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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행궁 

수원은 조선시대 정조가 만든 신도시입니다. 정조는 화성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모여 살게 했습니다. 인구가 120만 명이 넘는 대도시입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다녀오기 위해 수원에 자주 내려왔고 화성행궁에서 머물렀습니다. 화성행궁에서 정조의 모습과 수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1월 초 친구와 수원 화성행궁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둘이 휴일이 맞아서 가볍게 가을을 즐기기로 합니다. 저는 수원역에서 버스 타고 팔달문에서 내립니다. 팔달문은 화성의 남문입니다. 팔달문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팔달문은 숭례문보다 더 큽니다. 

 

 

 

 

 

 

역광이라 이정표 글씨가 잘 안 보입니다. 팔달문로터리라 쓰여 있습니다. 로터리라는 것은 팔달문을 중심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팔달문은 섬처럼 떨어져 있습니다. 화성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도로를 만든다면서 성곽을 강제로 허물었습니다. 팔달문과 화성을 연결하려고 하는데 얽혀있는 것들이 복잡한가 봅니다. 

 

팔달문 일대는 수원 구도심의 중심지입니다. 예전에 팔달문 주변에 버스터미널, 수원시청이 있었습니다. 수원뿐만 아니라 경기도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팔달문에서 화성행궁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립니다. 수원역에서 화성행궁까지 오는 버스도 있지만 팔달문까지 오는 버스가 더 많아서 걸어왔습니다. 화성행궁 광장에는 수원시립미술관이 있습니다. 화성행궁광장 바닥에는 신풍루사미도, 봉수당진찬도, 무예 24기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닥의 그림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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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가 보입니다. 왕이 출입하는 곳이니까 홍살문이 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그리고 단체 관광객들까지 많은 이들로 화성행궁이 북적입니다. 

 

 

 

 

 

 

화성행궁 입장료 어른 1,500원. 화성행궁,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3곳을 묶은 통합권은 3,500원입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화성행궁 옆에 주차장이 있는데 만차입니다. 이럴 때는 팔달구청 주차장을 이용하면 됩니다.   

 

 

 

 

 

 

화성행궁도 궁이고 왕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행궁(行宮)은 왕이나 왕족이 본궁 밖으로 나가야 할 때 임시로 숙박하는 궁입니다. 삼국시대부터 행궁이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행궁은 대부분 조선시대 때 지어진 것입니다. 화성행궁 말고도 행궁은 많이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니 수십 개가 있더군요. 그중에서 화성행궁이 규모가 가장 큽니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했습니다. 처음 동헌으로 지은 건물은 회갑연을 하면서 봉수당(奉壽堂)으로 이름을 변경합니다.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입니다. 봉수당에 회갑연 장면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정조는 어머니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한다는 것으로 효심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꿈과 의지가 담긴 화성 축성 상황도 살피고 군사력 점검도 합니다. 왕과 왕의 어머니가 내려오는데 동원된 사람과 물자는 엄청난 규모일 것입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지 20년 정도 되었을 때니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성 행차 상황과 행사 장면은 김홍도가 주관해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낙남헌이 있습니다. 1794년에 지은 건물입니다.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때 낙남헌에서 양로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무과 시험을 치르기도 했고요. 일제강점기 때는 수원군청으로 사용했습니다. 신풍국민학교 교무실이기도 했습니다. 

 

 

 

 

 

 

화령전은 1801년(순조 1) 때 지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기술자들이 모여 2달 만에 만들었습니다. 화성행궁과는 별도 영역입니다. 화령전의 중심 건물이 정전인 운한각입니다. 운한각 안에 정조의 어진이 있습니다. 정조의 아들인 순조부터 이후 왕들은 화령전에 직접 방문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일부는 복원하였으나 처음 만들었을 때 모습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운한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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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무덤을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건릉) 옆에 만들고자 합니다. 현륭원 재실에 있던 정조의 어진을 화령전으로 모셔 옵니다. 1908년 영정을 서울로 갖고 갑니다. 6·25 전쟁 때 부산으로 내려갔는데 소실됩니다. 지금 영정은 현대에 다시 그린 것입니다. 어진 하면 곤룡포를 입은 모습인데 운한각의 정조 어진은 군사를 이끄는 대장군의 모습입니다. 건물과 어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다릅니다. 강렬합니다.  

 

 

 

 

 

화성유수부 객사인 우화관은 2023년 복원한 건물입니다. 우화관 자리에 신풍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원향교 옆에서 개교했고 일제강점기 때 화성행궁으로 이전합니다. 일제는 화성행궁을 파괴하고 학교, 병원, 관공서 등을 짓습니다. 지금 화성행궁 건물 대부분은 현대에 와서 복원한 것입니다. 낙남헌, 화령전 정도만 옛 모습을 지키고 있고요.

 

100년이 넘은 학교를 이전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학교의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도심 공동화로 학생 수가 감소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화성행궁 복원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이전이 불가피했습니다. 광교신도시로 이전합니다. 

 

 

 

 

 

대장금과 종사관. 이영애와 지진희. 화성행궁은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입니다. 

 

 

 

 

 

 

 

 

 

화성행궁을 살펴보고 행리단길로 향합니다. 행궁동 주민센터 앞을 지납니다. 화성행궁 주변은 행정구역상 수원특례시 팔달구 행궁동입니다. 왕의 꿈이 깃든 마을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입니다. 정조는 수원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 했습니다. 수원으로 천도하려고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서울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전국에 00리단길이 많아졌습니다. 리단길의 원조 경리단길은 몰락의 분위기지만 행리단길은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행리단길 범위를 딱히 정하긴 힘들더군요. 수원 구도심 전체를 보기도 하고 화성행궁 주변이라고도 하고요. 

 

 

 

 

 

행궁동과 행리단길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 나오면서 인기가 더욱더 많아졌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안 봐서 선재 업고 튀어 나온 장소 찾아다니진 않았습니다. 확실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긴 합니다. 거리도 깔끔하고 예쁘더군요. 이 좋은 거리를 아저씨 둘이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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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생가터도 지나가고요. 

 

 

 

 

 

카페에 들어가 긴 이야기를 나눕니다. 

 

 

 

 

 

화성행궁은 여러 번 왔습니다. 이번 방문은 5년 만입니다. 화성행궁 복원이 끝나서인지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행궁동 행리단길 분위기도 낯설고요. 덕분에 새로운 느낌과 갬성으로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화성행궁 주변으로 뭘 또 부수고 짓고 하던데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변하면 달리 보일 것입니다. 화성행궁에서 화성으로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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