비녀, 반지 등을 의연금으로 헌납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에 여성이 참여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남녀평등의식이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성운동의 발전으로로 이어집니다. 

 

 

김광제와 서상돈은 국채보상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하였습니다. 김광제는 광문사 사장, 서상돈은 부사장이었습니다. 광문사는 조선의 지식인과 민족자산가가 합심하여 만든 출판사입니다.  

1907년 김광제와 서상돈은 술과 담배를 끊어 국채를 갚아 나가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합니다. 대한매일신보에 국채보상운동의 취지를 밝힙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이 확산됩니다. 처음에는 지식인들이 주도하였지만, 이내 일반국민들까지 합세하는 범국민적 운동이 되었습니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있었습니다. 기념관 입장료는 없습니다. 기념관은 2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에 관해서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오전 9시부터 관람 가능합니다. 동절기(11월~2월)는 오후 5시까지, 나머지 하절기는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동경제일국립은행 차관도입 계약서, 재정고문용빙계약안

먼저 제1전시실로 들어왔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전반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당시 대한제국의 독점적 지배권 확립을 위해 차관공세를 시작합니다. 차관은 점점 불어나고,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일제로부터 들어온 차관이 1906년에 1,300만원 이었답니다. 현재 시세로 보면 1조 3,000억원 정도 된답니다. 나중에는 1,840만원까지 불어납니다.



대구에서는 계층을 가리지 않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사진은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이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입니다. 대구는 조선후기 상업 중심지로서 많은 인구와 물자가 모였습니다. 경부선 철도공사 때문에 많은 일본인이 대구로 모여들었습, 일본의 경제적 침탈이 심해졌습니다. 일제에 반발하여 시장의 상인들, 걸인, 마부, 노비 등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국채보상가  







2전시실로 왔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결과, 국채보상운동의 의의,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양기탁과 베델이 만나는 모습을 재현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확산되자 일제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는 대한매일신보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일제는 국채보상운동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생각과 달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방해공작을 시작합니다. 

대한매일신보 사장 베델과 총무인 양기탁은 그 대응방안을 모색합니다. 베델을 영국으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영국이 반대합니다. 양기탁을 횡령혐의로 구속했으나 무죄로 풀려납니다. 일제의 방해공작은 결국 국채보상운동이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끝을 내게 됩니다. 



탁본체험, 퀴즈풀기 등을 할 수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모금한 의연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민립대학을 설립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강탈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실패하였다해도,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결집된 힘과 애국정신은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국채보상운동을 기록한 회고문, 통감부 문서, 수기, 정부기록물, 신문기사 등 총 2,475건의 문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습니다. 많은 국민이 참여하고, 중국, 멕시코, 베트남 등의 나라의 국채보상운동에 영향을 미친점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상당수가 온전히 보전된 것도 등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채보상운동공원에 있는 달구벌대종. 대구시민의 대화합과 번영의 뜻을 담아 탄생한 종입니다. 199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광복절, 1월 1일 타종식을 합니다. 제작비는 8억 4천만원


대구는 올해 1월달에 다녀왔습니다. 지금 대구는 코로나19가 급습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공원 안에 기념관도 현재 휴관중입니다. 100년 전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하고,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대구민들의 의지를 생각해봤습니다. 100년전 그 의지로 이번 코로나19도 잘 이겨낼 수 있으시길 하는 바람으로 포스팅 하였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을 멈추고, 대한민국이 건강해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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