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 동대문, 을지로, 명동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여사친이 있습니다. 서로를 아버지와 딸로 부르는 재밌는 관계입니다. 따스한 봄이 왔고 우리는 서울에서 만납니다. 둘 다 서울 사람이 아니지만 서울이 중간지점이고 놀거리가 많다는 이유로 만남은 서울 어딘가에서 이루어집니다. 동묘에서 만나 동대문, 을지로를 거쳐 명동까지 이어지는 데이트 코스입니다.

시간은 오후 2시. 만나기로 한 장소는 동묘앞역입니다. 동묘는 벼룩시장으로 옛 물건을 싸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에서 지드래곤, 정형돈 두 사람이 동묘를 거니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갑니다. 동묘역으로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동묘앞역입니다.

동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관왕이라 하여 모신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습니다. 명나라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세웠다고도 합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과 전국 여러 곳에 세워졌습니다. 동쪽에 있는 관왕묘라해서 동관왕묘이고 줄여서 동묘라 부릅니다. 동묘는 보물로 국가문화재입니다.

화창한 날씨여서 동묘 부근에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구제 의류를 저렴하게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구경하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요. 외국인도 많이 보입니다. 저도 뭘 좀 사볼까 했는데 딱히 맘에 드는 것은 없더군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은 저렴한데 옷걸이에 걸리면 가격이 또 올라갑니다.

동묘앞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은 옥경이네 건생선이라는 식당을 가기 위해서입니다. 식당이 동묘앞역과 신당역 사이 신당동 중앙시장 안에 있습니다. 동묘앞역에서 걸어가면 10분 정도 걸립니다. 신당역이 더 가깝긴 합니다. 옥경이네 건생선은 말린 생선을 주로 취급하는 곳입니다. 생선을 말리면 특유의 풍미가 올라옵니다. 성시경 먹을텐데 소개되면서 찾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낮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옥경이네 건생선에서 나와서 어묵에 반주를 이어갑니다. 식당 이름은 이포어묵. 어묵 쌓여 있는 모습과 맥주를 더 마시고픈 마음에 들어갑니다. 분위기가 오묘했지만 탱탱한 어묵에 맥주를 시원하게 마십니다. 그렇다고 술을 엄청나게 마시진 않습니다. 적당히. 교양 있게.

원래는 동묘를 좀 더 구경하고 신당동으로 가서 떡볶이에 반주 먹으려 했습니다. 시간도 애매하고 아직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즉흥적으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둘 다 MBTI가 P라는 사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니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가깝습니다. 걸어서 10여 분이면 갈 수 있겠더군요. 옛날 동대문운동장이 문화시설로 바뀌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시절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동대문디지털플라자 아니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계획 없이 갔기에 어디서 뭘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전시관 이정표가 보였고 무작정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전통 미술 작품과 문화재들이 보입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미디어아트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들을 미디어아트 형식을 빌려 소개합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미디어아트전은 4월 30일까지였으니 지금은 운영하지 않습니다. 유료 관람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는 수시로 좋은 전시가 열리는 언제든지 방문해도 좋겠습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을지로로 향합니다. 4월 말 따스하면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을지로 야장을 즐기기로 한 것입니다. 동대문에서 을지로까지 걷습니다. 우리는 여행 모임에서 만난 사이기 때문에 잘 걸어 다닙니다. 해 질 무렵 은은한 햇살이 내려앉는 서울 도심은 걷기에 좋습니다. 취기가 약간 남아 있었기에 기분 좋게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동대문에서 을지로까지 3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뮌헨호프입니다.

뮌헨호프는 을지로 야장의 성지라 불리는 곳입니다. 뮌헨호프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지났습니다. 뮌헨호프 앞 야외에 간이 테이블 20개 가까이 있습니다. 평일이지만 퇴근 시간 때이기에 테이블에는 빈자리 찾기가 어렵습니다. 마침 딱 한 자리가 있어서 바로 착석. 생맥주와 을지로의 대표메뉴인 골뱅이와 노가리를 안주로 주문합니다. 파무침 가득한 골뱅이와 잘 구워진 노가리가 별미입니다. 북적북적한 곳에서 즐기는 생맥주는 색다른 재미입니다.

그리고 타코를 먹습니다. 타코는 진짜 예상치도 못했습니다. 뮌헨호프 찾아 을지로 들어서는데 올디스 타코라는 매장에 손님이 줄 서 있더라고요.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았습니다. 우리가 갔을 때도 웨이팅이 있더군요. 타코에 올디스타코에서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올디스병맥주를 곁들여 마십니다. 을지로에서 외쿡 느낌을 만납니다. 예상치 못한 메뉴에 맛있다며 재밌다며 웃음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냅니다.

친구가 집에 편하게 가려면 명동역에서 버스를 타야 합니다. 을지로에서 명동까지 걷습니다. 명동에 왔으니 명동대성당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성당인 명동대성당입니다. 그냥 성당이 아니고 대성당입니다. 어두운 밤 조명으로 빛납니다. 명동대성당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경건함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당에 오면 꼭 하는 것이 있으니 봉헌초 올리는 것입니다. 명동대성당 뒤로 가면 성모상 앞에 봉헌초 올릴 수 있습니다. 둘 다 신자는 아니지만 봉헌초를 올리고 기도할 줄은 압니다. 봉헌초 한 개 2천 원입니다. 셀프. 저녁에 가니 봉헌초가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초 올리고 성모상 앞에 기도를 올립니다.

명동대성당을 나와 명동을 가로질러 롯데백화점 본점 방면으로 향합니다. 명동은 명동이네요. 많은 사람으로 북적입니다. 외국 사람들도 많고요. 노점의 다양한 먹거리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우리는 먹는 것은 스톱.

오늘 간 곳을 한 줄로 정리하면
동묘 - 신당동 중앙시장 옥경이네 건생선, 이포어묵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 을지로 뮌헨호프 - 올디스타코 - 명동대성당
(지도에 표시된 길과 실제로 걸은 길이 100% 일치하진 않습니다.)
걷고, 먹고, 또 걷고, 또 먹고.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사이지만 한번 만나면 야무지게 시간 보냅니다. 20년 넘게 만난 사이니 이제 서로에 대해서 익숙하고 반갑고 기분 좋은 만남입니다. 서울 도심에서 데이트 즐기고자 하는 커플이 참고했으면 하는 마음에 하나의 포스팅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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