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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미도다방

지금은 카페라는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전에는 다방에서 사람을 만나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었습니다. 요즈음 다방 보기가 어렵습니다. 대구 나들이길에 미도다방을 찾았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입니다. 코로나 19 확산되기 전에 다녀왔습니다. 

대구는 조선시대 경상감영(도청)이 옮겨오고, 영남지방의 경제적 중심지가 되면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대구광역시 중구에서는 대구근대골목투어라는 테마여행을 만들었습니다. 여행자들이 걸으면서 대구의 근현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근대골목투어는 종로, 진골목으로 이어집니다. 진골목으로 들어서면 미도다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도(美都)는 아름다운 도시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도시 속에 있는 다방은 어떨지 기대됩니다. 다방에 들어가기 전에 입구 왼쪽에 있는 전상열 시인의 '美都茶房'이라는 시를 읽어보면 좋습니다. 시를 통해 다방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미도다방 / 전상열 


종로2가 미도다방에 가면

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꽃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

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


종로2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여사도 끼여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주고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벌이를 하고 있다





다방 입구 옆에는 다방의 주인이신 정인숙 여사님(사진 오른쪽)을 볼 수 있습니다. 1982년도부터 다방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미도다방은 아니고, 다른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시작하셨답니다. 미도다방도 몇 차례 자리가 옮기게 되었습니다. 여사님이 미도봉사회를 만들어서 온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도다방에는 많은 예술인, 정치인들이 찾는 명소였답니다. 



미도다방 입구




다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다방 곳곳에서 수많은 그림, 수석, 글씨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갤러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작품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손님이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공간이 넓었습니다. 넓은 공간 속에서도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공간이 넓고, 빈자리가 잘 안 보입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제일 안쪽에 빈자리를 발견합니다. 



넓은 공간에 손님이 많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대부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었습니다. 한자리에 삼삼오오 앉으셔서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주변을 쓱 돌아보니, 제가 제일 나이가 어린 손님이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는 카페는 많은데, 어르신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찻집, 다방이 잘 없습니다. 어르신들만의 공간도 분명 필요할 텐데 말입니다. 




메뉴판을 봅니다. 쌍화차, 인삼차 등 다방에 맞는 다양한 차들이 있습니다. 차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합니다. 쌍화차 4,000원, 커피 2,500원. 메뉴판 마지막에 빙설이 독특합니다. 빙설은 팥빙수입니다. 










정인숙 여사님이 과자를 한 아름 갖고 오십니다. 다방 앞에서 사진으로 보던 그대로, 곱게 단장하셨습니다. 말씀도 어찌나 다정스럽게 해주시던지요. 대접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전병(센베이 과자), 웨하스가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이거 별도로 주문한 것이 아니고,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 푸짐하게 나와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과자 다 먹으니 배부릅니다. 




테이블 위에 하얀 그릇 안에는 프림과 설탕이 있습니다. 다방커피는 프림과 설탕의 조화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맛이 다르지요. 문득 제가 어렸을 때, 커피는 못 먹고, 프림에 설탕 타 먹던 생각이 났습니다. 어떨 때는 그 맛이 그리워 커피 자판기에서 우유를 선택할 때도 있습니다. 




다방커피를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있었지만, 저의 선택은 쌍화차였습니다. 노른자 동동 올려진 진짜 쌍화차를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쌍화차 주문 후 5분여가 지나고 나서, 쌍화차는 제 앞으로 왔습니다. 한약향의 쌍화차향만 맡아도 기운이 생깁니다. 쌍화차 안으로 살짝 잠긴 노른자가 귀엽습니다. 




이렇게 미도다방 쌍화차 세트가 완성되었습니다. 




문제는 노른자입니다.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고민되더군요. 쌍화차하고 같이 먹어야 하는지, 그러면 터질 텐데, 그러면 쌍화차 맛이 달라질 듯하고. 그래서 결정하기를 숟가락으로 노른자를 탁 떠서 한입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먹는 방법이 맞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왜 쌍화차에는 노른자를 넣을까요? 다른 차에는 넣으면 안될까요? 포스팅하다가 궁금했습니다. 검색해보니, 예전에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단백질 공급이 쉽지 않은 시절에 노른자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영양보충이라는 것입니다. 커피에도 노른자를 넣어 먹었다던데, 커피에 노른자는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옆 테이블 손님이 빠져나간 틈에 미도다방 모습을 담아봅니다. 꽃무늬 소파, 벽면에 가득한 시서화. 오래돼 보이긴 하지만 낡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정된 모습이었습니다. 다방이라는 이름 그대로 차를 마시는 공간입니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면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손님이 많아서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한낮에는 손님이 많다더군요.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영업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 명절 당일 휴무


대구근대골목투어 전 코스를 다 돌지 않더라도, 진골목 일대를 살짝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진골목에서 진은 길다는 뜻이지만, 진골목은 종로라는 메인 도로 뒤에 있는 작은 길입니다. 대구의 옛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진골목을 거닐다가 미도다방에 앉아 차 한잔 마셔보는 여유도 만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정인숙 여사님의 따뜻함과 진한 차 한 잔의 느낌이 잔잔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대구가 하루빨리 코로나 19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코로나 19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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