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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분원백자자료관

 

친구와 함께 무작정 떠난 팔당호 나들이입니다. 용인에서 만나 광주 쪽으로 향합니다. 광주광역시 아니고 경기도 광주입니다. 광주는 도자기가 유명합니다. 도자기축제도 열립니다.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서 붕어찜을 잘 먹고 도자기 구경하러 갑니다.

 

 

무작정 떠난 팔당 나들이. 붕어찜은 잘 먹었는데 그다음에 어디를 갈지 막막했습니다. 붕어찜을 다 먹을 무렵 사장님에게 근처 가볼 만한 곳을 물어봅니다. 사장님이 식당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분원백자자료관 있다며 꼭 가보라 추천해 주십니다.

 

분원백자자료관 가는 길에 '분원도요지' 표석이 보입니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31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에 필요한 백자를 광주에서 많이 만들었답니다. 광주 곳곳에 도자기를 만들었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그것을 묶어서 사적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분원이 광주 내 여러 곳으로 이전하다가 조선 후기가 되면서 남종면 분원리에 정착합니다.

 

가마에서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 좋은 나무가 필요한데 광주의 산에는 좋은 나무가 많았답니다. 도자기에 필요한 흙도 있었고요. 한강을 이용하여 제품을 운반하기에도 편리했기에 광주에 분원이 설치된 것입니다.

 

 

 

 

 

 

붕어찜 식당에서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분원도요지 표석에서 분원초등학교 방면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됩니다. 그러면 분원초등학교가 보입니다. 학교를 지나 위로 더 올라가면 분원백자자료관이 나옵니다. 자동차로 바로 자료관까지 갈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오르막길 아래 주차하고 걸어 올라오셔야 합니다.

 

 

 

 

 

 

 

 

너른 잔디밭 뒤로 보이는 건물이 '분원백자자료관'입니다. 분원백자자료관은 분원초등학교의 사용하지 않는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왕실과 중앙관청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백자를 만들고 관리하는 기관이 사옹원(司饔院)입니다. 사옹원의 분원(分院)이 있어서 분원리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던 분원리는 1973년 팔당댐 건설 때 수몰되었답니다. 옛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분원백자자료관은 별도의 관람료가 없습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월 1일.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음식물 반입은 당연히 금지. 사진 촬영은 상업적 촬영이 아니면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으로 들어왔습니다. 직원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자료관은 하나의 공간으로 넓게 트여 있습니다. 온전한 모습의 도자기, 도자기 파편도 보입니다. 사이사이 조선시대 도자기, 분원리에 관한 설명이 적힌 보드판도 있습니다. 이제 분원백자자료관을 돌아보면서 자료관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01년 분원리 발굴조사 때 드러난 퇴적층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퇴적층 사이사이 도자기 파편이 보입니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가마를 사용합니다. 가마는 컨트롤하기 어렵고 변수가 많습니다. 도자기 불량이 많이 나온답니다.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는 도자기는 버려집니다.

 

버려진 도자기가 쌓이고 쌓여 퇴적층을 이룹니다. 먼저 버려진 것은 아래에, 나중에 버려진 것은 위에 쌓입니다. 이를 통해 도자기의 제작양상과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분원리는 130년간 운영되었기에 퇴적층의 규모가 큽니다. 다른 지역보다 조선 후기 관요백자 연구에 큰 도움을 줍니다.

 

 

 

 

 

 

 

 

조선백자의 종류를 실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자라고 해서 다 하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도자기의 색깔이 다르고 불리는 이름도 다릅니다. 윗줄 왼쪽부터 소문백자, 청화백자, 청화채백자, 상강백자. 아랫줄 왼쪽부터 철화백자, 동화(진사)백자, 조선청자(백태청유), 갈유자기.

 

 

 

 

 

 

 

 

청화백자의 다양한 모습

 

18세기 후반부터 분원리만의 특징을 갖춘 백자가 만들어집니다. 정조 때는 청화백자 제작을 금지했다는군요. 약각백자가 나오기도 했답니다. 다양한 방식의 채색 자기도 만들어졌습니다. 산화코발트, 동, 철 등 재료도 다양해졌습니다. 음각, 양각, 투각 기법을 혼용한 백자도 만들어졌습니다. 점점 자유분방한 모습의 도자기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주병에 가득 담긴 술을 예쁜 자기와 함께 예쁜 자기로 만든 술잔에 마시면 좋겠죠?

 

분원리에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그란 도자기만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그릇, 제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연적, 필통 등의 문방구, 베개, 등잔, 촛대 등의 생활 용구도 만들었습니다. 개구리, 두꺼비, 잉어, 호랑이 등의 동물 모양, 대나무, 연꽃, 복숭아 등의 자연물도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관요 백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구분하였습니다. 조선 전기(15~16세기)에 관요백자가 만들어집니다. 나라에서 필요한 도자기를 직접 만들게 된 것입니다. 나라에서 관리하니 도자기의 질과 종류가 다양해지기 시작합니다. 조선 중기(17~18세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겪은 시기입니다. 혼란의 시기이다 보니 조선 전기보다 자기의 수준이 떨어집니다. 청화백자에 사용하던 안료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고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안료를 사용합니다. 

 

 

 

 

 

 

도자기 만드는 모습을 모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해 나무를 자르는 사람, 유약을 바르는 사람, 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갓을 쓴 사람은 관리자인가 봅니다. 오른쪽으로는 깨진 도자기가 쌓여 있습니다.

 

백자를 만들기 위한 가마가 설치되면 관청, 공방, 가마 보호각, 곳간 등이 부수적으로 지어졌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도자기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겠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과정인데 당시에는 그 과정이 더욱 복잡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과 공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가마를 짓는 데 사용되는 축부토는 전국 각지에서 운송하였습니다. 물과 나무는 인근에서 공급받고요. 분원에서 1년 동안 제작되는 그릇이 대략 1,300죽(13,000개) 정도였습니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공급받고 제품을 납품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 또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도자기 이름도 지어 보시고, 퍼즐도 맞추고 현미경으로 도자기를 정밀하게 살펴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원백자자료관 구경을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백자의 세계에 감탄하였습니다.

 

 

 

 

 

 

붕어찜 식당 옆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팔당호를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해 보기로 합니다. 우천리라고 크게 쓰인 것이 있어서 가깝게 다가갑니다. 우천리는 지금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광주 우천리를 지도 검색하면, 팔당호 중간으로 위치가 나옵니다. 팔당댐 건설로 우천리 14.9㎢가 수몰되었습니다.

 

우천리는 윗소내, 아랫소내로 나뉘었습니다. 윗소내는 우시장이 있었고 아랫소내는 상점이 많았습니다. 우천리 소내나루에서는 분원리 사옹원에서 만든 왕실도자기를 운반하였고 남한강과 북한강에서 올라온 배들이 잠시 머물다 가기도 했습니다.

 

 

 

 

 

 

팔당호를 바라봅니다. 넓습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팔당호의 물을 먹습니다. 그래서 팔당호의 존재는 알고 있습니다. 팔당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로 인해 사라진 공간에 대한 이해는 별로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고요. 분원백자자료관과 팔당호를 보면서 그 옛날 도자기를 싣고 떠나고 사람들로 북적였을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도자기를 잘 알지 못합니다. 백자라고 하면 하얀 도자기라는 것만 아는 정도입니다. 진품명품 프로그램에서 도자기 감정하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가 어디 숨겨두신 도자기 없을까?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분원백자자료관을 돌아보니 도자기라는 것이라는 게 쉽게 얻어질 수 없구나 왜 귀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귀한 도자기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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